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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1. 2024

접혀진 페이지

쉰들러 리스트

게르만 민족 고유의 오연하다 못해 냉혹해 보이는 콧날. 한 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을 듯 빙벽처럼 차가워 보이는 반듯하게 각진 이마. 프로필이 마치 대리석 조각 같던 남자 쉰들러. 그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사랑의 특별한 힘과 불멸의 빛에 대해서도.



지난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영화상의 각 부문별 트로피를 휩쓸다시피 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 그 영화가 스필버그의 탁월한 능력에 의해 세월의 갈피 사이 표 없이 묻힌 한 사람을 발굴 조명하여 일약 영웅으로 만들었다. 나치의 광기가 극에 달했던 시절. 히틀러에 바치는 광적인 충성과 유태인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으로 뭉쳐진 나치 집단이 한창 기세등등하던 때. 유태인들은, 게르만 민족의 우수 혈통을 유지 보전시키기 위해서라는 명분하의 아리앙 프로젝트에 따라 게토라 불리는 집단거주지에 격리수용 당한다.



살기 띤 게슈타포의 눈길을 피해 고향을 버리고 조국을 떠나는 비극은 '안네의 일기' 외에도 도처에 흔한 일이었다. 쫓기고 쫓아가며 혹은 숨고 발각되는 과정에서 나치가 유태인에게 가한 잔혹한 짓거리는 역사 속에 추악한 핏자국을 남겼다. 인간의 기본권마저 침탈하고 마구잡이로 살상을 저지른 나치의 만행에 대해 유태인들은 용서는 하지만 결코 잊지는 않는다는, 골수에 사무친 다짐을 한다.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집단수용소로 내몰리고 종당엔 아우슈비츠에서 연기로 사라지는 2차 대전 와중. 어처구니없는 참상이 벌어지던 때에 한 독일인이 나서서 일단의 유태인을 구해낸다. 나치즘이 시퍼렇게 위세 떨치고 있던 전시, 군수공장을 운영하던 쉰들러가 바로 그 사람이다. 수완 좋은 사업가이자 술과 여자를 탐하는 호색한인 그. 쉰들러가 전재산을 털어 작성시킨 명단에 오른 천여 명의 유태인은 그렇게 사지로부터 구출된다.



이미 한 줌 흙으로 돌아가 십자가 아래 잠든 그를 일으켜 세워 나치의 포악성을 거듭 고발케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세상을 일깨운 영화 쉰들러 리스트. 그 영화는 숨 막히는 전율이었고 벅찬 감동이었다. 세 시간여, 쉰들러는 참으로 복합적인 여러 감정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는 한 편의 영화로 단번에 그 이름이 세계인의 가슴에 각인되었으며 더불어 그에게 쏟아진 격찬은 대단했다. 그는 충분히 기립박수를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쉰들러가 구한 생명은 천백 명이었지만, 그들이 남긴 후손까지 셈한다면 그 숫자는 단순한 수치의 개념을 넘어선다.



입동 무렵의 어느 날. 아리아리한 비색으로 창천 눈부신 아침나절. 뜻밖에도 쉰들러의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무엇이 쉰들러로 하여금 이해득실과 관계없는 모험을 하게 했을까로부터 그 사연의 실마리는 풀려났다. 그것은 또 다른 충격파였다. 왜 그랬던 걸까? 쉰들러가 유태인을 구하게 된 동기에 대해 그럴만한 배경이나 납득할만한 설명이 달리 없었다. 그럼에도 의아심을 갖기는커녕, 영화 자체가 너무 완벽해 아무런 빈틈을 느끼지 못했던 나였기에 잠시 멍했었다. 그러고 보니 맞다.



쉰들러는 왜 그들을 구하고자 했을까. 혹시 그의 가계에 유태인의 피가 섞였었다면 사전에 언급이 안 될 리 없다. 생명에의 외경심, 또는 인간적인 이유에서? 물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자연발생적으로 깃들어 있다. 다만 실제 행하는데 따르는 자기희생과 손실을 계산하므로 실천에는 크고 작은 용기가 필요한 것. 따라서 쉰들러가 아무 상관관계없는 유태인을 전 사재를 털어가며 구한 데 대한 해답으로는 미흡하다.



독일인의 전형이다시피 한 그로부터 자비심이나 의협심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인간애나 인류애를 발휘할 만큼 폭넓은 박애주의자로 유추해 보기엔 그의 눈빛이 너무 비정하다. 경건하고 숭고한 정신세계를 추구하기보다 통속적 향락을 즐기며 사는 지극히 현세적인 쉰들러가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도무지 설득력이 부족하다. 좀 더 구체적인 계기, 수긍할만한 이유가 있을 법하다.



두 번씩이나 영화를 보고도 그 점이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자리를 넓혀가더라는 S선생. 쉰들러가 유태인을 구하게 된 보다 타당성 있는 이유가 궁금해 줄곧 머릿속에 물음표 하나가 떠다니던 차 우연히 일본 잡지를 읽다가 그 비밀을 풀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쉰들러의 생애를 다각적으로 추적해 온 한 일본 작가의 끈질긴 집념이 이룬 개가 덕으로.



쉰들러의 이야기가 영화화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그의 삶을 증언해 준 많은 유태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개는 막연히 겉도는 내용들로 유태인들이 고통에 처한 모습을 보자 구해줘야겠다는 마음이 솟았다는 다소 피상적인 설명으로 얼버무려진다. 그러나 수소문 끝에 만난 럭스라는 유태인으로부터 신빙성 있는 증언을 듣게 된다.



