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논에서 모내기 구경 삼매에 빠지다

by 무량화

제주에서 벼가 자라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화산섬의 특성상 논농사를 짓기 어려워 주로 밭농사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하논분화구는 특수 지형이라 비교적 물이 많은 땅이다.

해서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선 논농사를 지어왔다.

지난 일요일, 서홍동 주민자치회에서 주관한 하논 생태체험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날 초등생들이 질퍽한 논에서 모내기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렬로 반듯하게 꽂아야 하는 모내기를 아이들이 어떻게 해놨을까?

줄 맞춰 모를 심게 해주는 못줄이 요즘에도 있을까?

예전 중등학교 다닐 때 농번기 일손 돕기 일환으로 모내기철에 농촌에 가서 모내기를 지원했다.

학생 외에 군인이나 공무원들도 너른 평야가 있는 촌에 가서 모심는 일손을 도왔다.

당시는 물속에 거머리가 흔해서 장화를 신거나 헌 나일론 스타킹을 신고 논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도 종아리에 거머리가 붙을라치면 여학생들은 질겁을 하고 마구 소리 질러댔다.

요샌 과도하게 비료와 농약을 써서 거머리도 없어졌다고는 하나 지난번 모판 구경하다가 실로 수십 년 만에 거머리와 조우했다.

징그러운 거머리조차 하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하논은 지난해 겨울부터 수차례 들락거린 터라 철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른 봄 자운영꽃 만나보려고 몇 번 왔었으며 며칠전엔 개구리 소리 들으러도 왔었다.

자운영은 논갈이하며 다 갈아 엎어져 흔적 없이 사라졌고 대신 이름 모를 작은 풀꽃만 깔려있었다.

개구리 뛰놀던 늪에는 수초들 무섭게 자라 내 키를 웃돌 정도였다.

일단 오늘은 모내기 중인 논을 구경하려고 왔으니 모판쪽으로 향했다.



하논 들판에 들어서자 퉁퉁 철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앙기 소리였다.

아직 한번도 모심는 작업 현장의 이앙기를 본 적 없는지라 논길 따라 들판 가운데로 나아갔다.

모판 늘어놓은 논두렁 흙이 물컹거려 새색시걸음으로 조심스레 걸어야 했다.

자칫하다간 신발이 진흙에 빠져 젖을 판이었으므로 가까이는 가지 못했다.

처음 보는 이앙기를 운전하는 농부 아저씨, 모심는 사진 멀리서 찍어대는 내가 참 하릴없는 사람이다 여겼으리라.

한 열흘쯤 물에 담가 싹 틔운 볍씨를 뿌려 모를 알맞게 키워낸 못자리판이며 직사각형의 모판이며 요모조모 사진에 담았다.

못자리에서 자란 모를 쪄내 적당 간격으로 한 포기씩 무논에다 뿌리 튼튼하게 꽂아주는 모내기.

모심는 논에는 한 줄로 늘어선 여남은 명 일꾼들이 선창자 가락에 맞춰 노동요 구성지게 불렀었는데.

하얀 광목 바지 둥둥 걷어 올리고 허리춤에는 수건 하나 걸친 다음 등줄기 좌악 편채 후렴구 뽑아댔는데.


하논에서 이앙기로 모내기 구경하며 삼매경에 빠진 채 흥얼거린 우리네 가락.

"~~오뉴 에이여 월에 흘린 땀이 / 구시 에이 월엔 나락 되네~~~~ "

노래 부르며 일일이 손으로 하던 그 작업을 이제는 농부 혼자서 이앙기라는 기계가 도맡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 손길만큼 고르지 않아 삐뚤빼뚤 심은 모양새 제멋대로였다.

이앙기만 따라다녔더니 휘발유 냄새에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마침 실참때인듯 기계 소리 멎게 하고는 농부 아저씨 논두렁 풀밭에 앉아 비닐에 든 빵 봉지를 뜯었다.

이에 곁들여지는 건 우유와 수박 쪽.

예전 같으면 베 보자기 덮개 아래 광주리 가득 이고 왔을 새참 거리.

고봉밥에다 미역냉국에 가지 무침이나 애호박 볶음, 하다못해 갈치 꽁다리라도 구워 왔을 텐데.

당연히 찌그러진 막걸리 주전자와 노란 양은그릇도 딸려왔을 테고.

맛있게 드시라며 얼른 자리를 비켜줬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옥수숫대 실해졌으며 농약 잔뜩 뿌린 귤밭의 귤은 그새 핑퐁만큼 커져있었다.

유월 들녘은 왕성한 에너지 가득 차 짙푸르렀고 칡덩굴 호박덩굴 한껏 무성하게 뻗었다.

농가 담 앞에 무궁화 함빡 피고 뜨락에는 봉숭아 꽃도 피어난 걸 보니 어느새 풋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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