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얼 데이에 찾은 밸리 포지

2011

by 무량화


간밤에 심한 소낙비에다 천둥번개 요란하더니 말끔히 개인 아침.

점심으로 준비한 바구니 챙겨 싣고 끝없이 이어지는 펜실베이니아 평원 지나 짙푸른 유월 숲길로 들어섰다.

네비가 없는 차라 약도가 든 안내 팸플릿 야무지게 챙겼건만 약간은 헤맨 끝에 당도한 밸리 포지.

메모리얼 데이 연휴라서 일반 관광지나 위락시설보다는 특별한 곳을 찾고 싶어 택한 곳이다.

밸리 포지까지는 뉴저지 집에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먼저 안내 센터에 들어 대략적인 개요를 훑은 다음 본격적인 역사 산책을 시작했다.

Brandywine River를 끼고 있는 밸리 포지는 강과 연결된 운하가 길게 이어져 있다.

말이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던 당시, 모든 전쟁 물자는 배로 운송했기 때문이다.

짙푸른 초지의 완만한 능선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오두막집, 대포, 기념문, 계곡 제일 깊숙한데 자리한 작전 사령부.

1777년 11월부터 1778년 유월까지 워싱턴 군은 여기 머물며 독립전쟁 승리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다.

눈보라 치는 한겨울 날씨는 매섭고 식량은 부족하여 수많은 사망자가 속출했다.

허술한 오두막집에서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하는 데다 보급품이 제때 당도하지 못해 숱한 동사자와 아사자가 생겨났다.

설상가상, 티푸스와 천연두까지 만연해 2천여 병사가 숨지고 만 죽음의 계곡 벨리 포지.

그 와중에도 프로이센 출신의 폰 슈토이벤이라는 장교로부터 효과적인 기동훈련 요령과 무기 사용법을 숙지하였다.

여태껏 육탄전으로 대결하던 전투 방식에서 벗어난 병기 사용으로 다음 해 뉴저지의 몬머스에서 큰 전과를 거두게 된다.

여기에는 프랑스 정부가 벤저민 프랭클린을 통해 비밀리에 혁명군에게 지원해 준 보급품이 큰 몫을 하였다.

그리하여 큰 승리를 거둔 워싱턴 군은 포로가 된 영국군을 이끌고 필라델피아에서 전승기념 시가행진을 (상징적 의미가 큰) 갖는다.

미독립전쟁 승리의 분수령을 이룬 밸리 포지 전투는 한마디로 워싱턴의 인내와 리더십을 상징한다.

독립전쟁의 핵심이었던 그는 정직한 성품에 용감하고 정의로운 군인이었다는 평가다.

병사들로 하여금 미국은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하므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탁월한 지도자였다고.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워싱턴 기념교회는 그를 장군이나 지도자 이상의 성인화 내지는 신격시 했다는 인상이 들 만큼 각별했다.



푸르른 유월, 꽃구경도 좋고 첫 개장을 한 대서양 비치도 좋으련만 하필이면 전적지 여행이람.


그러나 학교에서 배우는 미국 역사의 현장인 벨리 포지라 유학 온 손주에게 도움도 되고 특히 메모리얼 데이인 만치 적절한 선택일 터.


밸리 포지에서의 하루, 여러모로 충분소득이 있었다.


손주에겐 학교에서 배워야 할 미국 역사 중 독립전쟁과 관련된 현장학습이기도 하므로.


특히 워싱턴의 인내심과 리더십을 상징하는 곳이라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 손주에겐 의미 각별한 장소다.


그렇게 푸른 초원 드넓은 밸리 포지를 다녀왔다.


밸리 포지 국립역사공원(Valley Forge National Historical Park)이 정식 명칭이다.


밸리 포지 입구의 국립 기념 아치와 대륙군의 전쟁 역사가 새겨진 동판은 여전 경건감으로 다가서고.

필라델피아에서 북서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밸리 포지(Valley Forge)는 독립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다.

1777년 9월 필라델피아에서 퇴각한 조지 워싱턴 휘하의 대륙군은 밸리 포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격렬한 전투를 치른다.

혹한과 질병에다 식량 등 군수물자가 부족해 병사의 일부만 겨우 군화를 공급받았으며 굶기 예사였다고.

그해 겨울 워싱턴은 밸리 포지에서 무려 2500여 명의 병사를 잃었다.

전쟁의 광기.

첨단기기에 미사일이 나는 요즘 세상의 대량살상 전쟁에 비하면 일대일로 마주 보며 맞서 치고받는 전투는 그래도 인간적일까.

하긴 광기의 발동인 전쟁에 무슨 놈의 표현이람, 인간적이라고?

오래전 남의 나라 전쟁이니 객관적으로 봐 넘길 여유라도 있는 거겠지.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 장군만 떠올려도 왜 나라에 치를 떠는 우리 정서 아닌가.

야전부대 간이 천막이 쳐진 막사 앞이다.

밖에서 무기 점검하는 병사 하나, 윤나게 닦인 총신 그리고 기름 먹인 노리쇠가 지금이라도 작동될 듯.

물론 보이스카웃 대원들의 연출이지만.



밸리 포지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최고로 엄혹했던 격전지였다고 한다.

1775년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영국 중상주의 정책 하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북미 13개 주가 협력 정부를 세운다.

이어서 워싱턴을 사령관으로 하여 영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시작하였다.

