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만의 해후

by 무량화


민정이 엄마를 LA 한인타운 한식당에서 만났다.

20년 만의 일이다.

무척 반가웠다.

우리는 예전처럼 이름을 부르면서 꿈같다며 손을 맞잡아 흔들다가, 포옹하다가, 팔짱을 끼고는 애들마냥 들떠 수다를 떨었다.

누구 할머니로 불러본 적이 없는지라 나이 든 지금도 호칭은 그대로 민정이 엄마였다.

민정이는 딸의 중고등학교 시절 절친이다.

서로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였으나 방학 때면 여전스럽게 만나던 십년지기 친구다.

우리가 미국으로 왔던 초창기, 딸이 LA에 자리 잡자 민정이는 결혼날을 받아놓고 친구를 찾아 LA에 왔었다.

그 다음번은 민정이가 제 엄마랑 단둘이서 미국여행을 와, 옛 친구 집을 거점 삼아 두루 서부여행을 다녔다.

이번엔 제 변호사 동생이 1년간 미국 연수차 LA에 머무는 동안을 이용해 부모님 모시고 미국여행을 왔다.

20대 초, 30대 초, 40대 진입하며 그렇게 십 년 주기로 친구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둘은 견우직녀처럼 만나는 인연 특이한 친구다.

부산시대의 일로, 두 살 연하이지만 민정엄마와 나 역시 서로 자별하게 지냈다.

한동네에 살았으니 망미동 시장을 보러 갔다가도 스치고, 영주사 절에 다니며 같이 고 3 딸내미 대입 기원 방생도 다녔다.

우리의 대화는 바로 엊그제 만난 이웃이듯 술술 이어져 이십 년이란 세월조차 단숨에 가벼이 뛰어넘었다.

그만큼 자연스러웠다.

샤부샤부로 점심을 먹으면서도 대화는 끊기지 않았고 그래도 헤어지기 아쉬워 우리는 전통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옛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서로 헤어져 산 이십 년간의 생활담도 주고받고, 성혼한 자제들 살아가는 얘기 또한 당연히 주화제였다.

한국 엄마들 다수가 그러하듯 민정이 엄마는 자녀교육에 남다른 정성과 열성을 쏟았다.

지난 20년 동안 다섯 시간 이상 수면을 취해본 적이 없다는 그녀.

맏이인 민정이만 순조로이 단번에 대학진학을 하고 학업 마친 후 한의사와 중매결혼을 했기에 비교적 수월한 케이스였다.

어려서부터 공부에 유난히 애살 많던 둘째 딸은 법대 졸업하고 사법고시 치느라 본인은 물론 엄마까지 몇 년간을 노심초사했다.

외아들인 셋째는 S공대를 나와 군대 갔다가 다시 의전에 들어갔기에 대학만도 두 번이나 입시를 봐야 했다고.

인턴 레지던트 시험을 치르는 기간 내내 엄마 역시 마음 졸이며 아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공부에 매진하는 자녀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음식 챙겨주기와 기도 외엔 달리 도와줄 게 없다.

그녀는 절에 가 무릎이 닳도록 기도를 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 건강을 위해 매일 수산시장에 갔다.

거기서 전복을 사다 껍질 벗겨 요리를 해대느라 전복패가 패총을 이룰 정도였다니, 그래서인지 작은 손에 힘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맹모삼천지교라 했던가, 자녀교육 위해 서울로 이사까지 하고 각고면려 끝에 그래도 뿌듯한 오늘을 맞은 민정엄마.

며느리감이라며 사진 보여주는 참한 규수는 컬럼비아 대학원을 마친 재원이라고 그녀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진주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몸이 약한 관계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함뿍 받고 성장한 이를테면 소공녀였다.

능력 있는 데다 아내 지극히 위하는 남편 만나 젊어서부터 다른 고생 모르고 다복한 가정 꾸리며 살아왔음에 감사하는 그녀다.

세상사 두루 다 좋을 수만은 없는 일인지, 그녀에게도 가슴에 바윗덩이가 얹힌 듯 묵지그레한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벌써 십 년째 의식 없이 병원에 누워계신 친정엄마를 떠올리면 마음이 저리다며 그녀는 잠시 침울해졌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명치료에 관한 화제를 이어가다가 마침 한국도 올해부터 웰다잉법이 시행된다는 말을 들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미리미리 사전의료의향서(Advance directive)를 작성해두어야 한다는데 그녀는 적극 동의했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지내다 평화로이 고종명 하자는 다짐을 하면서 우리는 헤어지기 전 다시 한번 힘껏 서로를 끌어안았다.

한국에 나오면 꼭 자기 집에서 쉬다 가라는 말과 함께 딸내미들 오십 대 되면 다시 LA 와서 만나자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팔십 넘어 만나면 그땐 우리 어떤 모습일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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