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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1. 2024

신록의 오월에는 연보라꽃을

금강공원 거닐다가 만개한 등꽃을 보았다.

때 이른 사월 초였다.

의외였지만 다음날 혹시나 하고 범어사 등운곡을 찾았다.

산속은 기온이 낮아서인지 전혀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연연히 보랏빛 어리려면 아직 먼 듯했다.

일주 간격으로 계속 범어사에 올라갔다.

쾌청한 날이면 주중에도 산으로 향했다.

꽃소식은 더뎠다.

숲은 하루 다르게 몽글몽글 부드러이 부풀어 올랐다.

눈엽 연둣빛에서 녹두 빛으로 숙성되더니 점차 초록이 되어갔다.

등꽃 꼬투리도 차츰 실해지며 주말쯤엔 벙글 거 같았다.

보랏빛 운해까지는 어림없으나 드디어 개화한 등꽃 무더기와 마주했다.

시렁 만들어 철철이 손질해 준 공원에서처럼 질서 있거나 우아한 자태는 아니었다.

제멋대로인 등운곡 등꽃은 비정형의 질박한 자유로움으로 외려 더 아름다웠다.

서울에 올라가 남도지방 여행 다니다 중순 지나 내려올 예정이라 별렀던 등운곡 등꽃 못 만나나 했는데, 고마웠다.

금정산 오가며 이 봄, 연보라에 향기 은은한 라일락 등꽃 오동나무꽃과 차례로 조우했다.

그 꽃들은 추억 어린 특별한 꽃이고 그래서 더 정겨운 꽃들이다.

라일락은 전에 살던 대구 한옥집 안마당에 너른 그늘 만들어주던 꽃나무다.

딸이 태어나던 해 유난히 탐스러이 피어나 대청 유리창에 보랏빛 곱게 어리던 라일락꽃,

등꽃의 기억은 대구집 담장에 주렴처럼 늘어져 있기도 했지만 이곳 등운곡에 주저리주저리 몽환처럼 스며들었다.

오동나무꽃은 외가 마당 초입에 서서 오월마다 향기를 안겨주었기에 잊지 못하는 꽃이다.

지난겨울 병풍사에 갔다가 길가에 선 오동나무를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잎 떨궜어도 목화 다래 같은 열매를 매달고 있어서였다.

그간 금정산 오가는 길에 만났던 라일락 오동꽃 등꽃, 내년 오월에도 우리 다시 만나자며 새끼손가락 마주 걸었다.

등꽃
라일락
오동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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