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참전한 4대 전쟁 가운데 비율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이 한국전쟁이라 한다. 미군은 36,574명 전사, 103,284명 부상, 3737명 실종, 4439명이 포로가 되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성의 아들은 142명. 그중 서른다섯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마오쩌둥 역시 참전한 아들을 잃고도 시신마저 또 다른 중공군 전사자들처럼 한반도에 묻었다. 더 많이 가졌기에 더 많이 누리려는 생각보다 더 많이 나누겠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그들은 귀한 교훈으로 우리에게 남겼다. 가령 동일상황을 우리에게 대입시켜 본다면? 국제전 참전은 그만두고라도 만일 나라에 전쟁이 닥쳤을 때 한국인 고위층은 과연 솔선수범해 아들을 전쟁터로 내보낼까. 지도자 자녀들의 병역비리만 들어봤을 뿐인 우리 국민들이다. 옛날에도 제 집 노비를 병역에 대신 보냈듯이 부유층과 고위관료들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자기 아들만은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 기를 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대로, 병역을 면제받거나 쉬운 방법으로 복무하기 위한 불법행위를 도모하는 것을 일컫는 병역비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70년도 중반, 남편은 공군 모병관 자리에 파견돼 부산병무청에서 동원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장교로 임관되던 날, 식품 군납으로 일찍이 사업기반을 확실하게 다진 시아버지는 아들에게 특별히 당부하셨다. "군생활하며 봉급 이외의 돈을 한 푼이라도 취하려 들면 절대 안 된다, 대신 살림걱정 안 하도록 아버지가 뒷바라지는 충분히 해주마." 이는 군납 관련 비리를 숱하게 목도하거나 겪어 본 경험에 의한 조언이었다. 그 말씀만은 올곧게 새겨듣고 복무기간 내내 철석같이 지켰다. 실제로 병무청에서 군 병역비리와 연관된 혐의로 당시 같이 근무하던 육해군과 해병대 장교 및 부사관이 무더기로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차 순간에 뉴스거리로 오르내리던 옆자리 동료들과 달리, 요령부득이란 소릴 듣던 남편이 먹은 거라곤 오직 '술'뿐이었다. 소위 말하는 빽 있는 자리에 있던 그때, 만일 생의 황금기를 맞았다며 돈봉투의 유혹에 빠졌더라면 어찌 됐을까. 부정한 부를 축적해 한동안 호의호식했을진 모르나 결국은 갈데없는 전과자의 낙인이 찍혔으리라.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은 남로당의 남한 내 활동과 우방인 소련의 지지에 힘입어 38선 이남으로 진격하였다. 낙동강까지 밀리고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가던 한국전의 와중. 낙동강전선을 지켜낸 워커중장의 아들도 한국전에 참전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패주를 거듭하다 모처럼 아군이 큰 승리를 거둔 전투가 인정돼, 8군 사령관의 아들 샘 워커 대위는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게 되었다. 아들 가슴에 훈장을 직접 달아주고자 지프를 타고 달려오던 중 워커장군은 한국군 트럭과의 충돌사고를 당했다. UN군 최고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아들 샘 워커 대위를 불러 “귀관에게 고 월튼 워커 대장의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임무를 맡긴다.” 워커 대위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저는 일선 보병 중대장입니다. 아버지는 의전부대에 맡겨주십시오.” 그러나 맥아더는 “명령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군 명령대로 아버지의 유해를 안고 한국 땅을 떠난 그도 훗날 대장이 되어 미군 최초의 부자 대장(父子 大將 : 4성 장군)이 되었다.
