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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1. 2024

출항 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잠자리에 들기 전,
늘 하는 일이 있다. 현관의 신발 정리다. 짝 맞춰 가지런히 해두어야 마음이 놓인다. 이 버릇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 왔던 습관이다. 결혼해서 도심지 주택가에 살면서 시작된 버릇이니 근 이십 수년 계속된 셈이다.



결혼 초기인 70년대. 커다란 부연 집의 안주인이 되었다. 시댁의 도움으로 장만한, 분에 넘치게 큰집이었다. 기와지붕이 하늘 향해 솟아 오른 운치 있는 부연 한옥으로, 터도 꽤 넓어 남보기엔 대갓집 같았다. 골목 입구 삼태기 터에 안정되게 자리 잡은 데다 정원의 소담한 라일락이 집의 품격을 더해 주었다.



어느 겨울 새벽. 대청문을 밀고 나오다 깜짝 놀라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대문이 휑하니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이 집 저 집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문밖 골목이 어수선해지는가 싶더니 여기저기로 소란이 번졌다. 우리와 담을 맞댄 옆집을 비롯해 인근 몇몇 집에 밤손님이 들었다는 것이다. 간밤에 도둑이 동네에서 극성을 부렸던 모양이다.



분명 엊저녁 자기 전에 문단속을 야물게 챙긴 게 틀림없다. 그런데 대문이 열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 집에도 도둑이 들었던가.  분명 밤손님이 지나간 자취 같았다. 대강 점검해 보니 우리는 옥상의 고추장 단지가 통째로 사라진 외에 다른 피해는 없었다. 도둑이 왔다 갔는지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졌던 우리로선 그 정도인 게 천만다행 같았다.



집안을 들여다보던 이웃 사람 중 하나가 안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카는 소리가 괜히 나왔겠노? 신발이 저리 똑바로 정리돼 있는 집은 말이다. 도둑도 함부로 털 생각을 못 하는 법인기라."  아이들의 조그만 신발과 나란히 온 가족의 구두 슬리퍼 등이 토방에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는 걸 보고 한 말이었다.



전에 어느 책에서 도둑 드는 것을 예방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비슷한 대목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 연유도 한몫했겠지만 원래 성격상 반듯하고 깔끔한 것에 유별나게 집착해 온 터였다. 지금은 많이 헐렁해져서 대충대충 치우고 살지만 젊은 시절에는 하루 종일 닦고 쓸고 매만지며 바지런을 떨었다. 아직껏도 느슨해지지 않는 건, 다만 한밤중의 신발 정리뿐이다.



가족이 모두 들어온 다음 신발을 정돈해 놓는 순간, 현관을 바라보는 내 기분은 배가 그득 정박해 있는 항구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든다. 신발들은 배다. 일터에서, 학교에서, 시장에서, 수고로운 그들의 바다를 항해하다 돌아온 배다. 힘겨운 풍랑을 헤치는 동안, 뱃전은 이리저리 긁힌 상처로 얼룩진 채 지쳐서 돌아온다.



온종일 무거운 하중에 짓눌린 배는 노곤한 기색 역력하다. 땀 냄새에 절은데다  매무새도 후줄근해졌다. ​하루의 피로를 풀면서 지금은 느긋이 누워 휴식 중인 선박들. 항구는 편안한 쉼 자리다. 배들 끼리 어깨 맞대고 정박해 있는 항구의 풍경은 그래서 언제 봐도 평화롭다. 방파제 저 너머 바다는 파도 험할지라도 내항은 늘 물결 잔잔하고 고요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무사귀환한 네 척의 배. 신발은 가족 수대로 네 켤레다. 네 식구의 신발이 제각각의 특색을 드러낸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체구처럼 널펀펀한 남편의 신사화. 길쭉하니 무덤덤한 큰아이의 캐주얼화. 여고 삼 년생인 딸애의 고단해 보이는 운동화. 모처럼 용기를 내어 사 신은 빨간색 내 샌들에다, 아무라도 편히 걸치는 슬리퍼까지 벗어 놓은 대로 제멋대로다.



