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항에서의 한나절

by 무량화

전에는 그 이름 들어본 적 한번도 없으니 무명에 가까웠던 동해안의 한 바닷가.

한국의 나폴리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곳이지만 일단 기대감은 접어놓고 찾기로 했다.

지자체마다 관광 홍보 카피를 워낙 그럴듯하게 아니 왕창 부풀려서 만드는 경향이 다분한지라 곧이곧대로 믿고 갔다간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몇 년 새에 한국 구석구석의 발전상 및 여가문화의 다양성은 어찔 아찔할 정도를 넘어 거의 놀라자빠질 수준이라서 갈데없는 미국촌넘이 되어버린 나.

고작 해수욕이나 바다낚시 갯바위 낚시가 주류를 이루던 동해안 레저 흐름도 다변화되어 이제는 크루즈선 오가는 모습이 예서제서 흔히 잡힌다.

날렵한 요트가 떴는가 하면 카약, 제트스키가 물살을 가르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며 스킨스쿠버다이빙이나 윈드서핑을 즐기는 인구가 적잖다는 한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으면 골프를, 3만 달러를 넘으면 승마를, 4만 달러를 넘으면 요트를 탄다는 레저 패턴인데 그 공식이 무색해진다.

이십 년 전 경기용 요트 몇 개가 초라하게 흔들거리던 부산 수영만 요트계류장을 기억하는 나로선 상전벽해가 아니라 천지개벽이나 다름없는 대변화에 어지럼증이 일법도 했다.



혼란스러워진 머리로 그렇게 도착한 장호항.


스칸디나비아 여행을 한 바 있는 언니가 거기 바닷가보다 더 멋지다기에 아직 가본 바 없어 모르긴 하나 그에 필적할만하겠지 했는데.


나폴리며 스칸디나비아라고?


닿고 보니 그저 그런 동해 바닷가로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비린내 무진 나는 포구였다.

그날따라 바람도 없이 흐리기만 한 저기압 상태라 오징어 냄새가 더 역하게 났지 싶은데, 외국인이 제일 혐오하며 기피하는 냄새라는 말이 실감 났다.

한때는 축으로 사놓고 먹던 기호식품으로 특히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러선 필히 산 맥반석 오징어 구이건만.


요샌 이도 시원찮은 데다 가격이 어찌나 비싼지 이래저래 멀어졌다만, 장호 포구엔 집집마다 굿판의 한지 너울거리듯 오징어 줄줄이 걸려 흔들댔다.


좁다란 바닷가에 횟집과 건어물 가게와 커피집이 따개비처럼 비비적대며 들어앉았고 우리를 포함한 유람객은 한갓지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유유자적 물결 져 다녔다.


그래봤자 별로 너르지 않은 아주 작은 동네라 어딜 가나 시선은 줄곧 바다에 고정됐다.


하늘빛 따라 달라지는 물빛인지라, 기상 상태가 영 시원찮아 망망대해 동해바다는 우중충했으나 조약돌과 해조류 산들거리는 바닷속 환히 들여다보일 만큼 물빛은 맑았다.


물 투명한 데다 수심이 얕아서 안전하게 카약을 탈 수 있을뿐더러 스노클링 같은 레포츠의 최적지로 꼽히는 이곳.


계절 상관없이 관광객이 모여들자 뜬금없이 공중에 해상 케케이블카까지 설치해 운행되고 있었다.

오로지 푸르른 바다나 조망할 뿐인 케이블카는 아무리 봐도 가관이었지만.


하긴 득이 되는 사업이라면 장소 불문, 이유 불문 요령껏 허가 따내 마구잡이 개발에 착수하여 실없는 사람들 주머니 터는데 혈안이 된 순전 장삿속 아니랴.

장호 해변에서 무지개다리 건너 작은 바위섬에 올라가 해송 어우러진 사방을 전망하노라면 그 조망권이 한결 더 운치 있으련만.

날씨가 좋다면 잠수해서 깨끗한 청정 바닷속 체험을 해보는 스노클링도 시도해 볼 만하겠고.


허나 하늘빛 을씨년스러운 까닭에, 그보다는 팀을 이뤄 카약 타며 즐거워하는 단체팀 어린이들 표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한결 상쾌해졌다.

청청한 해송과 기기묘묘한 해석과 완만히 이어진 해안선을 끼고 물빛 투명한 바닷가 거닐며 콧노래 나직이 Stranger on the shore를 흥얼거린 그날의 장호항.

같은 동해라도 이곳 해송은 유난히 낮으막하니 단아한 자태였다.


해석 또한 특이하게 결 무수히 그어진 바위라 갈매기 쉼터로 안성맞춤.


그래서인지 바윗전에서 쉬고 있는 새하얀 물새 무리가 많이 눈에 띄었다.

해풍 한 점 일지 않아 파도는 잔잔하고 하늘과 경계 이룬 수평선 멀찍이 나앉아 전에 없이 순한 표정이었다.


날씨만 청명하다면 바다 빛깔 보석처럼 빛나며 더욱 금상첨화였겠으나 그대로도 좋았던 한나절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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