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마 행복은 자녀 옆에서 완성될까

by 무량화


학교 시간과 맞물려 매일 미사에 참례하지를 못했는데 방학인 요즘은 아침마다 성당에 간다. 미사 마치고 나오는 데 서쪽 하늘에 걸린 하얀 달이 마주 보였다. 아래쪽이 제법 이지러져 반달에 가까웠다. 집에 오는 내내 달은 저만치 오른쪽에서 나를 따라왔다. 그러나 낮달은 이윽고 태양에게 자리를 내어주고는 고요히 사라질 것이다. 또한 하현달은 마침내 버들잎보다 더 가녀린 그믐달로 변모해 가리라. 생성과 소멸 거듭 이어가는 일체 만물은 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생주이멸(生住異滅), 모든 사물은 때가 되면 생겨나 번성하고 변화하다 종내는 소멸되고 마는 하늘의 철리에서 한치 벗어날 수 없음이니.


얼마 전 손주 졸업식이 있던 날, 그 밤 보름달은 둥두렷 선연한 자태로 유난히도 크고 밝았다. 원만무애한 그 달도 며칠 만에 서서히 반달로 이울어 가듯, 졸업 축하 꽃다발은 채 일주일을 못 버티고 생기를 잃어갔다. 큰 화병에 꽂았다가 색상별로 나눠 작은 화병에 옮겨 꽂았던 꽃을 뽑아서 더 시들기 전에 드라이플라워로 만들었다. 보람으로 뿌듯했던 순간의 기억을 가능한 한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눈길 사로잡는 아름다운 꽃일지라도 화무십일홍, 시간 지나면 초라하게 퇴색돼 최종 처리 방법을 잠시 고민하게 만든다. 그냥 버리자니 꽃에 담긴 의미가 걸리고 선물한 마음이 또 걸린다. 다행히 건조한 지역이라 통풍이 잘 되는 장소에 꽃을 거꾸로 매달아 놓으니 바삭하게 잘 말랐다. 드라이플라워는 지금, 꽃꽂이 솜씨 오죽잖아도 빈티지한 그들만의 독특한 분위기 연출하며 새롭게 변신해 탁자 위에 자리잡고 있다. 여전히 은은한 풀 내음 풀어내면서.



양란으로 꽃목걸이 엮어만든 레이는 딸이 전날 미리 사뒀다고 했다. 졸업식에 참석하러 가는 도중, 꽃집 들러 싱싱한 꽃다발 셋을 골랐다. 우선 하나는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게 된 손자 몫으로, 해처럼 환한 미래가 열리라는 염원 담아 해바라기 부케를 택했다. 두 번째는 질풍노도 시기의 조카 맡아 네 해 동안 돌본 딸에게 고마움 담아, 릴리와 장미가 조화 이룬 꽃 한 묶음이다. 또 하나는 유학 생활 뒷바라지하느라 수고 많은 아들에게 응원의 뜻으로 금어초와 안개꽃, 수국꽃 풍성한 꽃다발을 마련했다. 흐뭇한 표정의 그들 품에 안겨 사진 몇 장 찍힌 다음 꽃다발은 모두 집으로 실려왔다. 딸과 저녁상 준비하는 동안 아들이 부케를 풀어 이파리와 꽃을 다듬어서 큰 화병에 꽂았다. 후배 유학생들한테 받은 꽃다발까지 합하니 양이 많아 꽃병 가득 소담스러웠다. 화병에 푸짐히 꽂힌 꽃에다 모처럼 아들 딸 한자리에 모인 덕에, 행복 알갱이들 동동 떠다니듯 내동 벙싯거려졌다.



누구나 한때 만월(滿月)의 충만감으로 빛나던 시기가 있었다. 꽃다발 속 장미처럼 주역되어 저마다의 위치에서 책임 맡은 나름의 역할도 있었다. 화사하게 만개한 꽃은 향으로 빛깔로 자태로 우리에게 그윽한 기쁨을 안겨준다. 꽃은 긍정적 에너지를 선사하며 기분전환에 최고여서 이제 꽃을 문화라고까지 일컫는 시대다. 생화만이 아니라 드라이플라워조차도 감성을 일깨우며 우리들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오고 있다. 꽃의 본성인 아름다움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자연상태 그대로를 보존시켜, 시간 구애받지 않는 꽃으로 재탄생된 드라이플라워. 그처럼 본디 역할이 세월 따라 사라졌을지라도 무의미한 존재로 퇴색되지 않은 채, 소멸 순간까지 여전히 '안개꽃'으로 남을 수 있는 통로 열려있음이 감사하다. 지금 내가 맡을 수 있는 몫은 바로 이들 위해 기도 바치는 역. 아침마다 기도처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래서 은혜롭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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