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신축공사에 들어가 사라진 과거의 이중섭미술관이다.
유월 첫날 하늘은 쾌청하고 미풍 산들댔다.
네시에 약속이 있으므로 그 사이 막간을 이용할 겸 근처인 이중섭거리로 내려갔다.
물빛 수국이 길가를 따라 만개해 있었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 꽃철도 덩달이 늦어진 까닭에 수국도 이제야 겨우 푸르고 붉은 물색 오르고 있지만.
비둘기 노니는 공원 안, 하귤나무 아래 앉아 스케치 중인 화가 손등에 쏟아지는 햇살은 눈부셨다.
애기장미와 담쟁이덩굴 무성한 고샅길 지나 그의 거처였던 초가집 뜰로 들어섰다.
어느새 신록 깊어져 초가지붕이 녹음 속에 폭 싸 안겨 있었다.
얼마 전에 목련꽃 흐드러졌었는데 대신 훌쩍 키 큰 멀구슬나무 꽃향기 마당 가득 우련히 감돌았다.
뜨락에는 봉선화도 몇 송이 피었고 단정한 어성초 하얀 꽃 다부룩했다.
단칸 셋방 홀깃 들여다본 다음 설렁설렁 미술관으로 향했다.
예매 필수였던 다른 때와 달리 자유로이 입장할 수 있었다.
번번 궂은 날씨에만 찾았던지라 섶섬이 보이는 옥상을 올라가 본 적이 없어 단숨에 주르륵 꼭대기로 향했다.
섶섬을 띄운 서귀포 앞바다는 더없이 청푸르고 적당히 구름 깔린 하늘빛 평화로웠다.
한참을 바닷빛에 취해 해바라기 하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2층 전시실에선 <교감의 형태 ㅡ안팎의 조응> 2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각기 서로 개성 뚜렷한 그림들이 양측 공간에 전시 중.
이윤빈 화가는 섬 밖의 작가다.
그는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12기 작가로, 섬이라는 특수 공간의 경험과 사회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섬 곳곳을 누비며 객관적인 눈으로 관광지 현상들을 탐구하고 분석하여 작품에 투영시켰다.
박순민 화가는 섬안의 작가다.
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 그는 창작스튜디오 8기 출신이며 오랫동안 서귀포를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평범하기에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익숙한 풍경들을 애정 어린 시선과 따뜻한 감성으로 작품에 담아냈다.
《청년 이중섭, 사랑과 그리움》 이중섭 특별전 제목이다.
1층의 이중섭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장은 맨 나중에 들렀다.
거의가 삼성가의 기증 작품들이고 기타 사진과 편지를 비롯한 몇 편은 이남덕여사의 기증품이었다.
특별전 주제는 '사랑과 그리움'이다.
한국전쟁으로 원산에서 피난 와 서귀포에 닿아 일 년 남짓 동안 가족과 지낸 그 기간.
자구리 해안에서 게를 잡으며 놀다가 한 칸 살림채에서 게를 반찬으로 삼았던 시기가 그나마 행복한 때였다.
가족들을 일본으로 보내놓고 한국에 홀로 남아 외롭고 고단한 생활을 이어간 그.
은지화, 편지화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으며 재회를 갈망하는 애절한 마음이 편편에 녹아있다.
반면 엽서화는 일본 유학시절에 만나 후에 아내가 되는 마사코에게 보낸 내밀한 연서로 예술가의 뜨거움이 고스란히 담겼다.
시인 구상은 그를 일러 "시적인 미와 황소 같은 화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용출하는 사랑의 소유자다."라고 하였다.
화가 박고석은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개성 강한 독자적인 색채경향이나 분방한 표현수법으로 높이 평가되는 중섭예술의 진면목.
중섭형처럼 철두철미 그림에만 열중하는 작가는 드물며 독창성이 강한 화가도 본 적이 없다."
미술평론가 이경성의 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거미가 거미줄을 짜듯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것, 그것이 중섭 예술의 본질이다.
그린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섭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중섭 예술의 특징은 조형가로서의 조형능력과 재료의 영토를 확대했다는 점이다."
한국 근대서양화의 대표 화가 이중섭에 대한 평가나 일화는 헤아리기 버겁다.
그에 따른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미술관을 나오자 오후 햇살 쏟아지는 이중섭거리에 여행객 물결처럼 밀려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