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건축의 거장인 고 김중업 선생 작품으로 알려진 건물이 서귀포 바닷가에 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과 3·1 빌딩 등 규모 큰 건축물부터 부산 UN 묘지 정문, 제주대학 본관, 건물 설계를 맡았던 그는 한국 1세대 건축가다.
종로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며 자존감 솟대같이 높았던 셋째 삼촌이 '우리 선생님'으로 극존칭 했던 분이라 일찌감치부터 위상은 익히 들어 아는 바다.
프랑스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 삼 년 가까이 도제교육을 받은 그는 귀국해 열정적으로 근대 건축 분야를 개척해 나갔다.
특히 직선과 곡선을 아우르는 독창적 기법을 구사해 그의 작품은 가우디의 구엘공원과 겹쳐지기도 한다.
제주대 본관 건물은 하자가 생겨 30년 만에 철거되었다 하나 제주대 수산학부 본관은 유일하게 아직 남아있다는데.
현재 서귀포 중앙여자중학교 교사로 용도변경되어 사용 중이라니 한번 답사할 예정이다.
수평 연속창과 수직적 라인의 파사드(정면 외관), V자형 구조의 기둥이며 돌출된 수직 루버(줄무늬 형태의 입체 구조물) 등 김중업 건축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기에.
김중업 건축미학만이 구현할 수 있는 독특한 건물인 소라의 성은 폭포수와 파도의 탄주가 격정적으로 어우러지는 곳에 절묘하게 자리했다.
건축물 다수를 작품으로 남긴 분이라 그래 그런지 건물 외형이 아주 특이하다.
단순한 가운데 곡선이 갖는 아름다움의 정수를 충분히 보여주는 이층 건물인 소라의 성.
1969년 처음 지을 당시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미스터리로 남은 채 현재는 시민 북 카페다.
월요일이라 문이 닫혀 있어 안에는 들어가 볼 수 없었으며 바람까지 거칠게 불어 잠깐 머물다 물러났다.
해안 절벽에 지은 건축물이므로 이곳 전망대에 서면 서귀포 앞바다를 아주 멋지게 조망할 수 있다.
올레길 6코스와도 연계되어 있으나 기상 탓인지 인적 휘휘해, 어떤 부부팀이 아니었다면 소정방폭포 길은 엄두도 못 냈을 거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날이라 파도 구경이나 할까 하고 왔는데 폭포 떨어져 내리는 바다는 의외로 조신하게 굴었다.
거리에서 그리도 사납게 휘몰아치던 광폭한 바람이 어쩐 일인지 바다에서는 아주 얌전했다.
어둠침침한 오솔길 지나고 바다로 이어진 난간을 내려가 소정방폭포 앞에 섰다.
폭포수 그리 높지는 않았으나 여러 줄기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토해내는 굉음은 우렁찼다.
더구나 바로 옆에서 폭포를 볼 수 있다니... 다만 사정없이 튀는 비말 때문에 급히 자리를 떠야 했다.
정방폭포에서 동쪽으로 오백여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으나 관광객들로 붐비는 정방폭포와 달리 한적하기 그지없는 소정방폭포.
온 길 되짚어 돌아오며 발길 재빨라졌던 건 날씨 탓만은 아닌, 어딘가 침침하게 감도는 음산한 기운 때문이었다.
잠시 정원 산책 정도로 여기고 가볍게 들어선 길인데 기분 으스스하게 만들었던 건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만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 일어난 해상사고이나 서귀포와 부산을 오가던 정기여객선 남영호 침몰로 삼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니 온 나라가 떠들썩했었고.
이에 더해 뉴스를 통해 낯익은 안경 낀 여간첩 이선실이 바로 이 인근 해안을 통해 침투했다는 경고판을 보자 오싹 소름이 돋았던 것.
90년도에 발생한 사건임에도 이리 기억 생생할만치 당시 대남공작을 총지휘한 이선실 간첩단 사건은 전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서귀포 대정마을에서 초등학교도 다니다 만 이선실은 부산에서 남로당 활동을 한 경력이 있었다.
이선실은 육이오 직전 월북해 간첩교육을 받고 1969년부터 90년까지 수차례 남파 공작활동을 펼쳤다.
북한 권력 서열 22위였던 이선실은 거물 공작원으로, 주요 도시의 단체 등을 포섭해 ‘남한 조선노동당’을 결성했다 한다.
간첩이 진짜로 있나? 하는 사람도 있는 세월이긴 하나 아무튼 오래전 이선실 간첩단 뉴스가 떠오르니 오싹해졌다.
더러 올레길에서 사고가 발생해 안전 대책문제 부각되자 진작부터 동행이 있을 때만 걷기로 했던 터.
이 길은 그 외에 기상상태 좋지 않은 날도 이래저래 피해야 할 산책길 중 하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