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May 01. 2024

라일락을 그리며


새벽녘. 청량한 대기와의 만남으로 새벽 산행은 내게 있어 하나의 은총이다. 그 시간대의 숲에 들면 투명한 듯하면서도 안개처럼 미세한 겹겹의 공기층으로 하여 호흡이 가빠진다. 밤새 나무들이 뽑아낸 숨결 때문일까. 그 기분은 산정에 가까워야만 트여온다. 마른 풀섶 바위 곁에 유독 푸른 잎 드러내 보이는 야생난이 두어 포기. 산죽이 바람에 쓸리며 파도 소리를 낸다. 오리나무 어우러진 冬木 가지에서 맑은 새의 지저귐이 들린다. 삐 뾰르릉~ 어떤 새일까, 자취는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새소리만으로 새 이름을 분간할 줄 아는 조류학자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운대가 부옇게 밝아올 무렵이면 나는 산 밑 동네의 골목길을 밟고 있다. 인근의 집들은 마치 장원이나 성채같이 당당한 풍모들이다. 압도할 듯 웅장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잘 다듬어진 집들이 한동안 이어진다. 바다를 마주하고 앉은 고급 주택가라 집집마다 정원도 훌륭하다. 가지 끝만 보아도 수령이 대단하거나 연륜 깊은 고목들인 배롱나무며 향나무에 석류나무. 모과나무는 아예 추상화 작품이다. 겨우내 청향 풀어내던 비파나무에다 귀공자 같은 태산목. 늘 푸른 동백에 수려한 월계수 옆에는 잎 진 후박나무. 자연석 새새의 철쭉 무더기에 훤칠한 종려죽도 멋지다.



라일락은 그 한 귀퉁이에 있었다. 담장 밖으로 뻗은 줄기 끝이 도톰하다. 어느새 꽃눈이 저리 부풀었나 싶어 새삼 세월을 짚으니 입춘이 멀리 스쳐가고 곧이어 우수… 삼월도 하순이다. 순간 우리 집의 라일락이 떠오른다. 대구 집에 남겨두고 온 보랏빛 꽃구름 아름다운 라일락 나무. 독채 전세를 주고 부산으로 이사 와 아파트살이를 하는 지금, 난생처음 지니게 된 내 집이라 언제나 정겹게 떠오르는 살뜰스러운 옛집이다.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다. 봄비 개인 사월 어느 날 나는 처음 그 집을 구경하러 갔었다. 그때 라일락은 만개해 있었다. 마당 한켠에 드리운 라일락은 바람이 일 적마다 꽃보라를 일구어댔다. 아련히 취할 듯한 향기를 풀어내면서. 너른 대청의 닫힌 유리문에 어리는 연보랏빛. 아아 그것은 환몽 같았다. 소녀처럼 탄성이라도 지를 것 같이 들뜨는 가슴을 간신히 눌렀다. 집을 장만해 주신 시어른이 옆에 계셨기 때문이다. 집 안팎을 두루 돌면서 마음에 드느냐고 물으셨을 땐 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것은 처음으로 내 집을 갖게 되는 감격이나 흥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야 재물에 눈 밝히며 애오라지 집착할 만큼의 나이도 아니었으니까. 예상외로 규모 큰 집을 마련해 주심에 감사했음은 물론이지만 재산 가치에 앞서 그 집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내 맘에 쏙 들어 너무도 좋았던 까닭이다.



너른 청마루에 상량문이 뚜렷한 아름드리 대들보, 부연으로 치켜올린 높직한 기와지붕. 담을 따라 등꽃이 휘늘어진 데다 장미 덩굴이 대문을 장식해 주던 집. 특히 백 년 생은 됨직한 우람한 라일락에 정신없이 매료되었다. 그 집으로 이사온 뒤 나는 더더욱 부지런해졌다. 아침저녁 닦는 마루는 나뭇결 그대로 반들거리며 윤이 났고 소고 소리를 낼 듯 팽팽한 미닫이문에는 새로 바른 한지가 정갈스러웠다. 문댈수록 길이 드는 유리알 같은 장판의 콩땜은 찐득한 나일론 장판과는 달리 촉감이 늘 삽상했다.



한증막더위로 소문난 대구다. 그럼에도 여름 내내 선풍기가 아쉽지 않았다. 대청에 앉아 앞뒷문 열면 맞바람에 날아갈 듯 시원했고 마루 틈새에서 솟는 서늘한 땅기운은 한낮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더구나 마당엔 라일락 그늘이 온통 덮여 있었으니. 다만 한옥의 결점인 외풍이 심해 겨울이면 추위 견디기에 이력이 났고 기왓골 바르랴, 어긋진 문 손질하랴, 몇 해 한옥에 살면서 반목수가 되다시피 했다.



해마다 나는 사월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라일락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다. 꽃을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그럴 만큼 라일락은 멋지고 아주 장관이었다. 라일락이 만개하면 뜰에 나와 공연히 서성거리길 좋아했다. 그러면서 유리창에 어린 라일락 꽃에 취해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며 샤먼처럼 두 팔을 치켜들기도 하였다. 더러는 달밤에도 밖에 나와 차가운 바위에 앉아 라일락 향이 전신에 젖어듦을 즐겼다. 어느 땐 일부러 대문 밖 동네 어귀로 멀찍이 물러나 라일락과 조화 이룬 우리 집을 흐뭇한 기분으로 조망해 보기도 했다. 라일락이 지면 눈 내리듯 흩날리는 꽃잎을 쓸어 모아 꽃나무 둥치 아래에다 묻어주었다. 곱게 결삭아 다시금 명년에 보랏빛 꿈으로 피어나길 기원하면서.



지금도 울안에 라일락이 선 집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는 어느 분의 시처럼 왠지 유정하니 살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산에 와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 집은 선뜻 팔 수가 없었다. 라일락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나이 들어 다시 그 집에 돌아가 살게 되면 그땐 꼭 추녀 끝에 풍경을 달 생각이다. -85년 봄-


 

작가의 이전글 신록의 오월에는 연보라꽃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