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꽃

by 무량화

꽃은 꽃이다.

꽃이건만 향기롭기는커녕 눈에 띄게 화려한 색상이나 어여쁜 자태도 부여받지 못한 이름만 꽃이다.

그럼에도 봄꽃 다투어 피는 신춘의 초절정기를 기려 슬며시 피어났다.

하필이면 아름다운 봄꽃들의 축제에 끼어들었으니 더구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백매 청매 연연한 꽃잎 열고 홍도화 백도화에 살구나무 아몬드 나무 꽃구름처럼 피어난 봄날.

실버들 가지마다 겨자색으로 곱게 물오르는 철에 그 꽃은 함빡 핀다.

치명적인 미태인 파피꽃, 고아한 향기를 푸는 아몬드꽃, 하다못해 조촐한 들꽃조차 대여섯 장 꽃잎 갖추고 저마다 붉고 흰 색색의 꽃 수줍게 피워내는데 그 꽃은 이도저도 아니다.




사랑채 문갑 위에서 수묵화로 번지며 고목 등걸에 피어나는 매화의 품격은 어림도 없다.

고샅길 가득 메운 산동마을 산수유꽃처럼 몽글대는 샛노랑 빛깔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고고한 아치 풍기는 춘란 꽃대 쑥 올려 한두 송이 선비처럼 피는 꽃도 절대 아니다.

화왕 산기슭에 무리 져 산불 내지르는 진달래의 환상적인 정경과도 거리가 멀다.

지조 굳은 절사(節士)처럼 단박에 목 뚝 꺾이우고 마는 고담한 동백의 기개도 찾을 수 없다.

있는 듯 없는 듯 피어나는 벼꽃이라면 대견한 알곡이라도 품는다지만,

그 꽃은 지저꺼분한 외피와 씨앗만 봄 내내 무시로 날려댄다.


화형도 갖추지 않은 데다 색깔마저 희한하며 물론 향도 없는 꽃.


볼품없고 하찮아 보여도 그래, 인심 썼다! 너도 꽃 맞아~하면서 생색 좀 냈다.



느릅나무 골(Elm Ave)에 요즘 느릅나무 꽃이 피어 나무 전체가 담담한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처음엔 겨울나무에 담황색으로 돋아난 순들이 눈엽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꽃눈이었다.

마당가에 팥 껍질 같은 게 바람에 쓸려 다닐 때만 해도 외피를 벗어던지니 곧 귀여운 새잎이 피겠구나, 짐작했었다.

그러나 잎이 아니었다.

꽃이라 이름하기엔 민망스러운 통꽃 형식의 연둣빛 꽃이 가지마다 주저리주저리 달렸다.

보름쯤 후 꽃이 습자지처럼 마르면 동전 모양의 투명한 백색 깃털 안에 작은 씨를 그 중심에 품고 떨어져 날렸다.

지난해 4월 이사를 왔을 때 하얀 꽃잎이 뜰에 쌓였길래 배꽃이 바람 타고 날아온 줄 알았다.

인근을 다녀봐도 배나무는 없었고 이미 한 달도 더 전에 피고 진 과수꽃들이라 배꽃일 리 만무,

하얀 꽃잎은 바로 느릅나무 씨앗 주머니들이었다.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이란 유진 오닐의 충격적이고 강렬한 희곡으로 도대체 느릅나무가 어떻게 생긴 나무일까 퍽 궁금했었다.

나목 연작으로 유명한 화가 박수근의 고향인 양구 언덕배기에 '박수근의 나무'가 서있는데 그 나무가 느릅나무란다.


보호수로까지 지정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으나 정작 한국에서는 수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나무다.

느릅나무와의 인연이 우연인지 필연이지 아무튼 이사 온 마을 이름이 Elm이라 가로수마다 느릅나무 고목들인 데다 공터에도 천지 제멋대로 자란 그 나무를 흔히 만나게 되었다.

느릅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교목이다.

잎새는 오종종하고 나무 역시 훤칠하게 쭉 뻗어 늠름하니 단아한 외양을 갖춘 수종은 아니다.

그래도 목재는 탄력성이 좋고 틈이 잘 벌어지지 않아 선박재나 건축재로 쓰인다는데.

특히 회색인 나무껍질은 유피(楡皮)라고 하여 이뇨제 등의 요긴한 한약재라 한다.




꿈에 느릅나무 잎을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조그만 잎새로야 나뭇잎에 빗방울 듣는 소리를 들어볼 만한 운치 기대할 수조차 없다.


성긴 빗방울/파초 잎에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이라 노래한 조지훈 시인의 '파초우'도 있는데....

뙤약볕 가려줄 그늘조차 변변찮다 보니 느릅나무는 유년기의 오동나무나 감나무에 비하면 도시 정이 가지 않는다.


먼저 살던 뉴저지 집에는 앞뜰이고 뒤란이고 훤칠한 키에 손바닥만 한 이파리 무성하던 참나무 볼만했건만.


하긴 참나무도 만추에 이르면 엄청스레 쏟아지는 낙엽들로 갈퀴질 할 적마다 애물단지였으니.


이렇듯 지난날 기억은 궂은일조차 각색되고 재편집되어 고운 추억으로 남겨지는 것.


그러해도 느릅나무의 장점은 별로 찾아지질 않는다.

나무에 기대서서 하늘을 바라볼 만큼의 매끄러운 줄기는커녕 울퉁불퉁 불친절하고, 볼품없이 중구난방으로 가지를 뻗어 단정치 못한 모양새다.

하여 과히 탐탁스레 여겨지지 않는 데다 비듬 떨구듯 그 아래를 항상 너저분하게 만드는 나무가 느릅나무다.

꽃이나 눈엽의 외피가 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누르스름 꾀죄죄하게 변해 휘날리는 단풍도 반갑잖다,

더러는 진객 딱따구리도 깃들지만 그보다는 동네방네 온갖 잡새들이 날아들어 새똥조차 주변에 허옇게 깔린다.




느릅나무는 생명력과 번식력이 보통 억척스러운 게 아니다.


메마른 뒤란에도 여기저기 돋아나, 보는 족족 야멸차게도 뿌리 깊숙이 내리기 전 얼른 뽑아내고야 만다.

하지만 나의 박해나 천대와는 달리 느릅나무에 얽힌 신화는 하늘의 신에 닿아있고 꽃말 아름차다.

태초의 혼돈기, 세 명의 신이 황량한 지상에 내려왔다고 한다.

대지가 너무 밋밋해 그들은 느릅나무를 재료로 신의 모습을 본떠 남녀 인간을 조각해 냈다.

느릅나무 인형에게 한 신은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고, 다른 한 명은 지성과 영혼을, 세 번째 신은 정열과 애정을 깃들게 해 줬다.

하여 최초의 인간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북유럽 전설이 있다.

그럼에도 마뜩잖게 만 대한 느릅나무다.

꽃말은 신뢰다.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보태랴.


타박한 게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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