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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1. 2024

포기 나누기

한 앨범에 가족 모두의 사진이 한데 모여있던 건 수년 전 일.

아이들이 크면서 각각 제 사진을 빼내 자기 앨범에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 전체가 찍힌 사진은 각자 제 모습이 보기 좋게 잘 나온 쪽 차지다.

해서 원래 있던 빨간 앨범은 새로 손보기 전에는 들쑥날쑥 이가 빠져 있었다.

다독거려 놓은 지금도 허술하기는 매 마찬가지로 바람이 솔솔 새어 나온다.

 

대신 아이들 앨범은 나날이 풍요로워진다.

장장마다 신록 향기가 배었는가 하면 계류처럼 흐르는 청신한 웃음소리.

향기로이 빛나는 시절 오월이 한창 무르녹고 있다.

차츰 의젓하게 자라가는 변모 과정을 흐뭇하니 미쁘게 건너다보나 그 생기발랄한 활기에 눌려 꺼칠한 옛 앨범은 그만 더 보잘것없어졌다. ​

 ​

 요즘 들어 우정의 무대라는 텔레비전 프로가 자석마냥 나를 이끈다.

그것도 후반부만은 빼놓지 않고 본다.

군부대로 자식 면회 간 어머니가 그 아들과 만나는 상봉 장면은 매번 눈자위를 자극한다.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 흘린 적인들 한두 번인가.

가슴 아릿한 동병상련의 정 같은 것이 솟구쳐 뭉클하곤 해진다.

나도 벌써 그런 연륜에 가까워진 것이다.

 

첫딸이 결혼해 떠난 뒤 도무지 잠 못 이루고 뒤척대다 나가보니 딸이 치던 피아노 어루만지며 아내가 흐느끼고 있더라는 어느 분의 글.

성혼시킨 자제 분가해 내보낸 후 집안이 텅 빈 듯 못내 허전해서 아들 방에 가 밤새 피워댄 담뱃재로 재떨이가 수북하더라는 또 다른 분의 글이 생각난다.

지금은 사진만의 자리 옮김이지만 몇 년 뒤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그들의 둥지를 새롭게 만들 것이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점차 키만큼, 나이만큼 뜨게 마련인 거리.



아이들이 자라서 하늘 높이 비상하기 위해 둥지를 떠나는 날은 틀림없이 오게 마련이다.

지난날 나의 부모님이 그랬듯이 나 역시 언제인가 그 헛헛한 기분을 느끼게 되리라.

포기 나눔의 진통은 어쩌면 살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 같은 게 아닐까.

서서히 이별 연습을 해두자.

이 세상과도 결국은 작별하게 되는 것.

해서 부처님께서는 자유롭고자 하거든 애집을 놓으라 가르치셨으리라.

 


여학교 시절. 집에 꽃이 많다 보니 자연 화훼에 관심이 기울어져 원예반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때 꽃나무의 분주나 번식 방법으로 접목 삽목 외에 포기 나누기를 자주 해볼 수 있었다.

백합이며 달리아 튤립처럼 알뿌리는 구근의 쪽을 갈라서 묻어주면 된다.

반면 창포나 옥잠화 국화등은 원 포기에서 한켠을 뚝 떼어내 심는다.

그들은 한번 터 잡으면 한두 해만에 방석 자리만큼 포기가 크게 불어나는 왕성한 생명력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처음 얼마는 단단히 몸살을 앓곤 하였다.

생기를 잃고 시난고난, 누런 잎이 지기도 하는가 하면 더러는 말라죽기도 했다.

육신을 가르는 고통인 포기 나누기, 무정물인 식물도 그러하거늘...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의연히 맞을 수 있게 마음의 채비를 야무치게 해둬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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