오월 영실 철쭉과 야생화 그리고 쿠살낭

by 무량화


오월은 한라산 일원의 진달래가 제철이니 이달엔 영실로 여러분을 안내할게요. 천백 도로에서 쑥 들어온 영실코스 입구를 지나면 좌우로 적송 군락지가 조릿대를 깔고 이어지고요. 비탈길에 올라서면서부터는 안전한 데크길로 들어섭니다. 이 무렵 진달래꽃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등에 땀이 차서, 겉옷 벗어 배낭에 넣으며 물병 꺼내 벌컥벌컥 충분히 수분공급해 주고요. 눈앞에 비로소 기개 오연한 암봉이 드러났습니다. 여기가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히는 영실기암이지요. 오백 나한 바위가 그렇게 죽 둘러섰고 장쾌한 병풍바위도 우뚝 솟았고요. 산 아래에서 스멀거리며 운무가 몰려와 잠깐 영주기암에 시폰 베일을 드리우더니 금세 하늘빛 틔여주었어요. 백골 되어 그래도 강골 뽐내는 고사목지대도 지났답니다.



지난 사월 말에도 영실을 다녀왔더랬는 데요. 당시 주말을 기해 진달래꽃을 보려고 허위허위 올라갔었는데 너무 일렀지요. 병풍바위 인근에는 개화가 시작됐으나 윗세오름은 전혀 소식이 없었어요. 개화의 기미는커녕 꽃봉오리가 아주 쪼맨했거든요. 당시 상태로 보아 이 삼주는 더 기다려야 꽃이 필 거 같았어요. 오월 중순부터 줄곧 영실 쪽에 관심을 두고 산상 화원 소식을 체크해 왔지요. 엊그제 윗세오름에 갔던 이웃 친구가 카톡사진을 보내왔는데 꽃이 꽤 볼만하더군요. 하지만, 한라산 철쭉제는 6월 5일 열린다니 오월 마지막 주말에 찾을까 했으나 일기예보를 살피자 구름이 잔뜩 꼈더라고요. 마침 화창한 날씨라 한 주 미리 가기로 하고 일찍부터 서둘러 영실로 향했답니다. 이번에는 남벽분기점까지 돌아볼 작정이라 두 시간 더 앞당겨 나섰지요.



전번에 영실 오를 적엔 운무 짙어 조망권이 확보되지 않았으나 이날은 기상 더없이 쾌청. 신록 한층 짙어져 가는 숲길 지나 안전 계단 데크길 오르다가 여유롭게 전망 구경하려고 뒤돌아 서기도 자주 했지요. 새파란 하늘 아래 건너편 오백 나한 바위들도 또렷하고 멀리 산방산·비양도까지도 모습 푸르스름 드러났지요. 병풍바위 주변을 벌겋게 달구다 못해 슬슬 져가고 있는 진달래, 보나 마나 윗세오름은 지금이 한창일 거 같았어요. 노루샘에서 산정 청량수로 목을 축인 다음 윗세오름에 닿았을 때는 정오 무렵. 그러나 너르디너르게 펼쳐진 평원에 점묘화처럼 수 놓였을 철쭉꽃에 대한 기대감은 풍선 바람 빠지듯 잦아들었네요. 이미 대부분의 꽃은 지고 그나마 남은 철쭉마저 가까이서 볼 수 없었으니, 데크길 외에는 가지 말라는 경고문 때문. 은근 허전하고 서운한 채로 윗세오름 산장에 앉아 점심으로 사 온 김밥을 든 후 사과로 입가심했지요. 그리곤 남벽분기점에 오를 수 있는 한시쯤에 백록담을 바라보며 출발했답니다.



