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 온 그 이듬해.
마늘 수확철이 되자 마늘 캐기를 체험해 보고 싶어 여기저기 수소문했더랬다.
마침 대정농협 공고문을 보고 주말에 자원봉사하겠노라 현주씨와 신청해 뒀으나 가타부타 무소식인 채 철이 지나버렸다.
공고가 나가자 아마도 많은 신청자가 몰린 모양이라며 마늘 캐는 일은 그만 잊었다.
다시 그다음 해 생각잖게 기회가 왔다.
시청 서포터스들의 봄철 일손 돕기 봉사활동으로 대정 마늘밭에 가게 됐다.
서귀포 대정벌은 알이 굵은 육종마늘 산지인 대표적 마늘곳이다.
토질 좋고 일조량 풍부한 청정지역인 대정이라 우수한 품질의 마늘 생산지로 명성 자자하다.
대정은 들판이 매우 넓어서 겨울철엔 제주 무 주산지로, 봄부터 오월까지는 마늘밭 끝없이 펼쳐져 있다.
멀리 모슬봉이 마주 보이는 들녘.
대정벌 한 촌락에 들어서니 거의 모든 밭자락마다 마늘이 한창 수확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현장이었다.
캔 마늘들은 밭에 나란히 나란히 일렬로 누워 볕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아직 안 캔 마늘은 이미 누런 잎이 져 있었다.
우리는 목장갑과 골갱이를 받아 들고 마농밭으로 들어갔다.
*제주어 골갱이는 호미, 마농은 마늘.
밭이랑은 질퍽했다.
제주 흙은 대체로 시커먼 편인데 대정골 흙은 황토였고 매우 차졌다.
각자 맡은 두둑을 따라 마늘을 캐기 시작했다.
마늘대를 잡고 살살 뽑으면 쏘옥 빠져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골갱이질을 하면서 뽑아야 했다.
거의가 손목 힘과 팔 힘이 협업을 해야만 마늘이 제대로 뽑혔다.
캔 마늘은 뿌리에 달린 흙을 털어준 다음 한 줄로 널어 볕을 쪼이게 해 줬다.
단순히 마늘 건조 과정인 줄 알았는데, 아직 푸른 기운이 남아있는 이파리와 대궁의 양분을 이때 뿌리가 흡수해들인다는 것.
열흘 동안의 숙성 기간이 지나면 대궁을 짧게 잘라준 뒤 이틀간 더 햇볕에 건조시켜 출하한다고.
마늘을 캐다 보면 번번 지렁이가 딸려 나왔다.
굼벵이같이 큰 벌레도 흙 속에서 꿈틀대며 기어 나왔다.
현장 탐사 중 포인트 장면을 포착한 듯 얼른 사진에 담았다.
밭주인은 그런 나를 멀뚱히 바라봤다.
아마도 이 밭은 제초제나 살충제 등 농약을 과다 사용하지 않은 듯해 미더웠다.
마늘 수매 시 농협공판장에서 농약잔류량을 측정해 만약 기준치를 넘으면 퇴짜 맞는다더니.
그 정도로 관리한다면 대정 마늘 품질은 믿을만하다 싶었다.
서귀포에서 유통되는 풋마늘은 당근 대정 마늘이라
고기를 구울 때 마늘을 불판에 넉넉히 올리곤 했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식품만이 아니라 공산품까지 서서히 중국산이 생활 전반에 잠식해 들어오는 판인데 여기서 사는 동안만은 그래도 안심이 된다.
신토불이라 했다.
청정 식탁은 곧 내 건강과 직결,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에 반응해 형성되는 몸.
먹은 음식이 고스란히 소화흡수되며 내 몸의 건강상태가 좌우되기에 신뢰할만한 청정환경 더불어 오래도록 살고 지고!
따라서 제주살이는 건강한 노년을 보장해 주므로 자연스레 길어질 거 같다.
배달음식이 보편화된 이 시대.
일손 바쁜 논밭 일터는 물론 낚시터에 까지 주문한 음식이 배달된다.
예전, 일하던 중간에 잠시 쉬면서 막걸리 곁들인 새참을 먹었다.
들밥이라 부르던 그 음식은 큰 광주리에 담겨 나왔는데 쥔장 아낙이 머리에 이고 왔다.
유년의 추억 한 갈피에 잠든 그 풍경 안에는 시금털털한 막걸리 주전자가 필히 등장했다.
부침개와 부추 겉절이며 두툼한 갈치조림, 수북하게 담긴 고봉밥 등이 순서 없이 떠오르는 새참.
때마침 부르릉~오토바이가 배달해 준 찐빵과 우유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나왔으니 퍽 시장했던 터라 생애 최고로 맛있는 찐빵을 세 개나 먹었다.
밭고랑에 선 채로 막걸리 대신 삼다우유 벌컥벌컥 들이켜 가면서.
이어서 다시 마늘 캐기, 새참도 먹었으니 점심때까지는 꼼짝없이 이 작업 계속해야 한다.
불끈 새 힘이 돋아야 하는데 기온까지 점점 오르자 더워서인지 외려 축 처지며 능률이 떨어진다.
밭두둑에 캔 마늘이 늘어갈수록 팔다리 어깨는 묵지그레, 손바닥이 얼얼해졌다.
운동화에 붙은 진흙이 무게를 더해갔다.
지금은 손꼽히는 산업국가이나 육칠십 년 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농업국가였다.
소가 논밭 갈고 곡괭이질 하던 시대는 옛날 고릿적, 연필이나 펜 대신 자판과 마우스를 사용하는 시대다.
그러니 어깻죽지만이 아니라 허리도 아프다는 옆 젊은이, 엄살만은 아니리라.
손목과 손바닥도 얼얼, 힘들다며 아우성이다.
하여간 온 삭신이 녹작지근.
내색하면 노인네라서 그렇다 하겠으니 묵묵히 골갱이질을 하며 마늘을 뽑는다.
인내의 열매는 달다, 란 최면을 걸면서.
원래 저력은 없으나 강단진 체력인데 아공, 마농아! 왜 이리 쑥쑥 뽑히지도 않고 밉상 지기니.
그나저나 앞으론 절대! 결코! 마늘값 비싸단 불평은 하지 않겠다.
육체노동 어느 직종이나 어렵겠지만 잠깐 해보니 농사일 진짜 힘들다.
하기야 정신노동 역시 단순하거나 가볍질 않아, 오죽하면 피를 말린다고 할까.
기실, 한세상 살아가는 일 자체가 쉬운 게 아니니 어느 경우인들 그렇지 않겠나만은.
마늘 캐기 고작 몇 시간 하고는 이틀을 꽁꽁, 몸살앓이하느라 두문불출.
엊저녁에도 쌍화탕 뎁혀 먹고 자정 무렵 취침, 아침에 눈 뜨니 여덟 시다.
푹 자고 일어나니까 이제는 몸도 가뜬, 기분도 개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