민병대와 대륙군으로 짜인 식민지 군과 잘 훈련된 영국 정규군.

독일 용병으로 이루어진 영국의 정예부대와의 전투는 번번이 영국군의 승리로 끝나곤 했다.

초반 전황은 불리하기만 하여 보스턴과 뉴욕을 차례로 영국군에 내어주게 된다.

1976년 7월 4일 독립을 선포한 식민지인들은 영국 측이 제의한 평화협정을 거부한다.

그러자 영국군은 대규모 증원부대를 보내 워싱턴 부대를 격파시킨다.

이에 맞서 1776년 겨울, 뉴저지 트랜턴과 프린스턴 전투에서 총반격을 시도한 워싱턴 군이 대승을 거두자 식민지 군은 사기충천한다.

더불어 독립전쟁의 열의가 한층 더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다시 영국군이 독일 용병과 합세하여 진격을 개시하나 1777년 새라토가 전투에서 대패하고 만다.

한편, 영국 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그해 9월 11일 브랜디 와인강에서 워싱턴 부대를 격파, 와해시킨다.

이때 영국군은 식민지 수도인 필라델피아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워싱턴은 겨우 살아남은 휘하 장병 1만 2천 병력을 이끌고 겨울 동안 인근 밸리 포지에서 야영하며 작전 계획을 새로이 짠다.




독립전쟁 당시의 사병 막사, 임시로 친 텐트도 있으나 장기 야영을 위한 오두막이 죽 늘어섰다.

통나무를 다듬어 형태를 잡고 얼기설기 판자로 지은 집들이다.

지붕은 빛이 새어 들어오고 간이 페치카는 난방과 취사까지 맡아야 했다.

벽에 달린 작은 호롱은 그을음으로 시커멓게 그을렸다.

역시 통나무로 짠 허름한 이층 침대 바닥에는 밀짚이 깔렸다.

굴뚝 지붕에 보금자리를 튼 개똥지빠귀 지절대는 소리, 그 옛날 고향 그리며 혹은 질병으로 잠 못 들던 병사의 신음소리로 들렸다.

전쟁 박물관에 들렀다.

전화로 얼룩진 세월은 쉼 없이 흘러 흘러 남은 건 약간의 소지품과 생활용품들, 그마저 언젠가는 먼지로 화하고 말...

당대 귀한 회중시계며 테 동그란 안경을 보니 뜬금없이 대동아전쟁에 내몰렸던 외삼촌이 떠올랐다.

장칼과 총, 대포알도 전시돼 있었다.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 하여 미국의 국부로 숭앙받는 워싱턴 장군.

그가 자유와 평화를 얻은 것은 숱하게 산화해 간 병졸들 그리고 저 녹슨 대포의 공일 시 분명하다.



벨리 포지의 워싱턴 기념교회는 위풍당당했다.

교회 정면에 전시된 육중한 대포 포신은 불을 뿜던 격전의 순간을 상기시킨다.

첨탑 가장자리 벽 앞에 턱하니 정좌한 워싱턴 동상은 장군보다는 의외로 학자풍이다.

건물 벽을 빙 둘러 가며 새겨져 있는 영웅들 이름과 훈장들이 당시 치열했던 전투를 증언해 준다.

심지어 스테인드글라스 아름다운 교회 내부에도 정밀하게 조각된 작은 군인상들이 여기저기 배치돼 있다.

교회 입구에는 큼지막한 자유의 종, 금방 종소리가 들릴 듯한데 그 옆엔 갸우뚱 중심 잃은 종도 있다.

자유를 위해 몸 바친 이들을 추모하는 교회다웠다.

하긴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란 의미겠지.


그 앞.


기름등잔인가.

봉헌 올리며 간절히 바치는 염원.

길고 긴 독립전쟁의 와중, 생사를 알 길 없는 님의 무사귀환을 비는 여인일까.

그 절절함에 가슴 먹먹해진다.

무릎 꿇은 청동 여인상 오래 잊히지 않을 듯.

그녀의 비원을 하늘은 긍휼히 여겨 반드시 거두어주셨으리라. (분명 품은 사연 있을 터이나 정확한 내용을 모르니 오히려 더 상상력을 자극하더군)



안토니 웨인 장군(General Anthony Wayne)의 청동 승마상이 위엄을 내뿜었으며 지휘관인 워싱턴 장군의 숙소는 견고해 보였다

역시 병졸의 오두막과는 판이하게 달라, 돌로 지은 장군 숙소다.

영문으로는 작전 사령부라 표기되어 있다.

워싱턴이 머물며 휘하 장군들과 작전 계획을 짜던 곳.

테이블 위에 펜과 촛대가 놓여있다.

방안의 침대며 거울과 주방 내 집기들 모두가 상급품으로 유럽 귀족의 방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전쟁은 예나제나 앞줄 개미 떼, 졸들이 맨발로 뛰면서 창칼로 치르고, 장군은 저만치서 말 타고 굽어보며 폼 나게 지휘봉 휘두른다.

결국 수없이 죽느니 쫄따구뿐, 역사에 기록되지도 못한 채 숨져간 하많은 졸들.

사령부는 위치도 계곡 제일 깊은 곳, 안전지대에 숨겨져 있다.

그러니 억울하면 출세하라, 이겠지.

좀 허탈해진다.

남의 나라 역사 산책 도중 잠시 대포 앞에서 한 컷. 2011 -사진 일부는 벨리포지 웹사이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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