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았을까?

by 무량화


어젠 종일 안개비 뿌옇더니 오늘은 청명하게 갠 하늘.

점심 식탁에도 상추쌈을 올렸다.

문득 떠오른 그 녀석.


간밤의 그 달팽이는 괜찮을까.

무탈히 땅에 잘 착지했을까.

으깨지지 않고 부디 살아 있기를.



어제 아랫집에서 상추와 열무를 올려 보냈다.

고구마를 심으려 밭의 채소들을 전부 정리했다면서.

제법 대궁 굵어진 상추는 씨받이 용으로 두어 포기만 남기고 죄다 거뒀다며 한 소쿠리 전해줬다.

채전에서 농약 없이 손수 가꾼 야채, 올개닉이므로 평소 반겨온 터라 싱싱한 쌈 거리를 많이도 갖고 왔다.

특히 이 상추를 좋아하는 까닭은 상추 줄기를 꺾거나 잎을 떼면 그 끝에서 뽀얀 유즙이 솟아나기 때문.

락투카리움(Lactucarium) 성분의 이 진액은 쌉쌀한 맛을 내며 진통 효과가 있다고 들었다.

기원전 4세기 때 인물인 의성 히포크라테스는 외과 수술 시 환자에게 상추를 먹였다 하듯 진통과 최면 효과 분명한 듯.

그런데 요즘 시중에서 파는 상추는 유즙도 안 보이거니와 도무지 맹탕인 물 맛, 쌉싸름하긴커녕 심심하기 그지없다.

붉은 잎 상추 일부를 다듬어 씻는데 엄지손톱만 한 달팽이가 이파리 뒷면에 붙어있었다.

싱크대 한쪽에 버리려고 모아둔 상추 겉잎에 달팽이를 올려놨더니 목 길게 빼고 이리저리 둘러본다.


마치 다기 주전자처럼 보이는 달팽이.



일단 상추부터 씻어 놓고 강된장 끓여 상추쌈을 한 접시나 비웠다.


설거지를 하는데 상추에 붙은 달팽이가 호기심이 동하는지 수돗물 소리 따라 집을 짊어진 채 느릿느릿 촉수를 움직거렸다.


물 있는 데로 내려가고 싶은 걸까, 더듬이 길게 늘인 달팽이.


방황하는 영혼이 은신처를 찾고 있는 걸까.

답답한 저 슬로모션, 언제쯤 너의 실크로드를 건널 수 있을는지.

장마철처럼 비가 잦아 달팽이 살기에 맞춤 맞은 텃밭 제쳐두고 어쩌다 이 높은 데까지 딸려왔니.

하지만 여긴 도저히 살만한 조건이 아니잖니.

어쩔꺼나?


살아갈 여건이 될만한 장소를 탐색하는가, 바깥공기를 탐하는가.


달팽이는 머리를 쭉 곧추세우더니 안테나 같은 눈과 더듬이를 풀가동해 주위를 살폈다.


비 오는 창밖으로 내보내줄까?


바로 아래쪽은 도심 속 공터라 잡초며 망초꽃 엉겅퀴꽃 멋대로 피어있는 맨땅이다.


믿는 구석이라면 충격파가 클 아스팔트 도로에야 떨어지지 않을 터라 창문을 열었다.


복불복이다.


상추잎과 함께 달팽이는 빗물처럼 고요히 낙하했다.

모쪼록 다치지 말고 지상 흙 있는 데로 온전히 안착해 생명 고이 이어가기를.

흙 위에 사뿐 닿아 풀잎 찾아서 한 생애 나름 완성하기를.



다치면 안 돼.


아프면 안 돼.

양쪽으로 뻗어 나온 촉수가 균형 잡아줘 잘 해냈을 거야.

가볍디가벼운 몸이라 자연스레 동글동글 맴돌면서 헬리콥터처럼 내려앉았을 거야.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께 후사를 부촉했으니 괜찮았을 거야.


우중이라 빗발 사이로 던져줬는데 고층에서 낙하하는 동안 목숨이나 부지했을지 그러나 영 찜찜했다.

차라리 다음날 운동 삼아 하논으로 가서 풀섶에다 방생해 줄 것을.

무사할 거라고 고개 주억대긴 했지만 그래도 자꾸 마음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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