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에 부디 평화를

2004

by 무량화


지난 일요일 성당에서다. 교우 한분이 이라크에 파병되어 있는 아들의 영육 간 건강과 모든 군인들의 안전 귀환을 기원하며 미사를 봉헌했다. 그런대로 평온히 총선도 치르는 등 한동안 잠잠해서 잊고 지낸 이라크의 전화(戰火)가 다시금 가까운 일로 피부에 와닿았다. 그렇다. 아직도 수많은 외국군의 탱크가 주둔해 있는 이라크는 완전한 평화를 논할 수 있는 상태와는 거리가 한참 먼 나라다. 전시나 별다를 바 없는 치안부재의 불안정한 정국, 언제 또 자살폭탄 테러가 터질지 전전긍긍하는 이라크 상황이다.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를 내던 치열한 교전은 이제 없다 해도 인질사태 등 여전히 위험한 뇌관을 안고 있는 그런 나라에 아들을 보내놓고 부모는 얼마나 노심초사할까.



우리나라의 자이툰 부대원을 비롯, 이라크에 파병된 모든 젊은이들이 이라크의 민주화 정착을 위한 사명을 다하고 무사히 가족품에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우리는 평화의 하느님께 다 같이 한마음으로 기도 올렸다. 아들만 둘을 둔 그녀. 지난해 부활절 때 두 아들이 보좌하듯 부모님 양편에 듬직하게 앉아있던 생각이 났다. 그중 장교복을 입었던 아들이 자유세계의 보루가 되라는 나라의 부름을 받았던가보다. 포화는 멎었다 해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그곳에 아들을 보내놓고 그간 얼마나 가슴 조이며 전황을 지켜봤을 것인가. 자식을 둔 부모 마음은 다 마찬가지다. 그녀의 작게 움츠린 어깨를 보자 목울대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하느님께 다 맡겼어요, 짐짓 웃으며 말하는 그녀 속내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미사를 마친 뒤 그녀의 두 손을 힘주어 잡아주는 외에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동병상련, 몇 년 전 나 역시 비슷한 입장이었기에 그러할까. 물론 대한민국 남아로서의 국방 의무 이행일 뿐 위험한 전시도 아니다. 요즘 군대는 전과 달리 무지막지한 훈련이나 기합이 용납되지 않으며 일방명령체제에 있지도 않다. 급식도 좋아지고 영내에서 자유로이 집에 전화를 걸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들을 군대 보낸 뒤 한 친구는 맛있는 별식을 접하면 아들 생각에 목이 메곤 했으며 삼 년을 따뜻한 방에서 잠들 수 없었다던 모정. 울진에 무장공비가 떼거리로 잠수정을 타고 나타났을 때 전방에 근무하는 소대장 아들을 둔 친구는 작전기간 중 잠은커녕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그게 어쩔 수 없는 모성, 자식 일이라면 한없이 여리기만 한 모성인 것이다. 우리집 큰 아이의 첫 임지는 최전방 인제였다. 휴전선과는 지근거리, 그야말로 북녘이 코 앞이다. 군의관이니 일반 사병처럼 철책 보초를 서는 것도 아니나 당시 뉴스에서 북한 얘기만 나오면 가슴이 덜컥했다. 안보와 관련된 조그만 이상징후라도 보일라치면 바짝 긴장되던 그때.



물론 남북간의 첨예한 대치상태가 풀리며 통일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시기가 문제일 뿐 적절한 시기에 한반도는 통일국가를 이룰 것이다. 단, 그 통일 방식이 무조건 평화적이어서 어떤 경우를 불문하고 간에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우리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인한 처절한 궁핍을 기억하는 세대라서일까. 북쪽 바닷길이 열려 금강산 관광붐이 한창일 때 여행 즐기는 나지만 그 대열에 낄 뜻이 별로 생기지 않았다. 볼썽사납게 바위에 새긴 붉은 구호며 ‘천출 누구누구’라는 문구도 보고 싶지 않았고 이것저것 금기사항이 많은 ‘하지 마’ 관광도 도무지 내키지 않아서였다. 육이오의 참상을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아프간이나 이라크가 미사일 폭격으로 아비규환의 도가니로 변하던 뉴스 화면을 다들 보았을 터. 전쟁은 모든 것을 초토화시킨다. 삶을 황폐화시킨다.



