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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1. 2024

엘 카미노 레알의 꽃길 따라

캘리포니아 미션

El Camino Real(왕의 길)을 따라 101번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지나 소노마까지 올라갔던 것은 지난 12월이었다.

짧은 일정으로 그래도 애초 목표였던 미션을 여덟 곳이나 들렀으니 생각보다 알찬 소득을 건졌다.

뿐 아니라 초기 캘리포니아 역사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었으며, 캘리포니아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기후와 풍광 겸비한 절경지인
솔뱅, 카멜, 몬트레이, 나파밸리 등의 여정을 덤으로 누렸다.  

특히 소노마에서 나파로 이어지는 능선 부드러운 포도원 길 따라 노오랗게 이어진 꽃길은 몽환적이었다.


벌겋게 녹슨 철사줄 같은 포도나무와 연연한 유채꽃의 콘트라스트.

봄에나 피어나는 연노랑 유채꽃이 포도원 사잇길 따라 무리 지어 하늘대는 것을 본 순간, 환호성과 감탄사가 동시에 터졌다.  

무성하게 흐드러져 환한 꽃무리들은 제철이 지나면 갈아엎어져 포도나무에 영양을 주는 밑거름이 된단다.

그 식물이 품은 알칼리 성분이 포도밭 토양의 질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뒤에 알고 보니 와인 단지 주변에서 봄마다 노랗게 피어나 장관 이루는 꽃은 유채가 아니라 유채꽃보다 색상이 부드러운 미색 겨자꽃,


머스터드꽃 축제가 신춘맞이 지역행사로 해마다 성대하게 열린다고.

캘리포니아 들길 어디에서나 흔히 접하는 머스터드꽃은 지중해 연안에서 중앙아시아 고원지대가 원산지인 외래식물이다.

하지만 이젠 캘리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야생화로 드넓게 자리 잡았다,

카멜
소노마
나파밸리
몬트레이
솔뱅

길섶 언저리며 산자락 타고 질정 없이  노오란 바람이 마구 나부껴댄다.

가볍디가벼운 꽃바람 일렁이며 끝 모르게 번져가는 색감 눈부셔 선글라스를 끼고는 차창을 내렸다.

겨자 꽃 색깔은 풀 내음 같은 풋내가 스민 연둣빛 감도는 노랑이다.

노랑빛 중에서도 가장 여리고 풋풋하게 노란 겨자 꽃.

오래전 프랑스 전원마을 지나며 해바라기 밭을 본 적이 있다.

현요함으로 어질어질 멀미마저 일으키던 강렬한 노란빛 해바라기 꽃이 템페라화였다면 빛 온유히 부드러운 겨자 꽃은 파스텔화를 그려낸다.


그렇게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겨자꽃이나 갓꽃 유채꽃은 식물 분류학적으로 한 식구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얼핏 보면 그 꽃이 그 꽃, 서로 구분이 안되고 이파리를 따라가 봐야 비로소 식별된다.

다들 십자화목 십자화과 배춧속의 채소로, 유채는 야생겨자와 순무 교배종이고 갓은 흑겨자와 순무를 교배해 태어난 품종이다.

야생겨자로부터 특정 형질의 일부를 교배해 품종개량한 것으로 알려진 양배추는 겨자의 잎눈, 브로콜리는 겨자의 꽃눈, 콜라비는 겨자의 줄기, 케일은 겨자의 잎을 특화시켜 만들어낸 품종이라니 위세 대단한 겨자다.   

겨자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재배식물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것 중의 하나로 B.C. 1600년 경 이집트의 파피루스 문서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캘리포니아 초기 역사는 겨자꽃 피워낸 미션의 역사와 겹쳐진다. 그  미션의 역사는 정복의 역사이기도 다.

대항해시대를 연 해양강국 스페인, 구석기시대에 남겨진 동굴벽화로 유명한 알타미라가 스페인 북부에 위치해 있는 걸로 봐서 이미 선사 이전부터 사람들은 그 땅에서 살았다.

기원전 2세기 때 6백 년간 로마 지배를 받았고 711년에는 용병으로 온 무어인이 자리 잡으며 8세기 초, 이베리아반도의 3분의 2가 이슬람 세력권에 들었다.

이때 동서양 간의 다양한 문물 교류가 이루어졌으니, 유추컨대 향신료 겨자가 유럽에 전파된 시기도 아마 이 무렵일 듯.

13세기 기독교인들이 국토회복운동을 일으키면서 1492년 마침내 가톨릭 부부 왕인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가 집권했다.

그 후 1세기 동안 스페인은 중남미와 아시아를 장악한 유럽 최강국이 되었다.

식민지 개척을 위해 당시의 국왕이었던 카를로스 3세의 명을 받아 1769년 후니페로 세라 신부를 책임자로 한 프란체스칸 수도사들은 군대와 더불어 아메리카로 파견됐다.  


