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집에 오면서 길가에 떨어져 있는 1센트짜리 페니를 보았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페니는 길바닥에서 여전히 나 여기 있다며 반짝거렸다. 오늘 역시도 페니는 그 자리에 그냥 방치된 채 밟히고 있었다. 그 길을 걸어간 누군가에게든 분명 눈에 띄었으련만 아무도 동전을 줍지 않았다. 그만큼 하찮아서였으리라. 허리를 굽히는 일이 번거로워서라기보다 워낙 낮은 가치의 동전이라서 외면했으리라. 집에 쓸데없이 쌓여있는 것이 페니인 데다 길바닥에서 무언가를 줍는다는 행위도 마뜩잖았고 특유의 쇠냄새가 손에 묻는 것도 싫어 나 또한 며칠째 홀대했던 터다. 그러나 그 동전이 하다못해 Quarter였다면?
a pinchpenny는 구두쇠를 칭하는데 가장 작은 화폐단위인 페니로부터 생겨난 말이다. 페니를 절약이나 저축의 상징으로 여기는 속담들도 있다. A penny saved is two pence got, 이는 한 푼을 저축하면 두 푼을 번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penny-a-lining은 '싸구려 원고, 서푼짜리 글'로 천시가 잔뜩 담긴 표현이다. 하지만 1센트도 엄연한 돈으로 미국달러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통화 단위를 가진 동전이다. 센트의 기호는¢이다. 그럼에도 현재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거의 없다. 해서 아무도 거들떠 보들 않는 신세로 추락해 버린 페니. 살아오면서 나도 혹여 페니 정도의 시답잖은 대접을 받을 행동은 하지 않았는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처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페니란 동전의 존재의미가 영 없는 건 아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80센트 오른 배럴당 45.23달러에 마감됐다는 뉴스를 오늘 아침에도 보았다. 이베이 경매장에서 소품이 경매품으로 올라왔을 적에는 센트 차이로 낙찰여부가 결정되기 예사다. 이렇듯 센트는 지금도 분명 통용되는 화폐 단위 맞다. 마켓 판매대에서는 물건값에 따라 정확히 계산이 찍혀 나오기 때문에 센트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1센트가 부족해 1달러를 헐어야 하는 경우를 접하기도 한다.
페니 동전의 원가가 주원료인 아연 값이 오르면서 2006년부터 1센트보다 비싸졌다. 50년 전 페니 하나면 맥도널드 햄버거나 우유 한 병을 사 먹고도 남을 돈이었다는데 갈수록 쓸모가 없어져간다. 이는 메릴랜드 여행 중에 빛바랜 예전 간판에서 실제 확인한 바도 있다. 페니, 저금통에 들어가면 그나마 호강하는 편이고 대부분 구석진 어딘가에 버려져있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물건의 교환수단이라는 화폐의 제일 가치를 잃어버린 페니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럴 만큼 페니는 돈으로서의 교환 기능이 위협받으며 이제는 존폐의 기로에 서있는 동전이다.
2015년 미 회계예산안에서 '생산 원가가 주화 액면가보다 비싼 페니와 니켈 통용의 대안을 찾기 위해 금속 재료와 조폐국 주조 설비, 주화 사용 패턴 등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조폐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센트 동전의 발행 원가는 1.8센트다. 5센트 동전 발행에는 액면가의 2배 가까운 9.4센트가 들어간다. 주조 비용이 화폐가치보다 큰 1센트 동전 페니가 발행 222년이 지나며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됐다. 실제 페니의 제조 원료인 구리와 아연값이 상승세를 지속한다면 미국은 1센트 주화를 녹이는 게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결론에 당연히 도달하게 되리라.
이민 초창기, 가게를 하며 카운터를 보는데 센트는 구분이 금세 됐으나 니클과 다임은 헷갈렸다. 크기로 치자면 모양새가 다임은 아주 작지만 그보다 훨씬 큰 니클에 비해 단위가 높았으니 한동안 어리둥절했었다. 거기다 원체 셈본실력이 모자라 계산이 쉽지 않다 보니 어느 땐 다임과 니클과 페니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손님 앞에 내밀며 골라가도록 한 적도 있을 정도다. 우리 동네는 세탁소마다 관행처럼 수요일엔 20% 가격할인을 하는 날이라서 그 바람에 컴퓨터로 찍혀 나오는 계산서에는 페니 단위가 자연 등장하게 마련이다.
