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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7. 2024

리마 라르코 뮤지엄의 19금

마추픽추를 끝으로 페루 여행을 마무리 짓는 리마에서다.

페루 현지 명칭은 Museo Larco,

The Larco Museum 현관 입구에서 찍은 사진 속의 라파엘 라르코 (Rafael Larco Hoyle:1901-1966)는 라르코 뮤지엄 설립자다.

아버지와 스페인 여행을 갔다가 고고학 박물관에서 받은 감동을 계기로 그는 고대 유물에 관심을 갖게 된다.

모체를 시작으로 나스카, 치무, 잉카 등 토착민들이 남긴 고대 유적지에서 출토된 토기와 직물, 생활용품과 무기 등 4만 6천 점이 넘는 유물을 개인 소장하고 있는 라르코는 페루 고고학 연구가이자 수집가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미국 유학파인 그는 부친의 가업을 물려받은 유복한 환경 속에서 지역 출토유물을 사 모으고 고고학 관련 책도 집필할 정도로 고고학에 심취하였다.

개인의 대규모 컬렉션을 일괄 구입하기도 했지만, 땅만 파면 고대 유물이 출토되던 당시라 일 년 만에 유물 다수를 확보했다.

황금 제국이었던 잉카시대 코걸이, 왕관, 마스크 같은 장신구와 도기, 조각, 미라 등 5천여 년 역사유물 중 스페인에 약탈당하고 남은 그 나머지를 그러모아 집대성해서 독립 기념일인 1926년 7월 28일 뮤지엄을 개관했다.

 부친 Rafael Larco Herrera가 수집한 기존의 소장품과 그의 형제인 Javier와 Constant의 수집품을 합해 아버지의 유지대로 가계의 이름을 내건 뮤지엄을 연 것은 그의 나이 약관 25세 때다.

그는, 자원 풍부한 남미 각국을 최빈국으로 몰락시킨 마르크스주의자나 해방신학 신봉자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금수저 신분으로 부르주아 중의 최상급 부르주아 출신자다.

평생 황족 같은 호사로움을 누리고 산 그답게 첫 전시실인 골드 실버 갤러리에는 각종 진귀한 귀금속 컬렉션이 볼만했다.


직물 갤러리에서는 고대 직조물과 다양한 정보가 담긴 잉카의 결승문자(結繩文字:Quipu) 컬렉션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 큰 에로틱 세라믹 컬렉션 장에는 고대인들의 성 풍속도를 적나라하면서도 은밀하게 펼쳐 놓았다.

개인 소장 유물이 페루 국립박물관 전시물 수효보다 많고 가치가 있어, 페루에서 가장 명성 높은 박물관으로 입장료도 높은 편.

또한 세계적으로 소장품 숫자가 가장 많은 개인 박물관이며 에로틱 도자기 컬렉션 부분은 특히 독보적 위치를 점한다.

 Larco Museum은 상설 전시물 외에도 전 세계 여러 박물관 및 문화 센터에 소장품을 대여, 페루 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스페인군을 불러들인 단초가 된 누런 황금은 그 땅에 확실히 많았던 모양, 온데 금칠갑들을 해놨다.  

무엇보다 이 뮤지엄에서 입이 절로 벌어졌던 곳은 어마어마한 양의 세라믹 컬렉션실이었다.

별도로 설계된 전시공간은 전시실이라기보다 숫제 제품 보관창고 같았다.

마치 대량생산공장에서 출고된 제품들인 양, 칸칸에 갖가지 모형의 도자기가 즐비하게 들어차 있었다.

하나씩 전시실 좌대에 올려놓으면 수십 개의 뮤지엄을 꾸미고도 남을 정도의 방대한 양이었다.


본관 관람을 마치고 정원으로 내려와 오른쪽에 꾸며진 작은 전시실로 들어갔다.

그곳이 메인 갤러리보다 훨씬 더 유명세를 탄다는 19금 에로틱 세라믹 갤러리.

