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숭아의 봄날 한때

2015

by 무량화


누구에게나 빛나는 한때는 있었다.

푸른 청춘이 싱그럽던 젊은 날.

혹은

꿈같던, 아름답던, 멋지던, 화려하던, 근사하던, 존경받던, 자랑스럽던, 잘 나가던, 거칠 것 없던, 무엇이나 이룰 것 같던, 다들 부러워하던...

그런 왕년의 한때가 저마다 간직돼 있으리라.

명문으로 꼽히는 곳에서 학창생활을 가꾸며 앞날 창창하던 시절.

전도유망한 직장에 들어가 명성 날리며 선망과 시샘을 동시에 받던 호시절.

개중엔 흥성한 사업으로 경제적 부요를 누리면서 거들먹거리던 때도 있었으리라.

잘 나가던 한 시절을 회상하며 '왕년에 나 말이야~' 뽐내며 허세를 부리기도 하는, 세월의 강물 따라 흘러간 과거의 그 어느 한때.

무도회의 수첩 같은 행복한 기억이 누군에겐들 없겠는가.

오늘 뒤뜰에서 문득 그 생각이 든 것은 개복숭아 꽃에 날아든 호랑나비로 인해서이다.



흔하디 흔한 노랑나비나 흰나비가 아니다.

고운 깃에 무늬도 선명한 진객 호랑나비의 방문이다.

벌이든 어떤 나비든 꽃가루받이만 충실히 해주면 그만이라 하겠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나비 중의 귀족 같은 호랑나비가 그 품격 있는 나래짓으로 산들산들 유희하듯 이 꽃에서 더 꽃으로 옮겨 앉으며 한참을 노닌다.

호랑나비에게는 수줍게 볼 붉어 아름답고 향기로운 도화꽃일 테지만 기실 울 집 복숭아나무는 보잘것없는 개복숭아를 단다.

지난해 봄, 생판 낯선 지역에 이사 와서 처음 만난 복숭아꽃은 고향 친구처럼 반가웠다.

비록 나무는 작으나 꽃만으로는 탐스러운 수밀도라도 열릴 것 같이 꽃망울 실했다.

여름 즈음 아무리 기다려도 복숭아 열매는 굵어지지 않고 살구 정도에서 성장을 멈췄다.

푸르뎅뎅하니 딱딱한 돌복숭아, 오종종하니 볼품없는 개복숭아 나무였다.

이후 뒤뜰 복숭아나무는 나의 관심 밖으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한여름이 되자 어쩐 일인지 뒤란에서 재재거리는 새소리가 종일 들렸다.

유심히 보니 개복숭아 나무에 새들이 몰려와 즐겁게 노래 부르며 성찬을 즐기는 중이었다.

농익어 빠알간 개복숭아 한 개를 따서 맛을 보았다.

때깔 요량하고는 과육도 부드럽고 맛이 훌륭해서 새들하고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그 복숭아꽃을 탐하는 호랑나비.

호랑나비가 찾아온 봄날의 추억으로 여름내 행복할 뒤뜰의 개복숭아.

황홀했던 그날을 회억하는 것만으로도 개복숭아의 삶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접두사 '개'가 붙은 하찮은 나도 한때 호랑나비랑 내밀한 사이였던 시기가 있었어, 하면서?



혹서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데도 뒤뜰에선 진종일 새소리 청량하다.

웬일로 새들이 우리 집에 단체 소풍을 왔을까.

역시나 새소리가 나는 곳은 개복숭아 나무.

왜지? 내심 궁금하게 여기던 의문점도 풀렸다.

옆집 할머니의 자두와 황도가 그러하듯 집집마다 과일나무 하나둘씩은 심어놓고도 도통 따먹는 걸 못 봤다.

어느 집은 담 너머로 늘어진 가지에서 체리가 제풀에 떨어져 길가까지 흥건히 붉게 물들였다

어떤 집은 사과가 발갛게 익어 저절로 떨어져서 나뒹굴건만 그래도 그냥 놔두는 이유를 몰랐다.

그들은 유기농이라며 좋아라 따먹기 위해 과수를 심는다기보다 봄날엔 꽃을 즐기고 그다음엔 새들을 불러 모아 노래를 듣기 위함이었구나.

아~ 그랬구나!


정녕 그럴 만도 하구나!

여름날의 예상치 않은 선물인 아침나절 새소리와 개복숭아 나무를 통해 뒤늦게나마 그 깨달음이 왔다.




3월에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적 뒤란에는 복사꽃이 환했다.

나무도 별로 볼품없는 데다 촌색시 같은 진분홍 색깔의 촌스러운 꽃이지만 그래도 올 들어 처음 만나는 화신이라 반가웠다.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도화라서 또한 기꺼웠다.

꽃 지자 열매가 달렸다.

집 뜰에 복숭아나무를 심었으니 아마 황도나 백도겠지, 은근 기대를 했다.

오월이 가고 유월이 가도 복숭아는 별로 커지지도 않고 때롱때롱 야물딱지기만 했다.

