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테라피가 절로 되는 풍경

by 무량화


이월, 안개 내리듯 고요히 비가 내렸다.

오후부터 시작된 세우(細雨)는 마치 봄비처럼 순하고도 아늑하게 스며들었다.

영주 선비촌 한옥마을 초입의 고택 김상진 가(家)에서 홈스테이를 하기로 예약한 터였다.

한옥 방 두 칸을 내부구조변경을 하여 편리하고 안락하게 꾸며놓았기에, 신식 구들장 따스함으로 눅눅감을 덜어냈다.

기왓골 타고 밤새 낙수지는 물소리 하도 고즈넉해 그 밤 단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머리맡에 자리끼와 책 서너 권 포개두어서인지 꿈길조차 정결스러웠다.



새벽, 창호문을 여니 비는 조용조용 여전스레 내렸고 정적에 싸인 천지간에는 신비로이 피어오르는 물안개 자욱했다.

그 호젓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밤새 내린 빗줄기에 씻겨 말간 얼굴을 한 기와지붕과 장독대는 단정하고도 정갈했다.

청솔잎 끄트머리와 산수유 고운 열매에 맺힌 물방울이 유독 투명히 도드라져 보였다.

아침나절 우산을 쓰고 고샅길 따라 마을 구석구석 천천히 돌아보았다.

솟을대문 높직한 기와집 사랑채도 둘러보고 소박한 초가집 부엌에도 들어가 보았다.

고향에 온 듯 아늑한 기분이 들며 평화가 스며들었다.

솔솔 낮잠에라도 빠질 것 같은 은근스런 이 편안감.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좋게 하여 최상의 심신 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테라피.

의학에서 비롯된 테라피 개념은 치료나 요법을 이른다.

음악치료는 뮤직테라피, 향기로 치료하는 아로마테라피, 온천욕을 통한 스파세러피 등등 세러피(therapy)라는 용어가 들어가는 여러가지 힐링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소수서원 선비촌에서 묵는 내내 비가 왔고 비에 젖은 풍경들 마주하노라니 저절로 마음테라피가 이루어지는 느낌이었다.

택지를 정할 때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배산임수 지형이다.

뒤에 산이나 언덕이 있어 바람을 막아주고 앞쪽에 강이나 연못이 있어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곳을 풍수설에서 명당으로 친다더니 그에 딱 부합되는 선비촌이었다.

일상의 타성에 빠진 생활인들, 날 선 직선과 예각에 길이 든 도회인들, 치열한 경쟁과 온갖 소음에 지친 젊은이들, 오랜 타국살이로 심신 경직돼버린 교민들이라면 여기 와서 며칠 자신을 텅 비우고 쉬었다 가길.


대원군과 막역지우였던 해우당 고택에는 화마를 피하게 한 며느리의 보은 설화가 담겨있는 고옥

돌담 앞 소나무 청청한 솔잎에 잣을 꿴 듯 송송 맺힌 물방울

인동장씨 종가로 문무를 겸비한 장말손은 사헌부 감찰, 함길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여 대문채에 가마 떠억!!

마을 한 모퉁이 뒷녘에서 비에 젖고 있는 연자방아

초가 한옥은 독립운동가 김성규선생의 본가이자 그분의 따님이신 김남희여사와 결혼한 조지훈 시인의 처갓집이다.



조 시인의 대표작 '별리'로 마무리한다.


...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


방울소리만 아련히


끊길 듯 끊길 듯 고운 메아리...



고샅길 따라 옹기종기 이마 맞댄 기와지붕과 초가집, 올곧은 선비라면 부요함을 내세우지 않았으며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연못에 앞발 담근 채 시나브로 비에 젖어가는 전각 하나

일회용 세트처럼 어설피 꾸민 물레방앗간이 아니라 실제 순흥에 있던 물레방앗간 그대로를 이전했다고

선비촌에 유독 많았던 산수유나무, 열매 끄트머리에 투명하게 맺힌 빗방울들

닭장과 돼지우리, 마굿간이 있어 거름 내 풍겨나고 새벽이면 닭울음소리 구성지게 들리던 선비촌


주소: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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