이리저리 널려 있는 신발을 각기 짝지어 얌전하게 챙겨 놓는다. 전과는 달리 신발 크기가 엇비슷해 키 순서대로 정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들애는 제 아빠 뒤를 바짝 따라잡더니 어느새 보트같이 큰 신발의 임자가 되었다. 딸아이도 내 신발 치수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큼지막한 남자 신발 두 켤레, 여자용 두 켤레의 기본에다 슬리퍼가 끼어드니 작은 현관이 비좁아진다. 그래도 마음에 그득 차오르는 흐뭇한 그 무엇이 거기 있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것들. 아이들 어릴 적 같이 앙증맞게 작은 구두도 없고 귀여운 꼬까신도 없다. 지금은 거의 검정 일색의 무표정한 신발들 뿐이다. 소꿉장난처럼 아기자기했던 시기는 이미 다 지나가 버린 것이다. 곧 이어서 신발들은 하나씩 작별 인사를 하고자 손을 내밀 것이다. 어느새 헤어져야 할 때가 가까이 다가왔다.



분명 내년이면 현관은 허술해질 터이다. 오빠와 일곱살 차이 나는 딸아이가 목표로 하고 있는 대학은 외지다. 타관으로의 진학이 실현된다면 딸 신발이 놓였던 자리가 비게 된다. 소지품을 간추려 훌쩍 멀리 떠나면 딸아이 방은 말소리 되울리는 텅 빈 방이 될 것이다. 인턴을 하고 있는 아들은 결혼을 생각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불원간 이 울타리를 떠날 것이니 그 자리 역시 비게 된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때가 되면 떠나간다. 항구는 잠시의 쉼터일 뿐 배가 사는 곳은 드넓은 바다다. 바다 가운데로 항진하고 있을 때 배는 진정 배답다.
만일 항구를 떠나지 못하는 배가 있다면 그건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어떤 문제가 생긴 배다. 항구에 늘 묶여 있는 배는 고장 난 배이거나 쓸모없는 폐선일 것이므로.



아침이 오면 배는 출항을 할 것이고 마침내 항구는 쓸쓸해질 것이다. 그동안은 항구를 떠났다 해도 해가 저물면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배들이 이제 더 새롭고 큰 대양을 찾아 나서려 하고 있다. 그들이 항해에서 돌아와 지친 몸을 편히 누이고
안온한 휴식에 잠기거나 재충전을 할 수 있던 도크는 낡고 비좁다.



오래전. 내가 부모 슬하를 서둘러 떠나려 했던 것처럼 지금 내 아이들도 떠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붙잡을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서운해할 일도 아니다. 그게 삶의 순리이자 질서임에야. 다만 좀 맥이 풀리는 심정이다. 나이 들어 진정 외로울 때 그 허탈감을 겪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자위해 보기도 한다.



지나간 수많은 밤들. 바다에 풍파 거셀수록 배를 기다리는 마음은 초조했다. 시간이 지나도 배가 들어오지 않을 경우 조바심 내기 일쑤였다. 천성이 느긋하거나 태평스럽지 못한 탓에 안달 부리며 애태우던 기억들. 기다리던 배가 모두 들어올 때까지 문간에서 서성대며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인 순간들이 얼마였던가. ​이렇게 온 가족이 일찍 들어온 날은 신발을 정돈해 놓는 시간도 앞당겨진다. 비로소 안심이 되어 편한 잠을 청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감사합니다, 나직이 뇌이며 문단속을 다시 살피고 현관 불을 끈다. 항구에는 적요가 내리고 신발들은 내일의 항해를 준비하는 휴식에 든다. 잠시 그 자리에 그대로 선 채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 본다.



문득 어둠 속에서 구두약 냄새가 맡아진다. 생뚱스럽게 구두를 반짝반짝 닦아 놓고 싶어진다. 흠-하고 새어 나오는 헛웃음.
누군가 도시락 쌀 때가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라고 말했다. 그런지도 모르겠다.
새벽밥 지어 두 개의 도시락을 마련하는 바쁜 와중. 그 틈에 가족들 구두를 솔질했고 광약으로 윤나게 닦았다. 말끔히 닦여진 신발로 그들의 하루 출발이 조금이라도 산뜻하도록. 그것이 행복이었던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 그 작은 행복의 알갱이들은 손가락 사이로 술술 빠져 달아나고 이제는 하릴없이 창가에 나앉을 시간만 남았다.



어둠을 응시하며 우두커니 서있자니 기분이 추연히 가라앉는다. 쉽게 잠이 올 것 같지도 않다. 슬그머니 책상머리로 다가가 불을 켠다. 할 일이 여기 남아 있었던가. 나도 돛을 올린다.       - 95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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