종전 후 쉰들러와 동행이 되어 두 달여 동안 남부독일을 여행했던 그는 쉰들러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속내를 펼쳐 보인 유일한 사람인 셈이다.
유태인을 구하게 된 보다 솔직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럭스의 질문에, 한참을 말없이 뒷모습만 보이던 쉰들러는 마침내 폭포 같은 눈물을 쏟는다. 황혼이 장엄히 내리는 강가에 서서 비로소 쉰들러는 접혀진 페이지를 연 것이다.



세네카는 말했다. 가벼운 슬픔 앞에 사람은 수다스럽지만 큰 슬픔을 당하면 차라리 침묵하게 된다고. 그래서 쉰들러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가. 미완으로 끝나고 만 안타까운 사랑, 그리하여 애타는 그리움인 채 내밀히 품고 살아온 아쉬운 이름. 가슴섶 열면 하마 사라질까 꼭꼭 다져 안았던 사람.



화인(火印)으로 박힌 아픈 사랑의 흔적은 세월이 흘러도 희미해지기는커녕 더욱더 선명해지는 것. 노을진 강가에서 한 여인을 떠올리며 쉰들러는 비탄 젖은 절규를 한다. 오! 리자…



쉰들러의 사랑은 독일 드레스덴으로 향하는 기차여행에서 비롯됐다. 열차 앞 좌석에 마주 앉은 젊은 여인에게 강하게 빨려 들어가는 그. 사랑은 소리 없이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것. 누가 사랑을 두렵다 피할 수 있으며, 손 내밀어 구하고자 한다 하여 쉽게 잡아지는 것이던가. 사랑의 감정은 예측불허이고 막무가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스며들어 순식간에 전신을 뜨겁게 불타오르게 하는 열병 같은 것. 깊어갈수록 감미롭게 죄어드는 사랑은 몰아적 탐닉이자 혼곤한 도취이다.



쉰들러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신비스런 매력을 지닌 여인은 리자였다. 급속도로 가까워진 두 사람은 걷잡지 못할 격정에 빠지고 얼마 후 아기도 갖게 된다. 이 무렵이 자신의 생애 중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회고하는 쉰들러. 공교롭게도 대학교수이던 리자의 아버지는 유태인이었으므로 직장을 잃고 숨어 지내는 입장. 결국 시시각각 죄어드는 나치의 포위망에 전전긍긍하던 그들 가족은 기어이 국외로 도피하게 된다.



폴란드로 떠난다는 리자의 전갈을 접한 쉰들러는 그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미 나치의 발길에 짓밟힌 그 땅에서 리자의 자취는 사라진 뒤였다.



유태인의 표지인 별을 달 수밖에 없었던 리자는 수용소에서 아기와 함께 사살 당해 지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쉰들러가 느꼈을 비통함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쉰들러는 슬픔 한덩이를 가슴에 묻고 아무런 내색 없이 일상을 엮어 나간다. 그 사이, 숱하게 만나고 스쳐야 했던 또 다른 리자와 아기의 모습들. 내일을 기약 못하고 공포에 잠겨 사는 유태의 여인에게서 리자의 영상을 발견했을 테고, 천진한 눈망울에조차 불안이 떠도는 유태의 어린아이에게서 자신의 아기를 떠올리며 속울음 울었을 쉰들러. 그가 사지로 내몰린 유태인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자 했음은 당연한 노릇이 아닐까.



불꽃으로 활활 타오른 사랑은 마침내 불길 식어 허무의 재만 남긴다. 반면 아쉬움으로 스러진 간절한 사랑은 불씨 품은 채 승화되어 기적을, 예술을 탄생시키는 무한대의 에너지로 환원된다. 꽃 피고 씨앗 맺는, 예사로이 흔한 사랑을 넘어 쉰들러로 하여금 보다 큰 사랑, 널리 나누는 사랑을 가능케 한 리자. 사랑의 힘은 그렇듯 고귀한 것이며 그 빛은 세상을 한결 아름답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 된다.



영화의 후반부. 독일의 패전으로 전쟁이 끝나자 체코땅을 떠나는 쉰들러. 생명을 구해 준 유태인들이 감사의 표시로 자신들의 금니를 뽑아 반지를 만들어서 그의 손에 끼워 준다. 이에 나치 당원 배지조차 몇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 한탄하며 오열하는 쉰들러.



무리 지어 그를 전송하던 유태인들은 그 땅에서 번성하였고 세대가 바뀐 지금도 쉰들러의 이름은 은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뭇 영웅들이 그러하듯 쉰들러의 생애는 위대했으나 그에 머문 행복은 찰나였을 뿐. 그는 연달아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적으로는 결혼도 실패로 끝났다고 전해진다. 쉰들러의 자유분방한 생활에 익숙해 있던 부인이었으나 끝까지 참아내지는 못한 모양이다.



쉰들러의 마지막은 절망의 무채색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빛과 그늘이 교차된 숙명과도 같은 사랑으로 그러나 그는 아직도 찬연히 살아있다.     -1995-




사족: 영화가 대성공을 거둔 이후,  쉰들러 리스트는 왜곡,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호주 작가가 쓴 실화소설을 바탕으로 한  스필버그의 이 영화로 영웅의 신화가 탄생했으나 쉰들러는 일그러진 영웅으로 추락하는데... 아무려나 리자와의 불꽃같은 사랑으로만 그를 기억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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