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을 끼고 걷는 해파랑길은 총길이가 770킬로미터로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다.
스페인의 카미노길과 거의 맞먹는 거리다.
전국 처처마다 잘 가꿔진 둘레길 올레길.
날씨 좋아지면 걷기 좋아하는 친구하고 부산서 시작해 차례차례 구간별로 해파랑길 답사해 볼까나.
말 설어 낯선 외국도 아니고 기일에 쫓길 일도 없으니 놀멍쉬멍걸으멍 유유자적 그렇게 해파랑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겠다.
반도 삼천리 그마저 반토막이 난 터라 손바닥만 하다고 얕봤던 이 땅.
그러고 보면 형편없이 비좁은 국토가 아니란 느낌이 새삼 든다.
게다가 강원도 산골짝까지 사방팔방으로 시원하게 뚫려있는 고가도로와 하이패스 시스템.
간선도로망조차 이처럼 소통 원활하게 기반시설이 잘 구축된 나라도 흔치 않을 성싶다.
어디서나 연결되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와 함께 도로망은 자랑할만한 수준임에 틀림없으니까.
지난번 언니네가 와서 며칠간 함께 부산 인근을 돌아다녔다.
가고 또 가봐도 물리지 않는 곳, 이기대와 오륙도를 찾은 날은 일기도 화창했다.
푸른 바다가 있고 명산이 둘러선 데다 겨울이라도 영상의 날씨인 부산이라 외지사람들 부러워하는 환경여건이다.
게다가 해물 즐기는 식도락가라면 자갈치시장만이 아니라 해변가 싱싱한 횟집 즐비해 흐뭇하고.
해녀가 물질하는 오륙도 선착장도 그중의 하나.
오륙도 공원에서 스카이워크 유리바닥에도 올라보고 이기대 쪽으로 방향 잡아 해안선 따라 걷노라면 바로 옆에서 파도 하얗게 밀려와 부서지며 튀어 오르는 물보라에 젖기도.
해풍 시원스러워 세월없이 망중한을 즐긴다.
그러나 이어지는 화산암 거친 암벽길이 잿빛 벼랑으로 변해 순간순간 긴장하게 만든다.
근처에 구리광산터도 있고 공룡발자국 화석도 기다리는 곳이다.
바위 낚시꾼이 망부석처럼 꼼짝 않고 서있지만 우리는 해안길을 버리고 산길로 올라섰다.
오래간만에 맡아보는 솔잎 향에 취해 솔숲을 한참도록 걸었다.
산간 폭포고 들녘 정자고 관광명소 어디나 지역마다 잘도 다듬어 놓은 데크길.
다정도 병이라 했던가, 너무나 편의시설이 과해서 병 혹은 탈일 정도다.
고르게 조성된 데크길은 때때로 그냥 흙길이면 더 좋았겠네, 라며 구시렁대게 만든다.
자연 그대로를 오감 통해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햇살, 바람소리, 흙내음 가까이하고 싶어서, 걷는 거니까.
미끄러워 위험스러운 마사토 경사지에 깔아놓은 야자매트는 고마울 적도 있지만.
바다를 낀 부산은 해안선마다 명승지를 품었다.
해파랑길 1코스는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출발해 이기대 동생말 광안리를 거쳐
APEC하우스가 있는 동백섬 지나 해운대 미포까지 걷게 된다.
거리는 17.7km인데 이날은 반도 못 걸었다.
해운대 신시가지와 달맞이고개가 멋들어지게 건너다 보이는 이기대 갈맷길과도 중간에 만나진다.
갈맷길은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트레킹 코스로 여러 갈래가 있다.
바다, 강, 산, 온천을 아우르는 부산의 명소를 고루 둘러볼 수 있게 짜였다는 갈맷길이다.
몇몇 곳에서 이처럼 두 길이 겹치기도 하므로 잔재미를 안겨준다.
바닷물빛 하늘빛 서늘하도록 청청해 문득 이승의 풍경이 아닐 듯한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