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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1. 2024

자유공원에서 자유 세상 누리며

막연한 그리움이던 지명 하나가 있었다.

월미도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 일이다.


그 섬 앞에서 엄마가 들고 선 양산 아래 나는 강보에 싸인 채 외숙모 품에 안겨 있었다.


생애 최초로 찍힌 사진이었다.


전쟁으로 외삼촌은 당시 인천에서 벌인 사업을 접고 낙향했다.


어릴 적 외숙모 집에서 보았던 흑백사진 한 장이 불러일으킨 환상 때문이던가.


대학시절 일부러 월미도에 간 적이 있었다.


기억할 수조차 없는 아기 때 처음으로 찍은 사진 배경이 월미도였다는 인연으로 내심 그려왔던 월미도.


형상이 달의 꼬리를 닮았다는 섬은, 섬도 아닌 어정쩡한 황무지에 불과했다.


해수욕장이 있는 유원지였다지만 당시는 매립공사장 흙먼지만 날릴 뿐 월미도의 영화는 풍설로나 전해질까.


오후 녘 월미도 바닷가는 그만큼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그 후 더 이상 월미도를 찾을 일도, 인천에 갈 계제도 없었다.


서울 올라간 김에 인천에 들렀다.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과도 눈인사 나누고 소래포구 갯벌도 보고 싶어서였다.


유월을 맞자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육이오, 그때 가본 자유공원이 절로 생각났다.


유난히 창공 푸르던 날 올라간 자유공원.


동인천역에서 언덕길 걸어올라 왼쪽 홍예문 일별하고 숲길로 들어섰다.


자유공원에서 처음 마주한 풍경은 우뚝 치솟은 인천 학도의용군 호국기념탑과 결기 어린 표정의 젊은 군인 동상이었다.


젊은이들이여! 나가자! 지키자! 우리 조국을! 우렁찬 함성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묵직한 인천시민헌장비를 지나자 자유공원의 주인공인 맥아더 장군 동상이 높직한 자리에서 서해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세계 전사(戰史) 상 가장 많은 상륙작전을 모두 성공으로 이끈 상륙작전의 귀재였다.


인천상륙작전 덕에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은 열세에 처해있었던 6.25 전쟁의 전세를 단숨에 뒤바꿔놓았다.


군사학자들도 이 작전을 20세기 역사상 최고의 군사작전이라 평한다.




인천 자유공원은 인천항 개항 5년 만에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서구식 근대 공원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양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 인천, 해발 69m의 나지막한 응봉산 자락에 1888년 조성되었다.


서울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꼽히는 탑골공원보다 조성 시기가 9년이나 앞섰다.


대한민국 어디 가나 조경이 잘 가꿔져 있듯 이곳 자유공원도 숲과 꽃, 조각품, 기념탑, 산책로 등이 알맞게 배치돼 있는 쾌적한 공간이었다.


소규모 동물원도 있고 인천 앞바다가 마주 보이는 팔각 정자인 연오정은 전망이 훌륭하다고 알려져 있는 곳인데 야경 더욱 볼만할 듯.  


최초의 근대식 기상 관측소인 인천기상대가 공원 북쪽에 있고 광장에 임시정부 수립의 터전이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자유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맥아더 동상을 비롯 인천 학도의용대 호국 기념탑, 인천시민헌장비,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탑 등이 서있다.


맥아더 동상은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7주년이 되는 1957년 9월 15일에 시민들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 장군이 한강 전선을 시찰하고 복귀한 직후인 1950년 7월 참모장 아몬드 소장과 이 계획을 진척시킨다.


이 작전을 통해 북한군의 병참선을 일거에 차단하여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의 계기를 조성했다.


연달아 이어진 수도 서울 탈환은 국군과 유엔군의 사기를 드높였다.


이는 맥아더 장군이 북한의 남침 이후 인천지역에 대한 작전을 통해 북한군의 병참선과 배후를 공격하여 전쟁을 반전시킨 쾌거였다.


2005년 9월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으로 자유공원만이 아니라 조야가 시끄럽던 적이 있었다.


그때 철거를 주장하는 측에선 이런 해괴한 논리를 들고 나왔다.


 "맥아더는 전쟁광이다. 인천상륙작전 자체도 야비한 것이다. 북한군 본대가 낙동강에 내려와 있었는데, 맥아더가 북한군 후방인 인천을 쳤다. 비겁한 작전이다."라고 주장했다. 흠? ​


 전쟁에서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명문 군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아서 맥아더로 육군 장성으로서 필리핀의 군정 총독이기도 했다.


맥아더는 일찍이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수석졸업, 최연소 장군, 최연소 참모총장에 육군 원수까지 군의 주요 직위를 거쳤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맥아더 같아 보였다.


한국전쟁을 빨리 마무리 짓고 전쟁영웅으로 명예롭게 예편한 다음에 펼칠, 보다 큰 야망이 그에게는 있었다.


미국 국민의 열렬한 인기를 등에 업고 공화당에 입당하여 1952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산상륙작전 실패에 이어 중국까지 밀고 올라가려다 트루먼과 충돌, 불명예제대를 하면서 백악관 입성의 꿈도 사라졌다.

매사 과유불급이다, 다만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준 쾌거만으로 그의 이름 앞에 꽃다발 올려도 좋으련.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 맥아더의 정확한 판단과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역에서 목숨 바친 덕이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사라질 뿐.

부산에 가면 그들이 이 땅을 지키다 잠든 유엔 기념공원에 들러 깊이 고개 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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