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고향 가는 멸종씨앗'이란 신문의 머릿글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농업 관련 유전자원인 종자의 중요성을 인식한 미국은 일찌감치부터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자원을 모아 왔다.
현재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원은 45만여 점.
원래 콩이 나지 않는 미국이 세계적인 콩 수출국이 된 것은 한국에서 가져간 콩 종자 덕분이다.
널리 상품화된 라일락은 북한산 정향나무가 건너가 미스킴 라일락이 되었고 데이릴리는 우리나라 원추리와 참나리를 개량한 꽃.
지난 2002년 미국 농업연구청과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의 기술협력에 관한 양국의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이후 다양한 농업교류를 해오던 중, 한국에서는 이미 멸종된 씨앗이 미국 내에서는 존속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오랜 노력 끝에 반환협정이 열매 맺어 미국이 수집해 왔던 우리의 토종 씨앗들이 돌아오게 되었다.
한국 내에서는 멸종돼 찾아볼 수 없는 콩, 팥, 시금치 같은 농작물의 씨앗 1679점이 반환된다고.
이미 목화씨 한 점, 들깨, 참외 씨앗 등 280점이 돌아왔고 나머지는 올해 안에 온다는 것.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면서 그 외 알게 모르게 국외유출된 종자들이다.
그간 국토개발 과정에서 자생지가 파괴되면서 멸종된 식물들도 허다하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개량 품종만 골라 재배하다가 사라져 버린 토종 씨앗들이
반세기 만에 귀향을 하는 것이다.
오래전 어느 들꽃모임에서 식물학자로부터 설마? 하며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한국의 토종식물이나 희귀 식물을 미국 식물학자들이 은밀히 채취해 가서 미국땅에 맞게 품종개량을 하여 상품화시키고 있다고.
얼마 전 현지 신문에서 그 사실을 증명하는 위 기사를 접했다.
한국의 정향나무와 나리꽃을 종자로 하여 보다 화려하고 강한 품종의 꽃을 만들어 미 전역의 정원수나 화초로 인기리에 보급하고 있다고.
미국에 온 첫해 봄.
벚꽃이며 목련은 그렇다 쳐도 흐드러진 개나리를 보자 좀 놀라웠다.
특히 화원마다 즐비한 금낭화와 매발톱꽃은 우리의 야생초로만 알고 있던 터라 배신감마저 들었다.
초여름 길가에 줄지어 핀 원추리를 만났을 때는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으며 자귀나무꽃이 하늘대고 능소화가 농염한 미소를 던질 때는 의아하기만 했는데...
요즘 미동부 길가마다 원추리꽃 혹은 참나리꽃이 한창이다.
개량종이라 우리의 산야에서 보던 조촐한 모습 하고는 좀 다르지만 아무튼 원추리 맞다.
이 무렵 지리산에 가면 능선에 좌악 깔렸던 원추리꽃.... 생각난다. 2007
아, 저 꽃! 하며 반가움에 탄성을 보냈던 게 십수 년 전.
근데 너 왜 여기에서 사니?
오직 한국에서만 자라는 토종인 줄 알았는데 지조 없이 미국땅에서 그리도 흐드러지다니.
앙큼한 변절자 같아 좀 얄밉고 괘씸하고 그랬더랬는데...
요즘 어딜 가나 흔한 게 데이릴리꽃이다.
한창 제철 맞은 원추리꽃이 무성하게 피었다.
도로변, 공원, 상가정원 한 모퉁이에도 빠지지 않는다.
팬지 피튜니아 데이지처럼 미국인의 꽃밭에 당연히 끼는 꽃이 되어버린 원추리꽃.
생장력과 번식력 좋고 성정이 까탈스럽지 않은 식물이라서인지 괴임 받으며 해마다 방석뙈기만큼씩의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개화된 세상에 불려 와서 분단장시키듯 품종 개량을 거쳐 이름마저 무슨 릴리다.
그렇다고 널 못 알아볼 리 있으랴.
어린순 데쳐서 나물로 무쳐먹은 원추리다.
개망초 무리 진 여름 언덕에 주황빛 선연하던 그 꽃.
노고단에도 백령도에도 아우라지 강가에도 오색폭포 주변에도 한국 산야 어디서나 만나던 너 원추리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