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와 13인의 빈 필하모닉 앙상블 콘서트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다.
공연 티켓을 세시 반부터 교부할 예정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오전엔 신록 아름다운 중산간 치유의 숲에 가서 신선놀음하다가 내려왔다.
새소리 더불어 신선되어 노닐었어도 잔등에 땀이 나 돌아오자마자 재빨리 샤워를 했다.
모처럼 조수미를 만나는 날이니 그에 걸맞게 매무새도 제대로, 늘 쓰던 모자를 벗어치우고 머리에 컬을 넣었다.
시간 맞춰 알맞게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티켓 교부를 받은 다음 막간을 이용, 전시실로 올라가 <여행의 행복을 기록하다> 사진전을 둘러봤다.
아름다운 서귀포, 사진 공모전 수상작들의 특별전시회장이었다.
사진전이 여러 장소에서 열리기 때문인지 전시실은 한산했다.
여유 있게 일찌감치 대극장 내 좌석을 찾아 착석해 팸플릿부터 살펴봤다.
사진 찍을 수 있는 이때 무대를 한두 컷 담아두었다.
‘Love from Vienna’ 공연이 시작됐다.
그렇게 빈 필하모닉의 오프닝 무대가 열렸다.
오페라 <박쥐> 서곡을 시작으로 <금과 은> 왈츠를 비롯해 <피치카토 폴카>가 경쾌하게 연주됐다.
그 외 소품 두어 곡이 이어졌다.
잠시 무대는 조용~ 한순간 조명이 밝아지며 조수미 그녀가 입장했다.
풍성하니 새하얀 깃털로 장식한 관에 흰 드레스 차림의 그녀가 백작부인같이 우아하게 왈츠 스탭 밟듯 무대에 섰다.
역시 명불허전, 손짓 하나로도 단숨에 그녀는 객석을 제압했다.
그만큼 숨 막히게 프리마돈나는 멋졌다.
세계적이라는 수사가 괜히 따르겠는가.
삼십여 년 정상을 지키며 오래도록 월드스타로 각광받는 그녀가 내뿜는 아우라로 눈이 부셨다.
<내가 시골의 순진한 여자를 연기할 때>는 한 편의 오페라를 보여주듯 몸짓 변화무쌍했다.
눈부신 프리마돈나의 무대를 압도하는 노래와 연기는 완벽했다.
목소리 하나로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카리스마 넘치는 진면목 유감없이 보여준 조수미 그녀.
<빌랴의 노래>에서는 맑디 맑은 하이 소프라노에 그만, 숨죽여 갈무린 감탄사 차라리 신음 같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은 그녀에게 어떤 헌사가 필요할까.
키스를 날리며 무대 옆으로 사라진 그녀가 기품 어린 남작부인처럼 까만 드레스를 갈아입고 다시 등장했다.
내가 살고 싶은 그곳은 <레몬꽃 피는 곳>,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이 비엔나 왈츠는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너무도 사랑하는 나의 천국을 떠나지 못하리라는 가사에 이탈리아 대신 서귀포란 단어가 은연중 대입됐다.
잠깐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2부가 시작됐다.
조수미, 새로운 내일을 노래한다는 팸플릿 부제 대로였다.
벌써 몇 해 째 모든 일상이 엉켜버린 채 침체의 늪에서 시난고난했던 우리들.
빠른 곡의 활기찬 리듬 세례로 저마다 가슴에 낀 얼음 녹여내고 확실한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던 축복의 시간.
부드럽고 경쾌한 왈츠와 보헤미안의 낭만이 통통 튕기는 폴카로 구성된 레퍼토리는 시종일관 흥겨움을 선사했다.
2부에서 그녀는 공작새처럼 색색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살랑살랑 걸어 나와 오페레타를 선보였다.
<너무나 뜨겁게 입맞춤하는 내 입술>은 의상과도 아주 잘 매치가 됐다.
왈츠의 나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필하모닉 명성 또한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다.
13인의 앙상블 감미로웠기에 깊은 예술적 감흥에 취한 관객들은 당연히 열기로 들떠 올랐다.
<봄의 소리 왈츠>를 연주할 때는 모두가 리듬에 맞춰 손뼉을 쳤는데 발이라도 탕탕 구를 듯 한덩어리 되어 같이 즐겼다.
리듬 자체가 밝고 명쾌해서인지 신나게 손뼉 치며 격하게 조응하는 무대와 객석은 어느새 혼연일체를 이뤘다.
끝으로 프리마돈나는 한껏 반짝대는 보석관으로 머리를 단장한 채 여왕처럼 격조 있는 흰 드레스 바꿔 입고 빈 신년음악회 단골 레퍼토리인 <비엔나 기질>을 들려줬다.
다 같이 두 손 높이 흔들며 환호 또 환호!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열화와 같은 앙코르에 다시 무대에 선 그녀는 한국어 봄노래로 대미를 장식했다.
산 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희망찬 가사처럼 새로운 대한민국의 내일을 기대하기 충분한 리듬이었다.
연주자들 손을 잡고 중앙에서 무대인사를 하는 그녀, 멀긴 할지라도 이때만은 저마다 폰을 꺼내 몇 컷씩 눌러댔다.
천상에 들어 구름 위를 산책한 듯, 신비로운 샹그릴라를 거닌 듯, 거의 몽롱하게 행복에 취했던 두 시간여.
나 아닌 나로 분리됐던 자아를 되찾아 집에 돌아오는 길, 원만무애한 보름달이 동행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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