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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1. 2024

시테섬에서 쓴 오래전 편지

퐁네프다리

생애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지는 유럽이었소.


파리에서의 사흘째. 비로소 나는 시테섬으로 향했다오.

마음 같아서는 첫날 한달음에 달려가 보고 싶었지만 멀리 차창 가로 스쳐 지나며 줄창 조바심 내던 곳.

예정된 시간표대로 실려 다니다 그제야 자유시간이 주어졌던 거라오.



시내 지도 한 장과 묵고 있는 호텔 전화번호를 야물게 챙긴 다음 지하철을 탔소이다.

지하도의 역겹도록 지독한 냄새와는 달리 매혹적인 이름을 가진 생 미셀 역을 빠져나오니 곧장 세느강변이었소.

한강보다 강폭이 좁은 듯 싶은데도 여러 종류의 유람선이 흘러 다니고, 오리 떼가 물가에서 유유히 노니는 센 강.

무성한 플라타너스 짙은 그늘 너머로 노트르담이 보였소.



센 강 복판에 띄워진 유선형의 시테 섬.

먼 먼 옛적, 여기에 사람들이 처음으로 보금자리를 틀기 시작하며 하나의 마을이 생겨났다지요.

이 섬을 구심점 삼아 점차 부락이 커지면서 파리라는 도시가 형성됐다고 하니 시테 섬은 곧 파리의 뿌리인 셈이라오.

파리는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로 여기서 출발하면 웬만한 명소는 다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정도였소.

루블로 해서 오페라 하우스로, 또는 콩코드 광장에서 샹젤리제를 통과하여 개선문으로.

에펠탑을 거쳐 샤요 궁까지 걷는 것도 좋겠고 앵발리드 지난 다음 오르세 미술관으로
혹은 솔본느 대학에서 팡테옹으로 향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실제 베르사유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곳이 시테섬에서 반경 한 시간 거리 안에 들어 있었소.

그러나 넓이에 상관없이 유럽 역사를 선도한 나라의 수도답게 파리는 역시 굉장했고
처처에 관광자원이 깔려있더이다.


시테 섬과 연결된 몇 개의 다리 중 당연히 퐁네프를 찾게 됐다오.

오래된 친구의 이름을 입에 올리듯 자연스럽게 익숙해 있는 발음 퐁네프.

푸른 센 강에 기품 있게 걸린 반궁형 아치. 그리고 고풍스러운 조각이 든 난간과 가로등이 너무나 인상 깊게 아로새겨진 영상 속의 퐁네프는 회색 대리석 덤덤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소.

삼백 년 전에 만들어진 센 강의 가장 오래된 다리이면서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퐁네프를 배경으로 한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프랑스 영화다운 시적인 영상미에 혹해, 그 이후 서른몇 개나 된다는 센 강의 다리 가운데, 미라보 다리보다도 오히려 나를 더 몸 달게 했던 곳이었소.


퐁네프 다리 위에서 거친 잠을 자며 떠도는 차력술사.

낡은 운동화에 짧게 밀어버린 머리의 무표정한 그 남자는 알렉스였소.

어느 날인가 다리 난간 그의 잠자리를 먼저 차지해 버린 여인을 대하게 되지요.

생명처럼 화구박스를 마지막 꿈으로 끼고 다니는 실명 직접의 화가.

손톱 밑에 새까맣게 때가 끼고 핏발 선 눈에다 먼지와 땀에 절어 뻣뻣이 엉킨 긴 머리칼을 한 여자.

시력을 잃어가는 젊은 화가의 자포자기 앞에 알렉스의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사랑은
그녀의 지친 영혼에 빛이 되었소.


아니, 피차 난파 직전의 절망감으로부터 구원될 수 있었던 거라오.

아틀란티스로~~ 영화의 끝 장면에서 그대들은 이상향 아틀란티스를 향해 센 강의 물살을 힘차게 갈랐지요.

그대들 자취가 짙게 밴 퐁네프 난간을 한참 동안 가슴으로 싸안아보았소.

그대들의 사랑은 혼란스럽고 음울한 듯했으나 역시 사랑의 진실은 황홀한 불꽃의 명멸이었고, 절정 없이 떨려오는 전율이었고, 아득히 잦아드는 행복이었고, 감동 그 자체가 아니던가요.



