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은 마침 인근을 지나는 길이기에 한번 들러보기로 했소.
방풍림으로 심었음직한 길가 소나무마다 강한 해풍에 쓸려 우 편향 자세로 비스듬 기울어져 있었소.
광화문 기준으로 정동(正東) 쪽에 있다 하여 정동진, 거기 자그마하게 나있던 간이역 정동진역.
영동선만 지나던 시골역인데 경부선 중앙선 등이 증설돼
이제는 서울 부산 대구 등지까지도 편히 오갈 수 있는 최신식 역이 되었다 하오.
그만큼 사람들이 와보고 싶어 하는 인기 높은 관광명소로 널리 뜬 덕이라오.
지역에서 저명인사가 배출되면 유명세에 편승해 마을 전체가 뜨는 경우,
그 밖에도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 배경이 되어 일약 명소가 되는 예도 흔하더이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촌구석 봉평 장터가 뜨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무대인 애틀랜타가 기억회로에 뚜렷이 각인되듯이.
드라마 '모래시계' 덕분에 한적하던 동해안 작은 기차역이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더 발전해서 이젠 사철 해맞이 명소로 동해안에서도 특히 붐비는 자리가 됐다 하오.
특히 새해 첫날 일출 보러 아직도 경향각처에서들 몰려든다는데...
모래시계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청춘도 어느덧 오십 대.
드라마 모델이었다는 검사는 욕심 사나운 정치판 노인네로 추락해 가고.
유행기류 놓칠세라 아주 가까운 산언덕에 유람선 사뿐 올라앉은듯한 정동진 썬크루즈 리조트도 섰더이다.
크루즈를 그대로 난짝 옮겨놓은 모양새인 리조트는 실내 인테리어까지도 배 내부와 꼭 같이 꾸몄다 하오.
부대시설로 범선을 본뜬 범선횟집도 세웠다더니 전망 좋은 해변 갯바위 평상 삼아 과연 떡허니 자리 잡았습디다.
사업가들은 돈 될만한 자리면 귀신같이 냄새 맡고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은 곳도 용케 건축허가 따내
산 뭉개고 뜻한바대로 기어코 건물을 올리더이다.
하여간 관계기관 구워삶는 재주들 한번 비상하오만, 몽땅 대박만 나는 게 아니라 더러 쪽박도 찹디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미포 쪽에 선, 그 말썽 많은 85층짜리 건물 엘시티.
정치권까지 들썩거린 엘시티와 연관돼 여럿 목 달아나고 감방살이 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기어코 완공은 됩디다만.
비리로 얼룩진 지저꺼분한 주변부 얘기하다 곁길로 가고 말았는데, 정동진 역시도 지나칠 정도로 예산 낭비해 가며 디립다 꾸민 심한 치장이 오히려 과유불급으로 비쳐지더이다.
금아선생 수필 '인연'에 어떤 만남은 아니 만남만 못하다 하였듯, 정동진은 상상속에다 그냥 남겨둘 것을.
직접 와보곤 입맛 씁쓸할 정도로 실망 이만저만이 아니었소.
세계에서 가장 바다와 가까이 붙은 기차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것까지 홍보문구로 쓰이는 곳.
억지스러운 그런 과장법도 스스럼없이 차용하시네.
모래시계공원에 버티고 선 터무니없이 큰 밀레니엄 시계는 새천년을 기념하며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시계라 광고하나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가관이었소.
크기며 디자인이며 도대체 민망스런 그 시계 언젠가는 철거시점이 올 텐데 그 비용 역시 만만찮을 텐데 싶어서 또 고개 절레절레.
엄청 거창한 모래시계 보니 눈먼 돈 줄줄 샌 현장 같기만.
뭐든 최대, 최고, 일류에 그리 집착하니 그래서 사람들 경쟁의식만 부추기는 꼴.
가는 곳마다 허장성세, 대관절 백의민족의 순수하고 정갈하고 소박한 정서는 어디 가야 만날꼬 싶더이다.
외양과 평수에 치중한 다른 조형물들이 준 피로감을 희석시켜 준 박물관,
기차역이니 옛날식 기차를 활용한 시간박물관이 그나마 내실을 갖춰 봐줄만했소이다.
하지만 백만 명씩이나 다녀갔다는 수치에 박물관 둘러보고는 절로 갸우뚱해질 판.
인민이 수십 억이나 되는 옆나라라면 모를까 원...
시간과 관련된 박물관다이 시계 역사관과 진귀한 골동품 시계 등이 전시된 그것마저도 끝까지 둘러볼 인내심은 이미 바닥나 있었지만 말이외다.
다시 떠올려봐도 정동진에서는 단지 하늘에 뜬 구름만이 가장 명품으로 기억되오이다.
청청하게 펼쳐진 동해야 당연한 주빈이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