이웃집 할머니네 황도는 농익어 새들이 다 쪼아 먹는데 우리 집 복숭아는 새파랗다 못해 거무튀튀하니 돌처럼 단단해 보였다.

개복숭아 나무였다.

이런~ 고작 개복숭아 나무였어?

이후 기대도 관심도 스러지면서 복숭아나무는 잊힌 나무로 땡볕 아래 서있었다.




개꿈, 개떡, 개살구, 개복숭아....

자고로 못생기고 볼품없고 쓸데없는 것에 '개'자가 들어간다.

접두사 '개'가 앞에 붙으면 대부분 미천하고 흔하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듯, 사전적 풀이 역시도 그러하다.

진짜가 아닌 짜가, 별 볼일 없는 것, 야생 상태의 질이 떨어지는 것 등등.


흡사하지만 다른, 헛된, 쓰잘데기없는, 모자라거나 작거나 비슷하지만 그보다 못한 것 따위로 치부되는 '개'란 접두어.

선입견이 그러하니 복숭아나무에 대한 나의 시선이 오죽 부정적으로만 작용했으랴.

거들떠도 안 봤다.



교우 한 분이 효소를 담으면 좋다고 일러줬다.

그러나 매실 효소는 몰라도 까짓 개복숭아로 뭘...


여전히 '개' 대접 수준이었다.

복숭아나무 그늘은 우리 강아지의 좋은 쉼터였고 놀이터였다.

뼈다귀든 뭐든 간식을 주면 잽싸게 물고는 녀석은 늘 나무 아래로 달려간다.

시퍼렇던 복숭아가 익어갈수록 날로 빨갛게 변해갔다.

그래도 내 고정관념은 무너지지 않았다.

농익었는지 나무 아래로 붉은 열매들이 툭툭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나의 편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울 집 개만 잔디밭에서 열매를 뒹굴리며 노리개삼아 갖고 놀았다.

오늘 아침 새소리는 개복숭아 생애에 있어 일대 반전의 계기가 됐다.


새들이 좋아라 반기는 걸로 보아 맛이 괜찮은 모양이지?


하나를 따먹어보니 의외로 과육 부드럽고 과즙 다디달았다.

상상하기론 단단한 데다 떫고 시고 씁쓰레할 것 같았는데, 맛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좋다.

개복숭아의 진가를 재발견하는 순간이다.

어이쿠야~ 미안하다, 너의 진가를 몰라보고 그리 홀대했으니.....

손이 닿는 아래쪽 열매부터 딴 다음 내일 아침엔 일찌감치 사다리에 오를 참으로 미리 사다리도 대기시켜 놨다.




얼른 인터넷에 들어가 '개복숭아에 대해' 자세히 검색을 했다.

개복숭아는 돌복숭아, 야생복숭아라고도 부르지만 약복숭아라고도 한단다.

복숭아를 흑설탕에 재워놓았다가 보름 후 그 물이 우러난 다음 더운물에 섞어 마시면 좋다고.

하루 한 컵 씩 약 1개월 복용하면 기침이 거뜬히 낫는다며 특히 해소 기침에 효과가 있단다.

그 외에도 폐농양, 주근깨, 기미, 류머티즘 관절염, 오심, 구토,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신장병, 부종, 임파선결핵, 비염에 좋단다.

돌복숭아라고도 하는 우리나라 토종 개복숭아는 주로 효소를 담가 먹는다.

저절로 자란 야생 복숭아로 담근 효소는 기침과 기관지에 아주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성질은 약간 따뜻하며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해 주고
오래 먹으면 배고프지 않고 추위와 더위를 타지 않게 한다니 어라? 신선이 드시겠네.


개복숭아의 과육에는 필수 아미노산뿐만 아니라 비타민이나 페틴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피로를 풀어주고 면역력을 증가시켜 주며 특히 복숭아 씨에는 기관지 기능을 강화시켜 주면서
기침을 멈추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켜 주며 항산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천식 환자들에게 특히 좋다고.

복숭아꽃은 약간 쓰나 담음을 없애고 풍광을 치료한단다.

복숭아를 들고 있는 신선도처럼 복숭아 잎은 기혈을 북돋아 신선이 되게 한다고.

복숭아의 열매는 물론 가지, 잎, 꽃, 씨 등을 모두 약으로 쓰는데 열매를 사용한 치유 방법도 나와있다.

개복숭아의 과육에는 필수 아미노산뿐만 아니라 비타민이나 페틴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피로를 풀어주고 면역력을 증가시켜 주며 특히 복숭아 씨에는 기관지 기능을 강화시켜 주면서
기침을 멈추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켜 주며 항산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천식 환자들에게 특히 좋다고.

기가 위로 치밀어 오르는 것과 기침을 멎게 하며 명치 밑이 단단한 것을 삭이며 어혈을 풀어주고 부은 것과 결석을 삭여주는 명약이라며 딸내미까지 그늘진 곳에 고이 간수하랍신다.

얼굴빛을 곱게 한다니 어느 날 펑~하고 촌할무이 화색 고운 미인 나아가 신선으로 변할지도....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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