이래저래 수요일은 항상 붐비는 날로 손님 줄은 길게 늘어섰는데 물건을 찾아가는 손님은 계산을 하며 꼭 끝단 위 페니까지 꼼꼼스레 챙긴다. 뒤에 손님이 기다리건 말건 동전을 일일이 헤아리고 서있는 손님이 나는 답답스럽다. 바쁜 나머지 지폐만 받고 잔돈은 됐다고 손사래를 치나 손님은 '너 진짜 괜찮냐?'면서 기어코 정확한 계산을 하고 간다. 사실 그때부터 나는 페니를 무시해 온 셈인데 지금이라고 나아져 새삼 가치를 쳐줄 리 만무다. 하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존재를 얕보면 안 되는 법인데. 페니 한 닢으로 곤란을 겪어본 적이 없어 그 가치를 보잘것없다 치부하는지 모르나 사실 페니 한 닢 모자라 1불을 헐어야 할 때가 더러 있잖은가. 페니 하나라도 귀히 여기는 마음 자체는, 세상 만물 그 무엇도 허투루 가벼이 대하지 않는 마음일 터다. 뭐든 흔전만전이라 음식마저 별생각 없이 쓰레기화되는 요즘 세태 아니던가.
페니 동전은 지난 1793년 처음 만들어졌다. 첫 번째 페니는 독수리 모양이 찍혀 있어 신생국을 상징하는데 적절하지 않다는 불만 때문에 1855년 인디언의 두상이 든 동전으로 바뀌었다. 이 역시 동전이 너무 커 주체스럽다는 불평이 나오자 1909년 지름 1센티미터 남짓 크기에 링컨 대통령의 초상을 담은 현재의 페니가 등장했다. 페니 앞면은 링컨의 옆모습이 양각되어 있고 뒷면은 방패 혹은 주랑 모양의 세로줄이 열셋 나있다. 이는 미국 건국초기의 13개 주를 상징하며 '다수가 모인 하나'란 뜻의 라틴어가 새겨져 있다.
얼마 전부터 구리 아연 등 국제 원자재 값이 치솟으면서 미국에서 난데없이 1센트 수집이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1982년 이전에 주조된 1센트짜리 동전은 95%의 구리를 포함하고 있어서 원자재 값만 2.4센트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제조 원료를 알아내는 방법은 동전을 손으로 튀겨보면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구리 페니 동전은 12 kHz의 소리가 나는 데 비해 아연으로 만들어진 동전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1센트 동전이 얼마 전 볼티모어 동전경매현장에서 무려 118만 달러에 팔리며 화제가 됐었다. 그 동전은 1972년 제작한 버치 센트( Birch cent)로 미국에서 제작한 첫 번째 1센트 동전이었다. 판화가인 로버트 버치의 이름을 따서 ‘버치 센트(Birch cent)’라고 불리는 이 동전은 미국 조폐사가 설립 기념으로 한정 제작한 동전이다. 1943년에 실수로 만들어진 다른 1센트 동전은 희소가치로 인해 무려 약 2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판매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 1944년부터 1946년까지는 당시 미군이 회수한 탄약을 사용하여 동전을 주조하였다. 그 때문에 동전 위에 황동의 줄진 자국이나 그을린 자국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도 수집 대상에 든단다.
한편, 97.5%의 아연이 함유된 요즘 유통되는 페니를 삼킬 경우 위산으로 가득한 위 안에서 일어나는 아연 이온의 높은 용해성 때문에 위의 내벽이 상할 수 있다. 1982년 이후에 주조한 미국 페니를 삼킬 경우 아연의 독성은 맹렬한 용혈 빈혈증(hemolytic anemia)을 일으킬 수 있기에 강아지에게 치명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듯 큰 단위건 작은 단위건 돈은 위험한 독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내일은 등하굣길 언제든, 길바닥에서 수모당하고 있는 페니 한 닢을 거둬주려 한다. 잘난 것도 없는 페니 같은 싸구려 글이나 쓰면서 감히 同格에게 하대하며 하찮다 여겼던 나. 일단 책가방에다 조그만 비닐팩부터 챙겨 넣어야겠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