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 만발한 소래습지 생태공원

by 무량화


오래간만에 상경한 터라 들를 곳도, 볼 일도 많았다.

서울에서 온양으로 당진으로 바쁘게 쏘다니던 중에도 짬짬이 가보고 싶던 곳을 찾아다녔다.

인천 외사촌 집에 들른 김에, 때는 이때다 싶어 소래습지와 자유 공원을 방문했다.

두 곳 다 언젠가는 꼭 가보려던 장소로 시간이 모자라 아쉽게도 월미도행만은 무산됐다.

인천으로 이사 간 부산 친구 장선생은 서울 병원 가는 바람에 어긋져, 만나지 못했지만 그나마 대신 시간은 벌었다.

동트기도 전부터 서둘러 소래습지로 향했다.

원래 지명은 솔애(좁은 갯가)로 이를 한자화하여 소래(蘇萊)라 했다는데 다시 깨어나게 된다는 좋은 의미가 내포된 이름이다.

쓸모없다 버려지다시피 한 그 땅이, 이름 덕에 어쩌면 다시 소생해 멋진 생태공원으로 각광받게 된 건지도.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 있는 소래습지생태공원은 일제 강점기인 1934년부터 1990년대까지 염전이 있던 장소다.

1970년대 전국 최대 천일염 생산지였던 소래염전 자리에 개장한 생태공원엔 전시관, 자연학습장, 탐방데크, 관찰대, 쉼터가 갖춰져 있었다.

갈대밭과 풍차를 비롯 갯벌, 갯골, 염전, 염생식물 군락지이자 철새 도래지 되어 사진작가들이 특히 선호하는 곳.


묵은 갈대가 키대로 너울거리고 있었으나 삼라만상 푸르게 새로워지는 오월답게 갈대 발치엔 연둣빛 햇 갈대가 서로 키재기 하고 있었다.

혁명군의 진격소리 우렁차게 들리지 않아도 세대교체는 그처럼 조용히 이루어지는가 보다.

공원 진입로 가로수인 이팝나무 꽃 새하얗게 피었고 해당화는 아예 깔리다시피 지천이며 애기똥풀인가 싶은 샛노란 꽃은 명패를 보니 벌노랑이라나.

수도권 유일의 도심 염생 습지인 인천 소래습지생태공원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후세에 고이 물려줄 귀한 자연자원이다.

학습장 앞 갯벌에는 게와 조개 등 살아있는 생명체를 관찰할 수 있는 갯벌체험장이 펼쳐졌으며 근처에 붕어가 서식하는 담수 연못도 있다.

갯벌은 주로 조류에 의해 운반되는 퇴적물이 쌓여 이루어지는 해안 퇴적지형을 이른다.

만조 때에는 물에 잠기나 간조 때는 드러나 뭍이 되지만 모래나 흙이 아닌 매우 차지게 질퍽한 뻘흙(개펄)이 드러난다.

펄에는 여러 염생식물이 자라며 게, 바지락, 고둥, 낙지, 주꾸미 등을 품어 안았다.

서해 갯벌은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기능과 자연재해, 홍수 조절뿐만 아니라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는 소중한 생명의 보고다.

육상생태계와 해양생태계 사이에 놓여 있어 두 환경 사이에 완충작용을 하며 거기에다 심미적 기능도 지대한 갯벌이다.

나문재가 붉게 변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다육질 식물인 퉁퉁마디나 칠면초며 해홍나물은 갯벌에 붉게 깔려 색다른 풍경을 연출해 낸다.

아직은 연초록색인 해홍나물도 1센티쯤의 키에 그것도 듬성듬성, 가을이면 붉은 융단을 깐 듯 갯벌 자우룩해지는데....

누구라도/밀물 드는 저녁 갯벌에 서서/나문재 밭을 보거든/그저 붉게 깔린 바닷가 꽃밭쯤으로/바라보지 말 일이다.

인천에 살며 인천을 노래한 시인 이가림의 나문재 시 일부다.


