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인근 공원에 타원형의 호수가 있다. 호수라기보다는 연못이라 불리는 게 더 잘 어울릴 소박한 규모다. 못 둘레를 따라 한 바퀴 돌면 30분은 족히 걸리는 크기다. 연못 중앙에 설치된 분수가 밤낮없이 솟구쳐 늘 출렁출렁 물너울이 인다. 그 바람에 물풀들이 잠시도 쉴 새 없이 나붓거린다. 그럼에도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손바닥만 한 붕어를 건져 올렸다가는 다시 놓아주길 되풀이한다. 그냥 재미 삼아 놀이 삼아 낚싯대 담그고 시간을 보내는 은퇴자나 젊은이들이다.
연못에 기다란 그늘 드리운 채 서있는 해묵은 물푸레나무와 버드나무도 나름 운치있는 풍경이 되는 곳. 야생 오리떼들의 놀이터인 수문 쪽은 항상 너저분하나 부들이 우거져 서로 키재기를 한다. 수초가 있으니 인근에 오리 먹잇감이 풍부할 테고 또 식물들은 오리의 배설물을 영양공급원으로 삼다 보니 유독 그쪽으로만 물풀이 무성한 모양이다. 서로 주고받으며 어우러지는 자연의 공생관계를 들여다보면 꽤 흥미롭다. 무엇이든 쌍방향일 적에 공평무사, 해서 불만이 있을 리 없으니 기꺼이 돕고 산다.
어느 날, 부들 사이로 점점이 찍힌 선명한 노란 색깔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바짝 물가로 다가가보니 앙증스러운 작은 꽃들이 군락을 이룬 채 피어있었다. 꽃을 내려다보며 동그마니 뜬 이파리들은 수련을 꼭 닮아 한쪽 면은 치즈 케이크를 자른 듯 트여 있다. 하긴 큼직한 연꽃에서부터 물옥잠까지 통틀어 워터 릴리란 명패를 일률적으로 부여한 미국이니 옐로 워터릴리라 불러도 무방하지 싶다. 노란 어리연꽃을 만나 눈인사를 나눈 다음부터 그 연못에 가면 발길은 절로 수문통 방향으로 이끌린다. 찰랑대는 물결 따라 나붓나붓 흔들리는 꽃을 지켜보기도 하다 잎을 바라보다 하노라면 마음이 고요하니 호젓해진다. 잠시 선에 든듯한 평온감을 느끼는 것이다.
홀연 어리연꽃 사이로 대궁 하나가 봉긋 올라온다. 거의 순간적이다. 처음엔 붕어가 입질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혼신 다해 줄기를 밀어 올리느라 힘이 부쳤던지 물가에 이르자 바르르 떨기까지 한다. 대궁 끝에 얼비치는 푸른 기운으로 보아 잎자루가 올라왔던 모양이다. 며칠이 지난 다음 연못에 가보니 웬일인지 여전히 수련은 잎을 펼치지 못한 채였다. 애기보마냥 잎을 감싸고 있던 떨켜 같은 껍질이 떨어지지 않아 끝이 오그라져 있는 게 불편해 보였다. 한껏 팔을 뻗어 대궁 끝에 걸치듯 덮여있는 나머지 껍질을 살짝 벗겨줬다.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낌새가 수상했다. 그 수련 잎은 다른 잎들의 태와 달리 부자연스럽다 못해 아예 한 귀가 뭉툭하게 일그러진 기형이 아닌가.
어릴 적에 닭을 키우며 봄마다 병아리를 받곤 했다. 무녀리도 그러하지만 어쩌다 보면 제힘으로 제때 껍질을 쪼아내고 부화하지 못하는 알이 있어 답답했다. 기다리다 못해 인위적으로 껍질을 제거시켜 주는데 그런 병아리는 비실비실 쳐지며 유독 발육이 시원찮았다. 그처럼 수련 잎도 오갈 든 듯 온전치 못한 게 기운도 없는 데다 귀퉁이엔 흉자국마저 선연히 나있었다. 내가 괜히 거든답시고 오지랖 넓게 굴었던가 보다. 매사 느긋하지 못한 내 조급증 탓이렸다. 제 스스로 떨켜를 털어낼 때까지 기다려줘야 했는데 쓸데없이 참견하여 잎을 기형으로 만들었으니 수련에게 미안한 일 아닌가.
매사 대범하니 의연하게 보아 넘기질 못하고 안달복달, 별것 아닌 것 가지고도 조바심치며 속을 태우는 나. 그렇게 스스로를 볶아치다 보니 살 붙을 겨를이 없다. 나잇값을 하며 이젠 좀 여유 있게 느긋함을 보일 때도 됐으련만. 소심하니 언제까지 쪼잔한 소인배 노릇을 하려는지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다. 수련도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잎새 활짝 펼칠 것인즉 공연히 서둘러 애먼 흠집을 내고 말았다. 무엇 하나 허투루 지어내지 않으시는 분의 신묘막측한 섭리에 맡기면 될 것을 내가 방정을 떨며 서둘다 일을 더 그르쳐버렸다. 수련을 통해 다시 한번 나 자신을 성찰하며 수련하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