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해서 아름다운 메밀꽃 호박꽃

by 무량화


얼마 전 메밀꽃 축제가 열린 곳을 다녀왔지만 기대했던 '소금을 뿌린 듯 숨 막히게 아름다운' 정경은 만나지 못했다.

그저 연둣빛 메밀밭만 보고 왔는데, 그 아쉬움을 해소시켜 주기 충분한 장관이 흐뭇하게 펼쳐진 이곳.


성산일출봉을 다녀오다가 언뜻 스친 메밀밭이다.


기어코 다음날, 눈여겨 둔 그곳을 다시 찾았다.


삼삼하게 아른거리는 하얀 메밀꽃이 핀 한지동에서 차를 내렸다.


새하얀 메밀꽃이 설원이듯 한 밭자리 흐드러진 그곳.


상상 속 그림만으로도 마음 아리아리해지고 두근거려지지 않는가.

정서의 현 부드러이 터치해 그 앞에 서면 누구라도 아티스트 되지 싶은 풍경.


지금도 감성 연하게 풀어주는 서정적인 분위기 만끽할 수 있었지만 하순 무렵엔 더한 멋이 가미될듯하였다.


잔바람결에도 호르르 나부끼며 여린 대궁 떨리는, 그 섬세한 몸짓이 우릴 쉬 떠나지 못하게 부여잡았다.



오래 전인 고려 충렬왕 때 제주도에 몽골인이 들어와서 한라산 중산간에다 메밀 씨앗을 뿌리며 역사는 시작됐다.

몽골인들 계산에, 찬 성질이 강한 메밀을 먹고 사람들 기가 허해져 몸이 약해지기를 바라서였다는데.

그러나 제주 사람들은 지혜롭게 메밀의 찬 성질을 중화시키는 무를 곁들여 먹으므로 식품 사이의 균형을 잡게 했다고 한다.

환경 척박한 제주라 다른 곡물보다 생명력이 강하고 생육 기간이 짧은 메밀을 경작해 진작에 구황식품 역할을 한 메밀이다.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메밀 덕을 보게 된 제주.

제주에선 메밀로 만드는 음식 가짓수가 많아 메밀밥, 메밀범벅, 메밀수제비, 메밀묵, 빙떡 등 다양하다.

요즘엔 메밀빵, 메밀차, 메밀와플, 메밀호떡, 메밀쿠키, 메밀커피, 미숫가루까지 활용 범위가 한층 넓혀졌단다.



메밀밭 바로 옆자리 밭에는 건강하게 줄기 벋어나간 호박덩굴 무성했다.


장한 생명들에 격려의 박수 보낼 만큼 호박순 이리저리 뻗어 저마다 샛노랑 꽃등 밝혀 들었다.

아직은 수꽃만 무성하게 피고 지는 호박덩굴.


줄기 끄트머리에 동그란 아기 호박 매단 암꽃도 개화 순서 기다리고 어느새 주먹만큼 자란 호박도 있었다.


우리는 동시에 속삭였다, 애호박 참 맛있겠당!


윤기 자르르, 말갛고도 앳된 호박을 보자 난 여름날 외숙모가 뚝뚝 땀 흘리며 뜯어 넣던 수제비가 생각났고.


야들야들 연한 호박잎 꺾어서 줄기 다듬어 밥솥에 얹은 다음 살푼 쪄 밥상 위에 올리던 호박잎 쌈.


손바닥에 펴놓은 호박잎 쌈에 밥 푹 떠 넣고 알맞게 막장 곁들여서....


현주씨 눈이 스르륵 감겼다.

향수 어린 고향 맛 상상만으로도 입안의 침샘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아서라, 상상은 자유라지만 남의 밭에서 먹거리 타령이라니.


우린 돌담 너머 호박 덩굴과 메밀꽃에 손 흔들어 주고 차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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