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뻐꾸기 소리

1998

by 무량화


마음뿐이었다. 생각뿐이었다. 한번 다녀와야지, 내동 벼르기만 한 고향 나들이다. 실향민도 아니면서 고향을 찾아본다는 게 왜 그리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부산에서 충청도 당진까지, 단걸음에 선뜻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지만 전국이 일일생활권인 요즘이고 보면 먼 곳도 아니다.


살기 바빠 여유가 없었다기보다 이건 아무래도 두름성이 모자란 때문이다. 주변머리도 없을뿐더러 매사 요령부득인 숙맥 같은 성격 탓이다. 아니, 그보다는 아껴 아껴 품속 깊이 갈무리 둔 귀향길이 아니었을까. 마치 중한 보물 가끔씩 꺼내 음미해 보듯이 그러고 싶어서였을까.


기회는 우연히 왔다. 생활의 틀에서 잠시 비껴 설 수 있는 뜻밖의 여백이 주어진 것. 남편과 미국 여행길에 나섰다가 출국장 문전에서 시효가 만기 된 여권 탓에 발목이 묶이고 말았다. 당시는 황당하다 못해 어이없는 상황 전개였으나 나 혼자 뒤처져 여권 갱신을 하고 비행기 좌석 배정을 기다리는 동안 온전히 빈 시간이 생기게 됐다. 하릴없이 죽치고 앉아 기다리느니 서울에서 당일치기가 가능한 고향에라도 다녀오자 싶었다.
경로야 어떠하든, 오래 바라는 바는 억지 부리지 않아도 저절로 와닿기 마련인가. 오락가락하는 장맛비쯤 개의치 않고 차에 올랐다. 무성한 녹음이 차창가를 기웃대는 유월이었다.


아쉽게 멀어진 정인과의 재회가 이러할까. 사뭇 가슴이 설레어 왔다. 태가 묻힌 그곳, 마음 먼저 달음박질치는 곳. 어머니 품 안이듯 아늑하게 여겨지는 고향. 갯내음 밀려오는 황토 언덕이며 산세 유순한 그 고향을 만나러 가는 길. 거기에는 오랜 마음의 빚, 외숙 내외분의 산소를 둘러볼 일이 기다리고 있다. 백중날이면 휘영청 푸른 달에 한줄기 소지 올려 내 정성을 띄워 보내곤 한 두 분. 멀미 비슷한 울렁증은 아마도 그립고 애틋한 감회의 사무침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불현듯 찾아가고 싶을 적이 있었다. 사는 게 고단하거나 이런저런 일에 부대껴 가슴에 한기가 스미는 날엔 막연히 고향이 그리웠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라든가 추억 속의 들꽃과 해후하는 날에도 예외 없이 그 바람은 불었다. 틈을 내기로 작정하면 못 갈 바도 아니건마는 고향은 그냥 저 멀리에 두고 한 번씩 그리워하는 곳으로 남겨두고 싶었던가. 하지만 이제는 그리움이 도지면 그도 병이 되는 나이. 여기 이르러 비로소 발길 닿게 된 고향이다.


삼십 수년 만의 귀향. 그 무심함을 타박치 않고 환대해 주듯 하늘은 드맑게 개여 있다. 비에 씻겨 한층 짙푸른 얼굴로 다가서는 유정한 산천. 그러나 자연조차 옛 그대로가 아닌 채 도무지 낯설기만 한 주변. 생경함에 절로 발길 주춤거려진다.



현 위치가 대충 짐작으로 그 옛날 삼거리 우물터쯤인 듯싶다. 하건만 논으로 이어지던 도랑이며 산모롱이 구부정하던 노송은 어디로 갔을까. 수숫대 줄지어 섰던 콩밭자락이 훤한 이 차선 신작로로 변한 지금. 당시 그리도 웅장해 뵈던 종갓집 사랑채와 뒤란 대밭은 어이 그리 볼품없이 초라해졌는지. 하긴 붕어 낚던 큰 방죽조차 그 이름 무색할 정도로 작은 둠벙에 불과하다. 아득히 깔렸던 안들녘 상답 논 역시 이제 보니 품 솔은 저고리 등판만 하다. 축소판으로 졸아든 기억 속 풍경들에 어리둥절해진다. 마치 선잠에서 깨어난 듯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는데 어디선가 나른히 뻐꾸기 소리 들린다.


