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벌써 사흘째, 에비뉴 아이(I) 대로 한복판에서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다. 첫날은 요란한 굉음 속에 긴 직사각형으로 아스팔트를 절개시키고는 이어서 불도저가 머리를 지하 깊숙하게 박고 속살을 파 들어갔다. 잔여물로 쌓인 콘크리트 덩어리와 철근 토막들이며 흙무더기가 덤프트럭에 속속 실려 나갔다. 정리돼 있을 적에는 감쪽같다가도 이사하려 끄집어내면 양이 많기도 하던 세간살이처럼, 속 헤집어져 주변 너저분하던 도로변은 그렇게 질서를 되찾았으나 등하굣길 교통정체는 계속되었다.
이튿날은 직사각형 구덩이 속으로 처음 보는 장비가 연신 오르내렸다. 동원된 기계들로 미루어 특수분야 수리인지 땅밑으로 드나드는 기구들이 도시 낯설었다. 일반적인 상수도 누수나 하수관 파열 정도가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도 전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예민한 부분이 문제를 일으킨듯했다. 대부분의 도시기반시설 (Infrastructure)들은 지하 깊이 깔려있으므로, 먼빛으로야 무슨 고장인지 모르지만 전문 기술자가 손봐야 하는 설치물에 탈이 생겼지 싶다. 전기, 수도, 도시가스, 케이블 선, 어느 하나인가의 고장 난 부분 보수공사는 사흘째 오후에야 마무리 지어졌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내부 깊숙한 장기에 수술이 불가피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격이었을 터다. 마찬가지다. 땅속 어딘가에서 일어난 문제를 정밀진단해 문제점을 찾아낸 다음 보수에 들어가는 도로공사처럼, 인체에 병이 나도 과정은 비슷하게 적용되곤 한다. 해서 병원을 찾으면 우선 의사의 문진에 앞서 첫 번째로 혈압과 맥박을 재고 혈액검사를 하게 된다. 병명을 밝혀내기까지는 여러 첨단 기기가 나서서 초음파, 내시경, MRI, CT 촬영 등으로 병소를 찾기 위한 정확한 진단부터 한 다음 그에 따른 치료를 해나간다. 사대육신 오장육부 어디건 중요하지 않은 데 없고 난이도가 높지 않은 질병 또한 없겠지만 특히 까다로운 부분에 병이 생겼다면 치료 과정은 그만큼 힘들다. 그중 하나가 췌장이라 알고 있다.
시어른은 당뇨가 심했다. 당뇨 외에는 평소 부지런히 활동하시는 퍽 건강한 분이셨다. 술은 거의 안 드셨으나 평소 고지방 위주의 식생활에다 오십 대 때 지독한 스트레스에 직면하면서 당뇨가 왔다고 들었다. 혈당치를 낮추려 당신부터 많은 노력을 하셨고 식구들도 두루 신경을 썼다. 촌에 사시던 작은아버지는 형님 위해 달개비를 한 짐씩 베어 오곤 했다. 주변에서 추천하는 오디와 뽕나무 뿌리며 누에가루 등, 당뇨에 효과가 있다는 민간요법은 물론 식이요법으로 병원에서 권하는 잡곡밥은 기본이었다. 건강기능식품인 홍삼, 동충하초, 영지버섯도 달아놓고 드셨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 혈당조절은 되지 않았고 계속 혈당치가 올라갔다. 나중엔 매일 인슐린주사에 의지해야 했다. 췌장과 이어진 담도에 작은 관을 삽입하는 스탠드 시술도 받았지만 결국 췌장암으로 번져 일흔 겨우 넘기자마자 세상을 뜨셨다. 강력 진통제로도 다스려지지 않던 극심한 통증은 그제사 비로소 멈춰졌고 암과의 힘든 투쟁도 끝이 났다. 췌장암은 유전적 요인에다 당뇨병, 흡연, 음주와 과도한 육류 섭취 등 생활습관 및 환경적 요인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실제 시가 쪽은 고혈압과 당뇨로 고생하는 예가 흔한 편으로, 시어른 사례를 보더라도 집안 내력 역시 무시할 수가 없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요셉은 워낙 촌스런 토종 밥상을 고수해 온 아낙을 만난 덕에 아직 그런 걱정은 안 하고 별도의 복용약 없이 산다.
췌장암은 남자가 여자보다 더 발생비율이 높다고 한다. 50세 이후에 주로 생기며, 모든 암 중에서 생존율이 가장 낮은 암이라 알려져 있다. 게다가 조기진단도 어렵다. 췌장의 위치부터가 복벽 안 깊숙한 등 쪽에 붙은 데다 여러 장기에 둘러싸인 채 가려져 있기 때문에 병소 찾기가 쉽지 않은 때문이라 한다. 그뿐 아니라 수술을 받아도 예후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시어른께선 장시간 수술 후 힘에 부치는 방사선치료도 받고 또 신장투석의 고통까지 겹치자 이에 지쳐 그만 눈을 감고 마셨다. 도로공사하듯, 사달이 난 장소를 찾아내 전면 보수공사로 말짱하게 고칠 수 있다면 좀 좋을까마는 인체 수리 공사는 그러하지 못하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뚫고 깊은 땅속 어딘가에 생긴 탈을 보수하는 도로공사장은 사흘 만에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오래전, 의료진들의 최선 다한 진료와 가족들 보살핌 뒤로하고 서둘러 하늘나라로 떠나신 시어른처럼 나이 들수록 보수공사 필요해지는 육신의 한계가 문득 허망하게 느껴진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