중공군 대공세 시기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워커장군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유엔군의 붕괴를 막고 서울을 재탈환했던 매튜 리지웨이 중장. 그가 미 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할 당시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세에 계속 밀리던 절체절명의 시기로 영국도 한국을 포기하고 일본을 지키자는 주장이 나오던 때였다. 후퇴를 허락지 않는 반격작전의 용장으로 불렸던 그는 군복에 수류탄을 달고 다니며 전쟁을 지휘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사단장 신분으로 부하들과 같이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용맹을 떨쳤던 리지웨이다. 부임 직후부터 비행기, 헬기, 지프차로 최전방을 돌며 장병들을 독려하던 그는 ‘우리는 왜 여기에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라는 제목의 편지를 미 8군 장병들에게 보낸다. 겁에 질린 한국민들의 대탈주를 보면서 세계 평화를 위하여,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음을 그는 분명히 하였다. 리지웨이는 대통령과 갈등을 빚어 퇴역한 맥아더 후임자로 발령받고 곧장 유엔군 사령관으로 영전됐다.
매튜 리지웨이 장군의 뒤를 이어 제임스 밴플리트 중장이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의 아들 짐 밴플리트 공군 중위는 막 그리스에서의 복무를 마친 상태라 참전할 의무는 없었으나 아버지가 사령관으로 봉직 중인 한반도 출격을 자원하였다. 1952년 4월 그는 압록강 남쪽 평북 순천지역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두 시간 후 소식이 두절됐다. 밴플리트 사령관은 미 제5공군 사령관으로부터 아들이 실종돼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나서 담담하게 지시했다. “짐 밴플리트 중위에 대한 수색작업을 즉시 중단하라. 적지에서의 수색작전은 무모하다.” 그는 며칠 후 부활절을 맞자 전선에서 실종된 미군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모든 부모님들이 저와 같은 심정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벗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오늘의 미국이 다져졌을 것이다.
1952년 12월, 트루먼에 이어 미국 대통령 당선자인 D. 아이젠하워가 방한, 미 8군 사령부를 찾았다. 고위 장성들과 각국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밴플리트 사령관이 전선 현황에 대해 브리핑했다. 브리핑이 끝나자 아이젠하워 당선자는 의외의 질문을 하였다. “아들 존 아이젠하워 소령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상대는 자신의 아들을 적지에서 잃어버린 밴플리트 장군이다. “소령은 전방 미 3사단 정보처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밴플리트 장군의 사무적인 짤막한 대답에 “사령관, 내 아들을 후방 부대로 배치시켜 주기를 바라오.” 참석자들은 뜻밖의 주문에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자 “존 아이젠하워 소령이 혹시 전투 중에 전사한다면 슬픈 일이 되겠지만 그것을 가문의 영예로 받아들일 것이오. 그러나 만약 아들이 포로가 된다면 적군은 분명히 미국 대통령의 아들을 가지고 미국과 흥정을 하려 들 것이오. 그러면 국민들은 ‘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고 외치며 정부에 적군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압력을 가할 것이오. 나는 그런 사태를 원치 않소. 그래서 내 아들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즉시 조치해 즐 것을 요청하는 것이오.”
아니나 다를까. 개각을 앞두고 나온 무성한 하마평을 들으니 높은 직위에 발탁된 사람들 면면은 새로울 것도 없는 매양 그타령이요, 역시나~다.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로 마치 젯상 곶감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병역비리뿐인가. 후보자의 파렴치한 전력, 위장전입, 탈세, 자녀 국적논란, 부동산 투기의혹, 논문표절 등등에서 총리를 비롯한 각료 모두 이에서 자유로운 자 한결같이 전무한 상태다.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는 대통이 임명한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국회가 검증 절차라는 걸 통해 임명동의안을 받게 함으로써 행정부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다. 이 거름망을 별 소요나 잡음 없이 무사통과할만한 도덕적 인물은 정관계 그 어디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대한민국. 꼼꼼히 살펴보면 안팎 공히 청렴하고 정직하고 깨끗해 도덕성에 흠결 없는 '깜'은 고작 두셋 정도나 될까. 순국선열들의 충렬을 기리는 달 유월을 맞아 미국 장성들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새삼 돋보이는 이유다. 이것이야말로 지도층이 지녀야 할 필수덕목 아니겠는가.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