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워라, 뿌리의 힘

by 무량화


이럴 수가.... 저 바위와 소나무의 관계는?

나무줄기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겨우살이도 아니고 소나무야, 어쩌자고 바위에 뿌리를 내렸다니?

아니랍니다.


작디작은 솔씨 하나 수천 배 무게로 짓누른 바위 기어코 뻐개고 우뚝 선 겁니다.

생명의 힘은 이리 놀라운 것, 저마다 생명체 안에 깃든 생존의 의지 그 기적을 보여주고 싶었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했거늘 하물며 푸르게 드높이 용솟음치라는 성장의 씨톨이 지닌 가능성 포기할 수야 없지요.

너르디너른 기름진 땅 한 귀퉁이는 그만두고라도요.

형편없이 척박한 박토보다 더 악조건인, 꿈쩍 않는 암석 아래 내린 씨앗일지라도 말이지요.

사정없이 눈바람 몰아치는 극지방이나 불볕으로 목이 타는 열사의 사막에서도 생명체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냅니다.

잠깐 스쳐 지나는 백 년 인생들은 별생각 없이 그럽디다.

과연 버텨낼까 고개 갸웃하며 물음표를 달기도 하고 더러는 숙연해하기도 하며 자못 신기스러이 바라보곤 하는데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동물조차 대양과 사막 건너지 못하거늘,

그렇다면 주어진 제 자리에서 최선 다해 숨 넣어주신 분께 생명의 찬가 들려드려야지요.



바위를 뚫고 자란 이 소나무는 부산 금강공원 해양자연사박물관 입구 쪽 인근 산책로변에 위치해 있는데요.


지심 깊이 내린 뿌리로 물과 양분 흡수하고 하늘 향한 늘 푸른 솔잎 광합성하면 살아갈 충분조건을 갖춘 식물체인 소나무랍니다.

앉은자리를 탓해 무엇 하나요.

대안 없는 불평은 썩는 이치일 뿐인걸요.

도저히 저항하기 어려운 역경일지라도 숨은 뜻 곰곰 성찰해 봐야 하잖겠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일지라도 묵묵히 감내하면서 수많은 시간 바쳐 이뤄낸 현재의 결과, 가히 장하지 않나요.

마침내 억겁의 바위도 뻐개고 만 저항정신에 힘입은 저 돌올한 용기 가상치 않나요.

억누를수록 더한층 솟구쳐 오르고 싶은 생명의 오기였을까요.

사회 불평등과 불의를 보다 못해 젊은 피 들끓어 봉기한 프랑스 혁명군처럼 세상을 바꿀 수만 있다면 떨치고 일어나는 용기도 때론 필요하고 말고요

생명체 존재치 않는 공간일 것만 같은 사막이나 극지에서 생명에의 외경감을 노래한 시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여기 이르러 알듯도 했지요.

"그곳에 가면 맑은 영혼을 만날 수 있다 / 별처럼 맑은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쓴 윤수천의 시구도 문득 떠올랐습니다.

금강공원 경내라 오가는 산책객 끊이지 않아 그렇지, 경이로운 뿌리의 힘 앞에 무릎 꿇고 오래오래 경배드리고 싶었습니다.


https://youtu.be/dlwDmn3HG8U?si=lNuasxMLS-CRSi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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