며칠 전부터 유독 노스 코리아란 단어가 자주 뉴스에 오른다 싶더니 북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화한 데다 6자 회담 불참을 선언했다고 한다. 역시 예측 불가능에 제어 불가능인 북한이다. 대량살상무기를 수출하고 위폐를 유통시키고 마약 거래를 하는 등 국제적으로 불량국가란 낙인이 찍힌 나라. 그래서 노골적으로 악의 축이라 비난받기도 했다. 지난번 부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 확산과 폭정 종식 이란 큰 틀의 정책목표를 천명 발표하며 북한을 직접 지목하여 거론하는 대목이 없어서 북미 간의 일이 잘 풀릴 듯한 예감까지 가졌었다. 그럼에도 곧장 직격탄을 날리듯 북한은 핵으로 미국의 뒤통수를 쳤다. 다시금 초미의 현안으로 대두된 북핵 문제. 그와 관련, 가장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영향권 아래 있는 대한민국은 하릴없이 침묵만 지킨다. 반면 미국은 야단법석이다. 유엔 안보리에 상정하여 군사력이라는 제재를 가하는 게 최선책이라 주장하는 강경파의 채찍론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유인책을 쓰자는 온건파의 당근론이 서로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라크처럼 석유가 쏟아지는 나라도 아닌 한반도에 그만한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분명 있긴 있을 터. 핵을 테러단체에 팔아넘길 가능성을 계산한 것 외의 복잡 미묘한 국제정세는 잘 모르나 아무튼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만을 빌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북한 핵의 볼모나 마찬가지, 그들이 무모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일이다.



핵 개발은 군사안보적 목적 이외에도 정치외교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 알고 있다. 빈국인 파키스탄이나 인도가 핵 보유국이 되며 목에 힘을 주는 걸 봐도 그 막강한 파워를 짐작할만하다. 해서 우리도 진작에 핵개발을 추진했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란 소설에 그려졌듯이 박대통령 시절 핵무기 생산의지를 표면화한 적이 있다.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지 못하면 우리 안보를 지키기 위한 자위수단으로 핵 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론을 펴며 미국이 반대하는 핵 개발을 강행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핵폭탄이 완성된다고 장담했던 그 전해에 대통령이 시해당하자 핵개발을 저지시키려는 음모에 의한 암살이라는 일각의 주장도 있었다. 공격용이 아닌 방어용 핵을 갖고자 했던 우리와는 다른 의도로 핵 개발을 진행시켜 온 북한. 그간 햇볕정책으로 무한정 퍼다 준 대북 경협의 선물이 혹여 핵개발에 유용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우려, 기우이길 바라지만 그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존재다.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우라늄은 자체공급한다 해도 핵개발 비용이 엄청나다는데 그 경비조달을 어떻게 하는지. 더구나 수많은 인민이 굶주리다 못해 목숨 걸고 탈북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지구상 어디라도 전쟁은 없어야겠지만 한반도가 전장이 되는 불행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힘을 결집해야 한다. 미국땅에 뿌리내려 아메리칸으로 살아간다 해도 대한민국이 생판 상관없는 남의 나라일 수는 없는 법. 조상의 뼈가 묻힌 곳이며 피붙이가 살아가는 땅이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땅이자 이만큼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키워준 나라다. 아니 중뿔나게 덕 본 것 없이 오히려 고통과 서러움만 준 곳일지라도 밉던 곱던 대한민국은 우리의 모국, 어머니 나라다. 아무리 어머니가 못났을지라도 어머니가 어머니 아닐 수 있을까.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부한 말을 끌어올 필요도 없이 월드컵 4강 신화를 펼칠 때 저절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환호한 우리가 아닌가. 애국가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며 뜨겁게 솟아오르는 눈물, 그게 바로 부정할 수 없는 본질적인 동포애의 원형.



반공을 국시( 國是)의 제일로 삼았던 우리였지만 시대는 엄청 변했다. 근자엔 한국에서도 인공기가 더 이상 불온물이 아니며 인터넷을 통해 주체사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월이다. 나아가 북한을 주적 개념에서 삭제시키기로 한 세상이기도 하다. 우리의 혈맹이며 우방이었던 미국에 대한 시각도 변해 젊은 층에 친북반미 세력이 적지 않다고 한다. 뭐가 뭔지 혼란스럽다. 국론통일도 안된 판에 말해 무엇할까만은 오래전부터 재일동포들은 각자 이념과 사상에 따라 분열, 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었듯 미국에도 이와 유사한 단체가 있다고 들었다. 핵으로 배수진을 친 북한. 체제생존전략이든 무엇이든 이런 때 어느 한편만을 옹호하며 힘을 실어주기보다 국가의 장래를 위한 일에 다 함께 뜻을 모을 수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한 이승만 박사의 말씀마따나 지금은 하나로 뭉쳐야 할 때다. 모국의 평화를 위하여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가 지금이다.

2004년 미주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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