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인근은 둘러볼 곳이 무척 많았다.
기존의 전통문화 관광지에서 호반관광 휴양지로 거듭난 안동이다.
우리가 머문 임하호 레저타운은 수상 스포츠 즐기러 온 젊은이들로 이른 여름인 벌써부터 활기가 넘쳤다.
며칠 머무는 동안 서원과 오래된 고택이 모인 선비촌을 둘러봤고 이황 종택도 구경했다.
퇴계 종택에서 도산서원까지는 한 마장 남짓한 거리, 양쪽 내왕하려면 말 타고 다니셨냐 물었더니 뒷산으로 걸어서 왕래하셨다고 했다.
지형을 가늠해보니 과연 산을 넘으면 곧장 서로 연결되는 위치에 자리한 도산서원.
진도문 앞뜰에는 매화나무와 작약이 열을 지었는데 노오랗게 익은 매실 제풀에 떨어져 즐비하기에 하나 주워들었다.
선생이 심은 매화의 후손일 터라 고귀한 정신이 빚어낸 시간의 향기 흠향해보고자 함이었다.
손에 쥔 매실이 새콤하고도 싱그런 풋향 풀어내며 여운으로 남아 한참을 감돌았다.
미국 가기 직전에 한차례 들렀던 도산서원인데 이번에 보니 모든 게 새삼스러웠다.
한국의 독특한 교육기관인 서원은 각 지방의 지식인들이 건립한 성리학 교육을 위한 사립 학당 격이다.
낙동강 푸른 물길이 내려다보이는 도산서원의 전망이야말로 볼수록 명품이었다.
안동호에 띄운 봉긋한 섬, 그 정상에 선 누각 시사단은 특별 과거를 치른 곳이라고 한다.
섬과 누각 이윽이 바라보니 옛 선비가 지닌 고매한 정서와 기품의 결이 은은히 스며들었다.
도산서원 바깥마당에 드러눕다시피한 사백 년생 왕버들과 아름드리 느티나무 자태 역시 일품.
노거수 향나무와 매화나무도 정정했는데 특히 선생이 아꼈다는 도산매(陶山梅)에는 매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유생들은 풍치 좋은 자연 속에서 심신을 수양하며 유학을 익히고, 평소 흠모하고 받든 선현들께 정기적으로 제향을 봉행했다는 이곳.
퇴계 이황이 꿈꾼 유교적 이상향인 안동 도산서원(사적 170호)은 구구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교육자였던 선생이 세운 도산서원(陶山書院).
도산(陶山)이란 뜻은 성리학에 더욱더 매진하여 선비 다운 인격을 도야하라는 의미라 한다.
검박한 선비의 품격이 잘 드러나는 도산서당이 도산서원의 모체로, 선생이 생전에 유생들을 모아 교육하던 공간이다.
을사사화 이후 낙향한 선생은 청량산 기슭과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만나는 어름에 손수 서당을 지었다.
간소하고 조촐한 ㅡ자형 세 칸짜리 집을 직접 설계하고 공사를 지휘했다니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당연 서당이다.
선생은 온돌방인 완락재(琓樂齋)에 거처하며 독서와 사색 더불어 후학을 기르고 매화 화분을 가꿨다.
매향 번지는 날은 바람 매워도 창호 열어두거나 달 밝은 밤이면 뜨락 소요하며 강물에 비친 달빛 완상했을 터.
칠십 생애를 마무리짓던 날 "매화 화분에 물을 주어라" 당부할 만큼 매화를 아낀 선생은 100수가 넘는 매화시도 남겼다.
진정한 선비인 성인 군자를 길러내는 유학을 바탕으로 한 교육철학을 다져, 영남 지방의 인재 육성에 중추적 역할을 한 퇴계 이황.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인 선생은 향리에 이처럼 후진 양성의 터를 닦아 경향 각처 유생들의 정신적 사표가 되었다.
도산서원은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낙동강 휘도는 자연경관이 유독 빼어난 곳으로도 명성 높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일지라도 오오~고개 주억거리게 되는 장소인 까닭이다.
눈맛 시원하도록 산수 전망 탁 트인 정경, 목전에 드넓고 자유로이 펼쳐 둔 도산서원이다.
어려운 이기이원론은 모른다 해도 도산서원 앞 벤치에 앉아있노라면 감탄사 이전에 신선되어 하늘로 오를 것만 같았다.
그 자리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건 그 옛날 학문에 정진하던 유생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한갓 유람객도 마찬가지다.
특히 호수 가운데 푸른 섬 하나 아름다이 조화 이룬 곳이리서 홀연 떠오르는 예이츠의 시.
일어나 가야지, 이니스프리로 가야지/거기에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오두막 짓고/아홉 고랑에 콩을 심고 꿀벌 통도 놓아두고/벌들이 윙윙거리는 숲속에서 홀로 살아야지.
백여 편의 매화시릏 남기고 세 칸 누옥 지어 후학을 기른 퇴계선생 고택 앞인지라 예이츠의 이니스프리 시가 자연스레 떠올랐는지도....
스페인 용서의 언덕에서 처음으로 만나본, 푸른 기운 감도는 히스꽃 무더기가 강심에 얼비친 섬과 겹쳐져 그러할 수도.
황량한 언덕에 깔아놓은 듯 낮게 피어있던 퍼플빛 히스꽃.
저절로 눈 감기게 만들던 몽환적인 히스꽃 향기는 정신 맑히는 매실 향의 풋풋함과는 차원이 달랐지만 어딘가 분위기 닮은듯도.
퇴계선생의 도산서원은 당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주마간산 격일지언정 안동에서 몇몇 유적지 그리고 풍치 좋은 산천 구경 푸지게 했다.
안개비 부여잡던 안동에 손 흔들어 주고는 우린 각각 서울과 부산으로 향했다.
노곤한 귀갓길, 안개비는 계속 내렸다.
도산서원 기숙사인 농운정사 / 도산서원 건물 사이 저 아래로 낙동강에 뜬 섬이 보인다 / 도산서당 탁 트인 마루에 잇달아 덧댄 평상 마루와 덧지붕
기숙사인 농운정사 서쪽 마루 관란헌 / 한석봉 필체로 알려진 도산서원 편액 / 서책을 보관하고 열람시키던 서고인 광명실
서당 앞 정방형 연당인 깨끗한 벗 정우당 /신분 상관없이 누구라도 배우고자 하면 찾아오라며 탁 터놓은 암서헌/ 양 문과 앞쪽에 출입문을 낸 도산서당은 보물 제2105호
선생이 직접 설계했다는 소박한 도산서당의 들창문 / 강학 장소인 공부방 완락재 옆에 벽장을 두어 서책을 보관하고 휴식을 취하던 온돌 공간
위패를 모시고 제향 의례를 올리는 상덕사 내삼문 / 강학을 위한 핵심 공간인 도산서원 전교당 / 앞마당에서 올려다 본 전교당
모든 벽을 나무판벽으로 만들어 습기 흡수,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藏板閣) /제자들이 기숙하던 고직사 동재의 간소한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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