스페인 국왕은 식민지 확장을 위해 군대까지 딸려 보냈으니 선교의 순수한 열정은 갈등과 수없이 직면하게 됐으리라.


왕의 길을 다지던 그들 얼굴은 햇볕에 새카맣게 타 갈라지고 발은 부르터 물집이 잡혔으리라.

때론 거친 숲에서 들짐승과 마주치고 풀섶에 숨은 뱀도 만나 혼비백산하였으리라.

자유분방한 원주민들은 모둠살이 방식은 물론 그들의 교화를 영 못마땅히 여겼으리라.

순교에 다름 아닌 사명의 길은 고난의  길.


 역사의 씨줄 날줄 올올이 짜나가며  프란체스칸들이 꿈꿨던 하늘나라의 소망은 이루어졌던가.

그들 본래의 사명과는 무관하게 아무튼 미션이 건립된 지역은 훗날 샌디에고, 로스앤젤레스, 샌호세,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를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종교적 열정과 개척 의지로 뜨겁던 그들은 샌디에고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 북쪽 소노마까지 '왕의 길 (El Camino Real)' 루트를 따라 미션을 세워나갔으니까.

말 타고 하루 걸리는 거리마다, 약 오백 마일 되는 길가에 총총 스물한 개의 미션을 54년간에 걸쳐 그들은 건립해 나갔다.  

군 요새와 성당이 혼재된 형태로 미션이 건축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초기 미션은 정복을 위한 전진기지이자 종교시설이었다.

각 미션에서는 인디언들을 개종시키고 스페인어를 가르쳐 철두철미 충실한 스페인 신민을 만들고자 했다.  

1834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미션은 폐쇄됐지만 현재의 캘리포니아 주요 도시의 기반이 된 미션이다.

 


엘 카미노 레알 탐험에 동행한 크레스피 신부는 자신의 일지에 당시의 일들을 다음과 같이 글로 남겼다.

“나는 세라 주임 신부로부터 겨자씨를 받아 들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그들 탐험대 일행과 함께 몬트레이로 출발하였다.”

겨자씨는 예수님이 하늘나라를 비유하며 예로 들기도 하였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에 비유된 아주 작디작은 씨앗이다.

영어로 'mustard seed'라 하면 '큰 발전의 가능성을 간직한 작은 일'이라 하듯, 욥기의 문구대로 비록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탐험대의 일원으로 길을 떠나기 앞서 크레스피 신부는 세라 신부로부터 겨자씨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는 미지의 땅을 걸어 나갔다.

수풀길 헤쳐가며 무진무진 걸으면서 그는 겨자씨를 알맞은 자리마다 고르게 뿌렸다.  

순간 겹쳐지는 고사, 국법대로 고려장 하러 노모를 지게에 지고 아들이 산속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어머니가 계속 솔잎을 따서 길가에 뿌리기에 왜 그러시느냐고 여쭤봤다.  

'너 돌아갈 길을 표시해 두기 위해서란다'는 말씀에 노모를 모시고 되돌아와 끝까지 지성으로 봉양했다는 아들 얘기 말이다.

왕의 길을 개척해 나가던  초기, 프란치스칸들이 겨자씨를 길 없는 길목마다 뿌린 것도 그처럼 되돌아갈 길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다른 한 가지는 좋은 미션 터를 발견하면 겨자씨 뿌려, 훗날 밝고 노란 겨자꽃들이 만발한 곳은 미션 지역임을 표해둔 증표로 삼았다.

그때부터 바람결 타고서 온사방으로 번진 씨앗이 해마다 캘리포니아 연안에 노오란 꽃길을 열고 있으니.

야생화 시즌인 요즘, 어디나 지천인 유채꽃 겨자꽃이 강인한 야생성으로 무리 지어 봄 들녘을 화사하게 장식하고 있다.  

왕의 길을 따라가 본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뒤란 채마밭에도 유채꽃이 한창이다.

배추꽃 갓꽃도 만발했는데 연보라 무꽃은 겨우 네댓 송이 피었다.

무공해 깨끗하고 싱싱한 소채 찬거리도 반갑지만, 흐드러진 꽃구경 재미도 쏠쏠할 정도가 아니라 옹골차다.


귀여운 쌍떡잎 유아기를 거쳐 싱그런 소년기를 지난 텃밭은 바야흐로 꽃 피는 청춘기.


벌이 어찌나 많이 모여들었는지 떼거리로 잉잉대는 벌소리가 한낮의 고요마저 휘젓는다.


노랑 연보라 장다리꽃에 취한 나비와 벌떼들, 꽃에서 꽃으로 날아 앉는 나래짓이 저마다 바쁘다.


꿀을 좇는 벌의 탐닉일망정 장다리꽃들은 행복의 절정에 선다.


온전한 합일을 이룬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자리가 꽃에게도 벌에게도 화양연화겠다.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 황홀한 봄날이자 빛나는 생의 황금기를 의미한다는데.


문득 궁금해진다, 그대들의 화양연화는 정녕 언제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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