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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2. 2024

유카와 조슈아 트리가 사는 마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까요. 도시 여기저기 깔려있는 보라색이 눈에 띠더라고요. 그게 가로에 피어있는 저 꽃나무였던가 봐요. 무슨 꽃나무인지 색이 아주 참하네요. 차창 밖으로 스치는 자카란타를 보면서 아들이 말했다. 제 아들 고교 졸업식에 참석하고자 바쁜 와중 잠시 미국을 방문한 아들이라 그 꽃나무는 영 생소할 터였다.



자카란타인데 하늘에서도 보일 정도든? 예, 아주 깔리다시피 했던데요. 그 말을 운전하던 딸이 받는다. 엄마 잘하는 거 있잖아, 왜.원산지 설명부터 얽힌 얘기들 죽 나열하시지. 은근 비아냥 섞인 뉘앙스다. 몇 년 전이다. 오동꽃과 흡사한 그 꽃송이를 주워 사진 찍어가며 향을 맡는 것까진 봐준 딸내미. 헌데, 외갓집 마당을 환하게 밝히던 오동꽃이 생각난다느니 런던 렉싱턴 가든의 오동나무 얘기를 주어 섬기는 엄마가 꼴 뵀던 기억이  떠오른 듯 빈정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암튼 지금은 자카란타 얘길 하려는 게 아니라 LA 넘어 동네에 천지인 유카와 조슈아 트리에 관한 이바구다. 하이웨이를 달려 집으로 향하는데 황막한 산기슭을 가리키며 아들이 물었다. 저 꽃은 유카 꽃 아닌가요? 길게 뽑아 올린 대궁에 하얀 꽃 주렁주렁 매단 채 산자락에 드문드문 솟은 유카를 먼 빛으로도 용케 알아본다.  



유카는 용설란과의 여러해살이 식물로.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견뎌낸다. (못 말리는 習, 남들 싫어하는 이 아는 척 병) 맞다, 근데 어떻게 유카꽃인 줄 알았니? 제가 어릴 때 대구 집에도 있었잖아요. 그랬다. 아들이 초등학생 때 살았던 봉덕동 집 담장가에 세모꼴 빈터가 있었고 그 가장자리엔 유카가 나란히 심어져 있었다. 빳빳한 잎 끝의 가시가 하도 날카로워 누구도 섣불리 그 근처에 접근하지 못했으니, 유카는 탱자나무 생울타리처럼 일종의 식물 철조망 역할을 해줬다.



사십 년도 더 넘은 그때도 여름 내내 꽃대 가득 흰 꽃을 소담스레 매달고 있던 유카다. 유카 옆에 이상하게 생긴 식물은 나무 같기도 한데 이름이 뭔가요? 조슈아 트리를 처음 보는 아들이다. 뉘엿뉘엿 지는 황혼을 배경으로 선 조슈아 트리는 안 그래도 고적한 주변 풍경을 더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조슈아 트리는 더러 육중하게 자란 거목도 있지만 대체로 빈약한 골격 끄트머리에 침 같은 가시 잎을 달고 있는 유카다. 마치 눈매 퀭한 설산 고행승이나 사막의 은수자 같은 분위기로 그지없이 초췌한 몰골을 하고 있는 그 나무.


불모지로 보이는 황막한 사막을 더 황량하게 만드는 조슈아 트리는 처연스럴 정도로 비쩍 마른 모양새인 데다 기형적으로 비틀어진 형태라 퍽 그로테스크하다. 뭐든 미라로 만들어 버리고 말듯이 뜨겁고 건조한 열사의 땅에서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살은 다 걷어내고 오직 뼈만 남겼다. 바람 따라 나부끼며 노래하는 잎사귀들의 호사 따위 애진작에 포기해 버렸다.  High Desert에 적응해 살아가기 위한, 생존을 위해서 에너지 소모시키는 쓸데없는 군더더기들 미련 두지 않고 가차 없이 발라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



아주 오래전, 동부에서 비롯된 모르몬교 신도들은 종교 박해를 피해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서 무리 지어 서쪽으로 향했다. 청교도들이 피땀으로 일군 땅에서 모르몬경을 외우는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지만 이단으로 치부되어 탄압을 받았다. 그들이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며 사막을 건너던 중, 가지를 이리저리 뻗쳐 들고 서있는 기괴스러운 나무 군락지를 만났다. 땡볕 내리쬐는 사막을 헤매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만난 생명의 나무는 작은 그늘과 타는 목에 생명수를 제공해 주었다. 꽃과 씨앗은 먹거리이기도 했고 나무 둥치는 땔감이 되었다.


어쩐지 두 팔 올려 하늘에 간절히 기구하는 모습과도 같은 데다 길 잃은 자들의 희망이 되어준 그 나무를, 이후 그들은 '조슈아 트리'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신기루 현상으로 아물거리는 시야엔 마치 그 나무 실루엣이 십자가를 든 사람처럼 보였을 만도 하겠다. 물론, 이집트를 떠나 긴 세월 광야에서 방황하던 구약시대 유대인들을 마침내 약속의 땅으로 안내해 준 여호수아(조슈아)의 자취를 그 나무에서 느낄 법도 했을 테고. 히브리어로 여호수아는 ‘하느님이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의미라니까.



조슈아 트리는 나무라고는 하나 오래 묵은 유카와 용설란이 혼재한 식물로 유카(속)에 해당된다. 전 세계 통틀어 오직 모하비사막의 400~1500m 고지에서만 서식하는데 높이 15m까지도 자란다. 사막에 사니 선인장 같으면서도 용설란과 유카의 중간쯤 되며, 사막 고지대에서 자생하는 나무답게 대체로 키는 작고 강단지다. 외부의 상처로 인해 원 기둥에서 가지가 벌어지며 수형이 계속 달라진다, 쭉 뻗어 오른 기둥이 거의 없이 이리 꼬이고 저리 비틀린 지체들이 괴기스럽게 일그러지면 일그러질수록 더 강건체가 되어 속심 단단해져 마치 굳은 바위 같다.


석양 비낀 노을 아래서 마주한 모습이 쓸쓸한 소회를 밀려들게 한다면, 한낮 불볕 속에 서있는 그 나무는 스스로를 혹독하게 연단하는 고행자 같은 느낌을 준다. 눈 내리는 허허벌판에서 그 나무를 스쳐 지난다면 아무래도 탄식 같은 한숨을 삼키지나 않을까 싶다. 가령, 달도 없는 깊고 푸른 밤 총총한 사막의 별빛 아래서 조슈아 트리를 만나는 기분은 어떠할까.



만물은 모두 하늘뜻에 의해 생겨나니 순명할밖에 없으나, 하필이면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기 힘든 거칠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땅에 뿌리내려 천형처럼 숙명처럼 악조건 견뎌내고 받아들인 모진 생명이다. 그래도 섭리에 따라 봄이 되면 깡마른 몸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푸짐한 꽃이 핀다. 꽃이 지면 열매도 옹골차게 달린다. 이제는 보호수로 지정돼 자기 집 울안에 있는 나무라도 함부로 베어낼 수 없는 특수신분으로 격상됐다. 미세먼지로 곤욕 치르는 한국에서 온 아들인지라, 이곳이 공기 맑고 하늘빛 청명해 무덥지만 살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사막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황무지에 다름 아닌 이곳 사막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영적인 느낌을 주는 조슈아 트리가 여기저기 죽은 듯 산 채로 무연히 서서 추상화 같은 초현실적 공간을 펼쳐놓은 덕이 아닐는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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