갈래머리 나풀대던 아이가 어느 결에 할머니 될 만큼 많이도 흘러버린 세월. 내 모습만 변한 게 아니었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고사성어가 물구나무를 서, 벽해가 상전이 된 변모다. 대호방조제가 완공되며 바다가 간척지 옥답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은 진작에 접한 바였지만 이럴 수가?


나어릴 적. 인천을 내왕하는 통통배가 지나던 바다였다. 바지락 캐고 파래 뜯던 갯벌이 벼 무성한 논으로 변한 지금. 현지인들은 바다를 막아 이렇듯 품질 우수한 쌀을 생산해 내다니 참 좋은 세상이라고 꿈만 같아 한다.


넓게 닦인 아스팔트 도로에 승용차 트랙터가 오가는 고향이 그러나 내겐 어쩐지 이방인 양 생소하다. 먼지 이는 시오리 산길 타박타박 걸어가야 버스를 타던 그 시절 따위야 그리울 것 없는 궁색스런 과거사로 묻어두고 사는 사람들. 그 모두가 낯선 얼굴들이다. 소중히 간직한 유년기 흑백사진을 잃은 것 같은 기분. 향수의 끈을 풀던 연줄을 영영 놓쳐버린 심정 같은 이 씁쓸함.


가까스로 외삼촌 네 집터와 정미소 자리는 찾을 수 있었으나 유택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근처 가게에 들러 술 한 병에 오징어 챙겨 들고 물을 수밖에. 생전의 외숙이 베푼 덕을 잊지 않은 한 노인으로부터 산소를 안내받았다. 풀숲 우거져 산길 오르기 험하다며 고맙게도 앞장을 서 준다. 웅숭깊은 인심만은 여전해 모처럼 고향 찾은 마음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 황토 질척대는 밭둑길 지나자 곧장 이어지는 산비탈. 그제사 익숙하게 다가서는 산길. 외가의 선산이다. 봉긋이 솟은 두 개의 봉분 앞에서 노인은 발을 멈춘 뒤 예를 갖추라며 뒤편으로 물러선다.


외삼촌 외숙모 저 왔어요. 목이 메어와 겨우 그 말뿐. 만감의 교차 속에 재배 올리고 고개 숙인 채 묵념을 바친다. 그 순간 뻐꾹 뻐뻐꾹. 등 뒤 소나무 숲에서 애절한 가락으로 뻐꾸기가 운다. 지척에서 운다. 이리 가까이에서 뻐꾸기 소리를 듣기도 처음이요 보기도 처음이다. 쓸쓸한 눈빛까지 읽을 수 있는 거리다. 난생첨으로 청회색빛 제법 덩치 큰 뻐꾹새를 그렇게 목전에서 올려다봤다. 안개 깊은 먼 숲에서 들려오던 뻐꾹새 소리는 서정적이면서도 나른했는데 의외로 애소하듯 그야말로 애끓는 소리다. 뻐뻐꾹 소리를 낼 때마다 연신 긴 꼬리 까닥거리는 뻐꾸기.


"기다렸다, 얘야. 꼭 올 줄 알고 기다렸구말구." 두 분 넋은 자유로운 새되어 그렇게 날 기다리셨던가. 바로 곁 소나무 가지에 후루룩 날아와 앉는 뻐꾸기. 그리고는 절절한 울음 토하듯 뻐꾹뻐꾹. 청솔가지 끝에 오도카니 서서 날 내려다보며 다시금 뻐뻐꾹. 정녕 뻐꾸기는 예사롭지 않은 영혼의 새, 원 깊은 혼이 담긴 새 인가.


산을 내려오는데 옷깃 부여잡듯 뒤따르는 뻐꾸기 소리. 차라리 하얗게 바랜 피울음 같은, 속으로 삼키는 애마른 절규 같은 그 소리. 무언가를 간곡히 얘기하는 듯하건만 그 언어를 알아듣기에는 이승과 저승의 거리가 너무 먼 것을. 돌아서서 나는 잿빛 뻐꾸기에게 가만히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보냈다.


고혼(孤魂) 되어 고향산천 맴도는 두 분의 정령이듯 지금도 환청처럼 귓가에 맴도는 그 소리. 애타게 간절한 그리움 담은 뻐꾹 뻐뻐꾹 소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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