갯나물인 나문재


# 유년기 풍경 하나 - 해당화 향기



해당화는 유년기적부터 유독 좋아하는 꽃이었다.

충청도 서해안에는 향기로운 해당화가 흔하게 피어 있었다.


이맘때 외갓집 바닷가 둑방길이며 해변에는 진다홍 해당화와 연분홍 갯메꽃이 죽 깔려있다시피 했다.


마을 언니들 따라 바지락이며 황바리(농게) 능쟁이 버글대는 갯가 쫓아가는 게 그리도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해당화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뻘밭이 위험하다며 한사코 말리는 외숙모 몰래 게 잡으러 가는 언니들 눈치껏 따라잡아야 했으니 나름 요령이 필요했다.


미리 구럭과 호미를 헛간에 숨겨놓았다가 마을 언니들이 갯일하러 갈 시각쯤이면 도구 챙겨 들고 내뺐으니까.

물 빠진 갯벌(뻘밭)은 무릎까지 쑥쑥 빠지는 데다 갑자기 물이 들이차는 갯골(갯고랑)이 있어 사실 아이들에게 위험한 곳이다.

그럼에도 방학 때면 갯일에 재미 붙여 여러 번 댕기머리 처녀들 따라 살짝궁 바다에 가곤 했다.

금단의 사과가 더 맛져 보이는 것처럼 그래서 더욱 차지게 재미있었던가.

잰걸음으로 선녀골 재 넘고 간척지 긴 제방 둑 걸어 갯가에 닿으면 둑길에 무리 지어 핀 진다홍 해당화, 사르르 눈 감기던 그 향기.

바투게 난 길고도 예리한 가시들로 꽃 가까이 범접만은 불허하나 그 화사한 빛깔과 매혹적인 향기만은 단연 명품이었다.

땡볕 아랑곳 않고 바다로 내빼곤 한 이유는 이처럼 해당화 연연한 꽃 이파리와 청신한 향에 이끌려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까닭이리라 여겨진다.


# 풍경 둘 - 염전의 기억



영원토록 이어지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끝도 없이 수차(水車)를 밟아 물레방아 돌게 하는 무자위질.

요즘에야 관개시설이 잘돼있어 논에 물 대기가 수월하지만 전에는 용두레질을 하거나 무자위를 돌려 논에 물을 댔다.

바지락 캐러 가는 길목인 간척지에, 직사각형으로 깔려있던 염전 역시도 이 방법을 빌려 바닷물을 염전에 댔다,

바닷물을 가둬 놓고 햇볕에 말려서 소금을 만드는 전통 제조 방식에 따라 생산되는 천일염이다.

염전에서는 먼저 바닷물을 저수지에 모았다가 두 개의 증발지를 거치고 결정지 통과시켜서 염전에 댄 다음 햇볕과 바람의 힘으로 새하얗게 맺히는 소금을 살살 긁어모았다.

베적삼을 어깨까지 걷어붙인 인부들은 수건을 목에 걸친 채 진종일 수차를 밟거나 염전 바닥을 고무래로 반반하게 고르는 작업을 했다.

그들은 일이 워낙 단조로운지라 노동요인 듯 숫자를 매기면서 무슨 노랫소리를 연신 흥얼거렸다.

되풀이되는 가락은 그러나 흥겹기보다 삶의 고단함이 배어 있어서인지 가락이 자못 처연스러웠다.

나이 들어 외지로 떠도는 한동안, 외가 동네를 잊고 산 세월이 길었다.

그간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서인지 대호 간척지에 있던 염전은 어느덧 사라져 버렸고 소래염전이 최대 소금 생산지로 떠올랐다.

지금은 도시 확장으로 인천 근교 소래 대신 전라도 신안과 인근 도서지방이 천일염 생산처로 굳어진 모양이지만.

인천, 하면 앞으로 내 기억회로에 떠오르는 두 풍경은 오래 잊고 산 염전과 나문재와 해당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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