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

2002

by 무량화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여행지로 안동을 택했다. 환각제에 취하 듯 지명만 들어도 가슴 왼 짬이 저릿대는 곳. 한 번은 꼭 다녀와야 할 것 같은 그곳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살뜰하고 유정한 의미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그곳의 산과 들녘이 빚어내는 분위기며 바람의 느낌까지도 심층 깊이 새겨두고 싶었다. 더구나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만나고 싶으면 안동을 찾으라 하였다. 우리 고유의 얼은 물론 고래의 생활상과 자연 풍광까지도 원형 가깝게 별 훼손 없이 간직하고 있다는 안동이다. 굽이도는 하회 마을의 강줄기며 퇴계 문중의 서권기(書卷氣) 밴 白梅도 보고 싶었다.


그 터, 그 바람, 그 환경이 그에 따른 인물을 만든다 했던가. 경북 내륙에 위치한 안동은 이름난 반가((班家)로 꼽히는 풍산 류 씨와 이황 자손이 뿌리내린 땅이다. 법도와 체통 중시하는 양반 고을답게 꼿꼿하니 보수적이고도 완고한 나름의 기질이 분명한 터전. 안동 태생임에 긍지를 느끼는 어느 분처럼 가히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그만큼 인재 숱하게 배출된 지방이다.


안개비가 봄을 부르는 늦겨울 아침. 갑작스러운 여행 제의에도 친구는 두말없이 동행을 약속했다. 마음 갈피 눅눅히 젖어있는 나의 속내를 은연중에 헤아린 그녀였으리라. 항시 조용하니 말수는 적으나 자신보다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심덕 깊은 그녀다.


해운대역에서 기차를 탔다. 출국을 바로 목전에 두고 갖는 친구와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애틋한 감회에다 은사(銀絲) 같은 실비가 줄곧 차창을 따르는 여행길. 약간의 취기야 우리 나이쯤엔 용인되지 않으랴. 마음 풀어지게 하는 특유의 기운 때문인지 스쳐 지나는 바다며 나지막한 산야 풍경이 더없이 호젓하니 정겹게 안겨왔다. 두고 떠나는 모든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문득 아릿한 흉통 되어 가슴에 빗금을 그었다.


세 시간여 만에 닿은 안동. 첫 마중 나온 낙동강조차 낯설어하며 역사(驛舍) 앞 안내판부터 훑었다. 둘 다 서툰 초행길인 데다 찬바람에 흩어지는 빗줄기가 왠지 처연스러워 얼른 택시를 불렀다. 얼마 후 고향 동구 같은 아늑함으로 한눈에 안겨드는 하회마을 입구에 섰다. 고맙게도 때마침 비는 멎었고, 강 건너편 유배지처럼 외떨어진 푸른 솔숲에 안개구름이 신선도를 그렸다.


양갈래 길에서 잠시 멈칫대다가 잎 진 정자나무가 눈짓 보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말갛게 빗질된 고샅길 따라 걷노라니 시간 거슬러 배경은 영락없는 조선시대다. 퇴락한 채로도 기품 어린 대갓댁과 햇짚으로 이엉 얹은 노란 초가, 기와집은 명주 두루마기 차려입은 정경부인 품격이라면 초가는 무명 적삼 수더분한 행랑채 아낙일까. 집집마다 쓰다듬듯 눈길 주며 걷는 발길이 한유로워 ‘이리 오너라!’ 짐짓 호기마저 부리고 싶어졌다.


류 씨 성을 단 문패, 솟을대문 옆으로 깔끔스런 토담이 높직하게 이어졌다. 순간 특이한 장치가 시선을 붙잡았다. 기와를 인, 바로 아래 토담에 두꺼비 입 모양을 한 작은 주입구, 마치 로마에서 본 ‘진실의 입’ 같다. 부드러운 황톳빛에 겨우 손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를 한, 용도를 알 수 없는 구멍이다. 궁금하다. 마침 마을 노인이 지나가신다. 이게 무언가요? 의외다. 그 옛날에도 편지함이 있었다니. 하긴 급한 연락에 봉화를 이용하듯 공사 간(公私間)에 소식 띄울 일도 있을 터. 사람 살아가는 일상사에 서로 기별을 주고받는 서신이야 문자가 있는 세상이면 어딘들 없을까. 그런데 우편함 모양이 하고많은 물상 중에 하필이면 왜 두꺼비인지. 너부죽한 두꺼비 입이니 일단은 입구로 쓸 공간을 크게 만들 수 있어서이기도 하겠다. 또는 인상학에서 두꺼비 상이 잘 산다는 말도 있듯 부귀와 연관이 있는 반가운 전갈만을 기대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해 2월 미국에 닿아, 하는 일없이 마음만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까맣게 잊고 있던 안동에서의 기억이 홀연 떠올랐다. 눈길을 끄는 특별한 우편함을 만남으로 인해서다. 정확히는 우편함 둘레 장식이 나의 시선을 강하게 붙잡았던 셈이다. 이후 한동안 재미있는 우편함을 찾아다니며 사진에 담아두었다. 미국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곳 주택가를 지나다 보면 도로변 입구에 집집마다 우편함이 서있다. 마을 어귀에 세워둔 우리네 솟대나 마찬가지로 홀로 오똑하게.



대개는 생김새가 같지만 더러 취향 따라 특색 있는 형태의 우편함을 마련하기도 하나 공통적으로 우편함마다에 부착된 것이 있다. 붉은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깃대다. 그 깃대가 올려져 있으면 부칠 편지가 있다는 신호다. 우편함에는 배달된 편지만이 아니라 보낼 편지도 우표를 붙여 넣어 두도록 되어있다. 팩스며 인터넷으로, 보다 빠르게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월이다. 하지만 편지만이 지닌 독자적 기능과 제 몫의 영역이 따로 있기에 우편함은 여전히 설렘과 기대로 거기 서있는 것이리라.


아직도 서리가 깔린 어느 집 뜨락, 우편함 주위를 따라 둥글게 심은 수선이 녹색 잔디 위에 연노랑 꽃을 환하게 피워 올렸다. 마치 달무리 뜨듯 둥근 꽃띠를 두르고 있는 그날의 우편함은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새벽바람에 가벼이 나붓대는 수선화 꽃송이마다 투명히 맑은 종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수선화는 꽃 형태가 영락없는 종 모양. 아마도 종소리처럼 청신한 소식 기다리는 집주인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건 아니었을까.


집 앞에 세워진 우편함뿐이랴. 요즘엔 이메일을 체크하노라 메일 박스를 열적마다 안동의 그 우편함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기다림은 애틋하다. 하마나 하면서 기별을 기다리는 대신 내가 먼저 안타까운 그리움 담아 설렘이란 우표를 붙인 한 통의 우편물이 되어야겠다. 그리하여 이른 봄 백매를 만나러, 한여름 낙동강 굽이도는 푸른 물을 바라보러, 고즈넉 눈 쌓인 겨울 깊은 적막에 잠겨보려 언제이고 거길 가봐야겠다.

2002. 미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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