과거 농경사회에서 더 많은 생산을 얻기 위한 묘책으로야 종족 번식만큼 유용한 방편도 없을 터라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상징으로 도기는 빚어지고 구워졌으리라.

허나 일손 늘리자는 취지가, 한편 먹을 입 하나 더 늘리는 일이기도 한데 결국 수지맞는 계산인지 아리송.

마치 부록처럼 딸린 갤러리라지만 명성에 비해 비교적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은은한 불빛 아래 음전스레 앉아있는 도기마다 민망스럴 정도로 표현이 직설적이다.


남미인 성향답게 노골적으로 야한가 하면 더러는 해학적인 포즈가 웃음을 자아내게도  했다.

하긴 조선조 혜원의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 정도가 아니라 단원의 한층 더 질탕한 춘화도 부지기수이긴 하다.

거침없이 적나라하기로야 일본이나 중국의 파격적인 춘화 따를 수 없을 테고.

음란하기 이를 데 없는 인도 흰두성전이나 동남아 각국의 외설적인 조각 표현은 포르노 사진 저리 가서 놀아라, 수준이다.

그에 비하면 조그만 세라믹 기명에 만화처럼 희화적으로 표현된 동작들은 차라리 천진소박하다고나 할까.

진작에 이 뮤지엄 소문은 들었지만 리마 구시가지와 외떨어진 위치에 있다 하여 방문 계획에서 애당초 제외된 곳이었다.

마침 오후 시간이 비어있던 차, 홀로 남미 여행 중인 초등교사와 숙소에서 얘기 나누다가 Museo Larco는 밤까지 개관한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의기투합해 그녀와 같이 택시를 탔다.

삼십 분 이상 택시를 탄 거 같은데 미술관 입구에 우릴 내려준 기사는 5불 정도의 요금을 받았다.

페루 물가가 낮기도 하지만 오일이 자체 충당되는 산유국이라서일까.

입구의 조경 잘 된 가든에서부터 꽃과 수목이 압도, 후각 매혹시키는 향기를 따라가 보니
부켄벨리아 꽃 덤불에 금은화가 덩굴져 올라가며 하얗게 피어 향을 풀어내고 있었다.

늦은 저녁시간이라 우선 뮤지엄부터 섭렵할 욕심에 급히 올라가느라 정원 사진을 미처 찍지 못했다.

현대 미술관처럼 휑댕그렁 넓지 않은 대신 고풍스러운 전시실은 안온하고 쾌적했다.

그러나 고대 유물관답게 대부분이 출토된 부장품 들이라 칙칙한 빛깔로 퇴색되거나 일부 유물의 귀가 이지러져 있기도 했다.

이 나라 매장 풍습은 우리와 달리 시신을 눕히지 않고 앉은 자세로 묻어, 미라마다 무명 누더기에 싸여 좌선을 하고 있었다.

일본계 대통령을 배출해서인지 유물 설명문이 스페인어와 일어로 병기돼 있어 한문을 통해 대충 뜻은 파악되었다.

그런데다 동행자가 십 개월 넘어 남미 전역을 답사했다더니 과연 그녀는 스페인어를 어느 정도 읽고 구사해 작품 해설자 역할을 기꺼이 맡아줬다.

페루, 하면 잉카문명만 떠올리나 잉카 이전 모체, 나스카, 치무, 잉카로 문명권이 이어진다는 것도 이때 얻은 지식이다.

어느새 밖은 이미 한밤중, 부분조명으로 밝혀놓은 정원수가 이국적 정취를 전해줬다.

잘 가꿔진 정원 한켠에는 명품 부티크와 분위기 멋진 카페가 있었으나 내일 새벽 일정을 고려해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Av. Bolivar 1515, Pueblo Libre, 리마 21, 페루

전화 : +51 1 461-1312 / +51 1 461-1835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일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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