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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30. 2024

제주에서 타본 배 중 눈 맛 최고

서귀포의 올 사월은 내동 안개비-황사-구름-소나기로 점철됐다.

원래 고사리장마가 진다는 사월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하루도 빠끔한 날이 없었다.

정말이지 너무하다 싶었다.

우중충한 날만 이어지던 중 지난 토요일 웬일인지 간만에 청명한 기상도가 펼쳐졌다.

짙푸르게 창창한 하늘과 바다, 실로 얼마만인가.

이 좋은 날씨를 어이 놓칠쏘냐.

벌써부터 별러온 대로 범섬, 문섬, 섶섬, 새섬, 외돌개 등 해안을 둘러보는 유람선을 타려고 서귀포항으로 내달았다.

배를 타려면 제일 중요한 게 날씨다.

고깃배를 모는 어부도 아니니 풍랑을 염려해서가 아니다.

물빛 푸르고 하늘 맑아야 배를 탈 기분이 나는 어디까지나 유람객 입장에서다.

그간 마라도 가파도 우도 비양도 차귀도 추자도행 여객선을 타봤고 대포 주상절리와 마주하는 요트도 탔었다.

물론 여객선은 섬에 다녀오기 위해서였지만 그때마다 날씨 좋은 날만 택해서 탔다.

하늘빛 청청해야 쪽물 풀어놓은 양 바다 빛깔 도 창창, 며칠 머무는 잠시 여행객이 아닌 터라 배를 타려면 새벽부터 날씨를 살폈다.


이날은 마침 해풍도 고요하고 찬란한 햇살 눈부셨다.

새연교 앞에서 서귀포 유람선 뉴 파라다이스호 삼층 전망대에 올랐다.

배는 하루 세 번 출항하는데 첫 배인 11시 30분 유람선은 정시가 되자 항구를 떠났다.

새연교가 서서히 뒤로 물러나면서 비로소  선체는 방향을 틀었다.

흰색과 빨간색 등대가 선 방파제 사이를  벗어나자 한라산 늠름한 자태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운무에 가려지기 일쑤였던 평소와 달리 더할 나위 없이 쾌청한 일기였다.

좌측에 섶섬이 보이고 바로 앞쪽으로는 문섬이 다가섰다.

고물에 하얗게 부서지는 흰 파도 뒤편에 거느리고 유람선은 해안절경을 훑으며 달렸다.

서귀포해양도립공원에 속해 있으니 인근 풍치는 달리 설명이 필요치 않은 곳.

다만 황우지해변에 일제가 만들어 놓은 진지동굴들이 나라 잃은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올레길 중 아름답기로 소문난 7코스가 포함된 지역으로, 석탑처럼 우뚝 솟은 외돌개가 바다에서는 좀 낯설게 보였다.


유람선은 남서쪽으로 미끄러지듯 달려 범섬 가까이에 이르렀다.

저만치 크루즈 한 척이 정박해 있는 강정항이 보이고 더 멀리 산방산도 아슴히 드러났다.

범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형상이라 범섬으로 불린다는데 아주 오래 전인 고려말, 제주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목호들이 마지막으로 이 섬에 들어가 저항하다가 최영 장군에 의해 토벌된 역사가 서린 섬이다.

암벽에 뿌리내린 해송과 희귀종인 후박나무 생달나무 소기나무가 서식하는 다양한 생태계를 품은 섬이기도 하다.

범섬 주상절리대로 이뤄진 80미터급 기암절벽에 둘러싸여, 첫눈에 오히려 한 덩이 잘생긴 수석과도 같았다.

장엄하게 압도해 오는 각진 주상절리 암벽을 올려다보노라면 자연이 빚어낸 신비로운 풍광 앞에 탄성이 발해질 따름.

그중에도 해식동굴의 장관은 화산섬 제주에서만이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비경이 아닐 수 없겠다.

법환마을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콧구멍 같은 쌍굴을 비롯해 유람선 뱃머리를 들이밀 수 있는 커다란 해식동굴이 발달해 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42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무인도이나 소유권은 한 개인에게 있다고.

다만 범섬 옆 서쪽에 딸린 작은 섬인 치마섬은 사유지가 아닌 국유지라고.

인근 섶섬 문섬과 함께 연산호를 비롯한 각종 산호군락이 자생하고 있어 스쿠버다이빙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동시에 암초가 발달한 해안을 따라 참돔, 돌돔, 감성돔, 벵어돔, 자바리 같은 고급어종이 잘 잡히는 낚시 포인트이기도 하다고.

한 시간이 후딱 지나 어느새 아쉬운 귀항길.

태양 찬연히 빛나고 바람결 청량하니 배를 타기에 최적의 날씨까지 받쳐줘 더없이 만족스러운 유람선 승선체험을 했다.

현장 구매 티켓이라 일금 1만 6천 원을 지불했지만 대만족이었고.

5만 원 홋가하던 요트는 비록 내돈내산은 아니었어도 에게게! 이게 전부야? 너무하네, 싶었는데 이번엔 서귀포 여행객들에게 강추할 만 하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가능한 한 쾌청한 날 배를 타야 바다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점 유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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