기암괴석이라는 말대로 기기묘묘하게 치솟은 암벽에 둘러싸인 백록담은 과연 대단했습니다. 오연한 자태로 선 거대한 한 덩이 수석은 눈부시게 새파란 창천 아래 자태 장쾌하고도 외경스러웠지요. 한참을 걸었건만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인 백록담, 지름 둘레로 미루어 규모가 얼마나 클지는 미루어 짐작되더군요. 백록담 향해 고개 치켜든 채 거의 반 시간여를 걸은 뒤 방아오름샘을 스칠 즈음이었어요. 몇 해 전, 풍화작용에 의한 붕괴사고가 발생해 뉴스를 탔던 현장인 북벽 사면 아래 이르렀지요. 해발 1800m 고지에서 올려다봐도 저 멀리 회갈색 바위가 200㎡가량 무너져 내린 암벽 모습은 아직도 뚜렷이 드러나더군요. 벼락 치듯 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암벽 쪼개지며 바윗덩어리 마구 쏟아져 내릴 때 백록담은 얼마나 간담 서늘했을까요. 그럼에도 전혀 아무 일 없었던 듯 태연자약한 백록담처럼 인간사 또한 저마다 겉으론 별다른 표 없이 살아내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을지요.



현무암 울퉁불퉁한 돌길을 지나는데 좌우로는 빼곡하게 신선한 향 짙게 풍기는 구상나무숲 울창했어요. 하지만 정확히는 저 때까지만 해도 주목으로 알았던 수종이었답니다. 영실 오르다가 주목에 관한 안내문을 읽은 기억도 있어 그게 그 나무, 당연 주목인 줄 알았더랬는데 말이지요. 하늘로 쭉 뻗은 나무 끝에 솟은 신기한 암꽃을 사진에 담아 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영 구별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진을 찍으며 찬찬히 살펴보니 바늘잎이 아주 연해 마치 사슴 햇뿔 같았어요. 피라미드 형태로 가지런히 자라는 침엽수인 구상나무 잎은 의외로 볼터치 브러시처럼 보드랍더라고요. 열매가 될 연두색·붉은색·검자줏빛 암꽃 사진을 검색 통해 비교한 결과 주목이 아닌 구상나무임이 거의 확실했습니다.



그래도 정확을 기하기 위해 한라수목원에 전화로 문의를 해봤네요. 역시나 남벽분기점에 자라고 있는 침엽수는 틀림없는 구상나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희귀종이 된 보호수이지만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철이면 가장 조명받는 나무가 구상나무이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구상나무의 고향은 한국이랍니다. 원래 우리나라 고유의 자생종으로 학명도 ‘Korean fir 또는 Abies koreana Wilson’이라 표기한다네요. 한국에만 자생하는 토종 나무인데 어쩌다 미국에 건너가 값비싼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받게 됐을까 궁금하지요?

구상나무 열매/앵초와 흰그늘용담/구름미나리아재비


일찍이 미국은 식물자원의 중요성을 인식, 전 세계에 걸쳐 생물유전자원 확보에 나섰는데요. 1907년 포리 씨가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채집하여 미국 하버드대 아널드 식물원의 식물분류학자인 윌슨 씨에게 제공했답니다. 이 표본을 접한 윌슨은 색다른 특별 종이란 판단이 서자 1917년 직접 제주를 찾아 한라산에 올라 구상나무를 채집해 갔지요. 윌슨은 1920년 아널드 식물원 연구 보고서 1호로 이 구상나무가 지금까지 본 바 없는 신 수종임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이 나무를 제주인들이 ‘쿠살낭’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구상나무라 이름 지었다고 위키백과에 쓰여있더군요. ‘쿠살’은 성게를 가리키는 말로 구상나무 잎이 성게 가시처럼 생겼대서 제주도 사투리로 쿠살낭이라고 불렀다네요. 미국인에 의해 새롭게 세상에 알려진 구상나무, 이는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 전역의 식물이 무단 유출됐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나라가 힘을 잃어 국토를 지키지 못하면 국민 주권은 물론 생물 보존권마저 사라진다는 점, 모쪼록 국력을 키워야 할 이유가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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