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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30. 2024

아치스캐년의 낙조

유타주

아치스 국립공원과 캐년랜즈의 여행 거점인 모압으로 달렸다.

가도 가도 지평선 아득한 데다 사방 그저 황막하기만 한 유타의 풍물.

일기까지 종잡을 수없이 변덕맞아 한층 더 황망스러웠다.

정수리 따가운 햇볕이 시종일관 따라붙는듯싶더니 난데없이 먹장구름 떼 겁나게 몰려들었다.

갑작스러운 뇌성벽력에 이어 양동이로 들이붓듯 퍼부어대는 폭우도 만났다.

허허벌판에서 느닷없이 콩알만 한 우박이 차벽을 난타하기도 했다.

수잔 서랜든이 주연한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질주 장면처럼 거칠 거 없는 황야를 달리다가 무지개도 보았다.

모압에 닿았을 때는 해가 한 뼘쯤은 남은 오후 녘.

자연 arch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독특하다는 아치스 캐년에 마악 홍시 빛 노을이 물들어 가는 중이었다.

장엄한 대자연의 조각 전시장은 활활 불타오르듯 이글거리고 있었다.

무한외경, 두 손 경건히 모우 게 하는 화염은 신령스럽고도 황홀하고 너무도 아름다워 눈이 부셨다.

거센 열기에 줄줄 녹아내려 석상이란 석상 모두 흔적 가뭇없어질 것도 같았다.


유타의 상징, 아치스



아득하다



물경 3억 년 전



바다가 육지 되었다



물과 바람만이 나를 빚는다



사암인 황톳빛 암벽 군



괴이고 고인 듯



누리 만년 우뚝 서서



광년을 되새김했노라



부드럽고 강건하게



섬세하고 거칠게



무궁한 일월을 새겼노라



나 이대로



세세생생 오연히



유타의 황야를 지키리니



생성과 소멸



침식과 풍화작용



운명처럼 껴안고서


마주한 서녘 지평선 위, 얇게 깔아 둔 구름장 사이로 해가 이울었다.

숫기 없는 처자처럼 구름 뒤에 살짝 숨어서.

해넘이라 하던가.

냉정하게 싹둑 잘라 일몰이라 부르기엔 어쩐지 매몰찬 것 같아 입만 달싹거리며 '음~해가 지는군' 하였다.

이럴 땐 깍듯한 단어 태양이 아니라 어감 부드러운 우리말 '해'가 어울린다.

그러나 유타에서 만난 선셋만은 노을이란 연한 언어보다 석양이 걸맞겠다 싶은 건,
전체적 배경의 규모가 스펙터클 하면서도 거친 까닭이다.

석양의 무법자를 노을녘 무법자라 번역했다면 도통 어울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우스꽝스럽겠다.

'황혼'은 늙수그레 허리 굽은 노인을 떠올리게 하므로 이곳과 격이 맞지 않고.

변산 낙조대의 선명스러운 이미지로 인해서인지 '낙조'는 왠지 황해 바닷가라야 짝 제대로 이루는 느낌이지만.



해의 잔영이 완전 스러지고 나자 이윽고 색색가지 빛의 향연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로라나 무지개만이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아니다.

시시각각 색감 달리하는 서천, 고즈넉하면서도 장엄하고 아련하면서도 강렬하다.

그러면서 숭고하다.

대자연이란 무한대의 캔버스 그 화폭 가득 미묘하니 섬세하게,

부드럽고도 광폭하게, 차분한가 하면 대담하게, 거침없이 자재로운 붓질을 한다.

뛰어난 명장 그 뉘라서 이토록 완벽한 신의 작품을 흉내라도 낼 것인가.

빈센트 반 고흐는 아를르에서 본 풍경의 아름다움을 1%도 자신의 화폭에 담아내지 못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고흐의 고백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어떤 문장, 선율, 그림, 사진이 감히 자연을 옮기면서 표현상의 만족을 욕심내랴.

산불이 번지는 듯하고 용암이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큰 너울이 몰려오는 듯하고 새떼의 군무와도 같은 석양빛.


아치스의 선셋은 마치 알코올이나 환각제에 취한 양 가벼이 공중으로 떠올라 구름 위를 유영하듯 의식마저 몽롱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빛의 무리가 화려하게 펼쳐둔 주황빛 주단을 거두며 어둠 속으로 사그라들 때까지 천변만화하는 서녘 하늘.

여간해선 멈출 것 같지 않던 빛의 축제가 이윽고 잦아들자 서서히 사방에 어둠살이 내린다.

하루의 여정을 마친 만족스러운 느긋함.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윽한 응시와 포용을 동시에 허락하는 어둠.  

참 편안하다.

지금 내가 서있는 삶의 자리가 바로 여기 짬이겠구나. 시간대도 역시 마침맞고.

바윗 전에 앉아 지난 발자국들을 돌아본다.

내게도 희망찬 아침이 있었고 빛나는 젊음의 한때가 있었으며 달큰쌉쌀한 중년기 방황하며 넘어섰다.

고뇌와 갈등으로 들끓던 장년기라는 혼돈의 시간도 보냈다.

뿐인가, 가로 늦게 미국 와서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일에 얽매여 고인 물처럼 지낸, 예측지 못했던 과정도 내 생의 일부로 겪어냈다.

바위에 걸터앉은 그림자마저 길게 늘어진다, 안 그래도 나른해지는 시각이다.

주변 사람들도 제각금 선정에 든 듯 침묵하고 빛은 아늑하니 부드러우며 공기까지도 안온한 게 아주 평화롭다.

고요로이 잠시 멈춤, 온전한 쉼의 시간이다.

수유가 영원이듯 이 순간 무량하게 이어질 것만 같다.



석양빛 이울면서 이윽고 아청빛 밤하늘에 보석 알갱이처럼 작은 별들 돋아나더니 금세 밤송이 같은 별 무리로 떠올랐다.


이어서 미리내 흐르는 은하의 강 천공 드넓게 펼쳐졌다.

몽환적이라 더욱 감동스러운 별밤을 즐기면서 분위기 기묘해서일까.

칠흑 어둠 속에서 언니네 가족 삼대와 어우러져 한바탕 인디언 샤먼 춤까지 접신한 듯 추어댄 그 밤.

아치스 별밤의 추억은 그래서 더욱 신비롭고도 아름다웠고.

저만치서 손 흔드는 개미만 한 사람들.

대자연 앞에 서면 인간사 백 년 세월이 얼마나 하찮은가. 


더구나 미미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끼리 벌이는 도토리 키재기 판 세상이라니.

여러 캐년을 돌아보면서 거듭거듭 수긍되고 절대 감동하게 되는 특징 한 가지가 있다.

미국의 국립공원은, 멋진 경관만으로 지정된다기보다 지형적으로 특이하거나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장소가 아닌가 싶다.

그처럼 한국과 결이 다른 선정 기준에다,  인위적인 시설물은 최대한 배제시키는 효율적 관리가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이겠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연환경 훼손됨 없이  잘 유지시켰다가 고스란히 후대에 물려주려는 그들의 정신이 더없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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