열병을 치른 듯한 탈진감마저 느끼며 퐁네프를 지나 노트르담 사원과 마주 서자
이완됐던 세포들이 다시금 팽팽히 긴장하기 시작했소.

 바라보는 장소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고딕 건축의 백미인 노트르담.

석조 사원 정면 높직이 에 도열한 입상 조각들에 우선 압도당한 데다 아치형 문을 따라 둥글게 배치된 수많은 성자의 조각상에 완전히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오.

사원 내부에서 본 ‘장미의 창’이라 불리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명성이 오히려 무색할 지경으로 기둥 하나 벽 한구석 어디든 빈틈없이 정교한 조각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소.

허나, 무한 경탄 이전에 유럽 정신의 바탕인 헤브라이즘을 새삼 돌이켜 보게 하였소.

종교의 힘! 그 위대하고도 가공할 몰입의 광기를 보는 것 같아 솔직히 내심 섬뜩하기조차 한 기분이었소.

기독교의 성경에서 출발하여 오로지 그 의미를 담아내는데 충실했던 유럽 문화.

모든 예술이 하느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데 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였소.


그러나 노트르담이 더욱 아낌 받을 수 있음은 빅톨 유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때문이 아니겠소.

종지기 콰지모도가 사랑했던 정열적이고 자유분방한 집시 여인.

붉은 치맛자락이 파도치는 그 여인을 위해
목숨 걸고 온몸으로 종을 쳤던 콰지모도의 순애보를 찾아 종탑에 올랐다오.

숨어서 홀로 사랑한 여인을 지키고자, 하나뿐인 목숨마저 아랑곳 않고 모든 것을 다 바친 콰지모도.

그런 아찔한 사랑이라면 인생 전부를 걸기에 누군들 주저할 것이며 무엇을 두려워하리오.


남북에 좌우 대칭으로 높이 솟은 탑.

비좁은 나선형 계단은 닳고 닳아 가운데가 움푹 팬 채 마냥 이어져, 그대로 가뭇없이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느낌이었다오.

가풀막진 층계가 끝나자 곧바로 지붕 밖.

거칠 것 없는 바람이 상쾌했고 파리 전경이 한눈에 들더이다.

현기증 나는 높이임에도 지붕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허술함 조금치도 없이 정성 바친 조각이 서 있어서 거듭 놀라고 말았소이다.

그리고 이른 곳이 노트르담의 오래된 종이 있는 곳이었지요.


 
때마침 정오였소.

인근 사방에서 일제히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오.

땅그랑 땅그랑-. 수천의 새하얀 은방울꽃들이 산정 맑은 바람결 타고 흔들리는 것 같았소.

종소리에 향이 있다면 아마도 초겨울 새벽, 암자의 후원에서 스며나던 비파꽃 혹은 금목서 향기 아니리까.

투명히 시립고도 티 없이 깨끗한 향기를 닮은 종소리는 전신을 감싸듯 신비롭게 휘돌다가 천천히 허공 중에 스러져 갔소.

마치 그 종소리는 동양에서 온 자그만 여인을 위해 은총이듯 베푸는 귀중한 소리 공양만 같아 오래 그 감동의 여운에 잠겨 있었더랬소.

든든한 목재로 얽힌 종각 안 콰지모도의 종에 기대어 듣던 종소리는 바로 천상의 소리 그것이었다오.

봉덕사의 종이 그러하듯 콰지모도의 종 역시 이제는 침묵하는 종이라 그 자리에서 뜻밖의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거지요.


시테섬을 떠나기 전, 거리의 화가에게서 수채화 두 점을 샀소이다.

노트르담 사원의 옆모습과 원경의 개선문이 가벼이 스케치된 그림을 골라 들었더라오.

아일랜드에서 유학 왔다는 빛바랜 금발의 화가는 센 강보다 더 깊고 푸른 눈을 가졌더랬소.

그의 남루한 화구와 청바지에 어지러이 묻은 물감이 나를 이끌었듯, 두 장의 그림은 가끔씩 나를 시테섬 사람들 곁으로 불러가곤 할 것이오.

알렉스 그리고 콰지모도는 여전히 그 섬에서 무구한 사랑을 꿈꾸고 있을 테지요.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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