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4코스 맛보기

by 무량화


명칭도 상큼한 남파랑길은 남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다.

이미지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느낌 따스하지 않은가.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해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총길이 1,463km인 남파랑길.

그중 부산 구간의 4코스는 21km 정도라 오후부터 맘먹고 걸으면 노을빛 눈부실 즈음 낙동강에 이른다.

몰운대가 출발점으로 숲길과 바닷길 따라 다대포해수욕장을 거쳐 장림포구로 향하게 되는데, 맛보기로 일부분만 걷기로 한다.

사실 몰운대는 일출맞이 명소이며 파도 몰아치는 자갈마당은 누구라도 단박 홀려들기 십상인 절경지로 소문났다.

육지의 끝머리인 지형상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말 그대로 구름에 빠진 몰운대는 참 고즈넉한 산책 지다.

두송반도라 했던가, 둘레길만 한 시간여 걸어도 환상적인 자연의 경이로움에 젖어들게 된다.

먼저 동쪽으로 길을 잡으면 잡목과 어우러진 곰솔 숲을 지나 벼랑 아래 화손대 널펀펀한 갯바위에 닿는다.

이른 새벽부터 늦도록까지 여기저기 뭇 강태공들 낚싯대 드리우고 사색에 잠겨있는 별유천지다.

가파른 길 되짚어 올라 이번엔 전망터로 가다 보면 몰운대가 예전엔 섬이었다는 게 실감 난다.

잘록한 허리로 이어진 비탈길 걷노라면 도중에 자갈마당 비경이 시야에 들어오고 파도 소리 드높아진다.

내쳐 직진하면 전망터, 한때 군작전 지역으로 묶여있던 곳이라 초소로 사용하던 벙커가 마주 보인다.

그 위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망망대해, 물론 앞자락에 등대와 솔섬 쥐섬 모자섬 몇 개 섬 아기자기 띄워놓았다.

군말 필요 없는 압권인 풍광, 천혜의 비경이다.

반도의 끝에서 뒤돌아 오르막길 한참 걷다 보면 평탄한 대로가 드러나고 한옆에는 위엄찬 다대포객사.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3호인 객사를 지나 왼쪽으로 난 호젓한 숲으로 꺾어들자 남파랑길 표지가 우뚝 서있다.

마치 누비 바느질하듯 부산에서 남해안을 따라 촘촘 이어간 남파랑길, 한편 해파랑길은 부산 기점으로 동해안 따라

통일전망대까지 770km에 이른다.

구간구간 일부는 걸어봤으나 전체 섭렵하기엔 어느 곳도 엄두가 나서질 않지만 언젠가 제주 올레길만은 걸어볼 참이다.

scenario thinking이라던가, 우유가 담긴 항아리를 이고 우유를 팔기 위해 장터로 가던 아가씨 얘기가 떠오른다.

그 이솝우화처럼 달걀이 새끼양 되고 송아지가 되는 상상을 하던 소녀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우유를 쏟고 말았다지.

꿈의 나래 드높이 띄우다가 행여 그 짝이 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언뜻언뜻 소나무 사이로 드러나는 바다 빛깔이 희끄무레하다.

이번엔 구불텅 이어진 내리막길, 잡목 숲 끝나는 곳에 해무 가득한 다대포해수욕장이 길게 펼쳐졌다.

낙동강 하구 모래톱이 빚어낸 백합등이며 바다 건너 가덕도 연대봉이 아스라하게 마주 보인다.

나머지 고우니 생태길부터 장림포구까지는 무리 져 서걱대는 갈대 허옇게 머리 풀어헤친 만추에 걸어보기로 한다.



태양의 다비식, 숙연한 노을빛



낙동강 하구언, 다대포 해수욕장과 만나는 지점이다.

남해로부터 은비늘 번뜩이며 백마 갈기 휘날리며 고집스레 몰려오고 또 오는 파도.

파도가 쉼 없이 들이치며 보얗게 일구는 물보라로 김해 쪽에는 해무가 어린듯하다.

푸른 하늘 색조 시시각각 변하며 오묘하고 황홀한 퍼플에서 핑크로 금빛으로도 바뀐다.

여기는 일몰 명소로 잘 알려진 아미산 전망대 데크길.

삼복염천이라더니 데쳐댈 듯 푹푹 찌던 창천에 곱게 지는 노을.

지금 마악 장엄 낙조가 내리는 중이다.

태양의 다비식인가.

석양에 바다가 불붙고 있다.

유전지대에 번지는 불길처럼 맹렬하다.

겹겹의 물이랑에 난사되는 황금빛 혹은 각혈 같은 핏빛.

몰아의 한순간 전신만신 속속들이 불태우고 혼절해 버리는 격정이듯 겁나 두려운 빛무리.

진군하는 일단의 홍위군, 광기 같은 붉은 깃발에 속절없이 무장해제된 채 바다 산 강 하늘 모두 점령당하고 마는가.

천지가 온통 화염에 휩싸였다.

괄게 타오르는 장작불이다가, 마그마 폭포처럼 흘러내리다가, 거칠게 쏘아대는 화염방사기이다가, 한 깊은 여인이 울컥 토해내는 절규이다가.

영광의 순간이듯 찬연하다가, 분노의 눈빛처럼 활활 타다가, 황녀 드레스인 양 화려하다가, 마지막 몰아쉬는 숨처럼 처연스럽기 그지없는 낙조.

도요등, 백합등, 장자도, 을숙도, 저 멀리 가덕도...

서서히 쇠잔해 가는 빛의 자취, 곧 어둠의 베일이 그 모든 걸 부드러이 감싸 안으리라.

건너편 명지와 신항만의 불빛 점점이 살아난다.



고운 님 오소서, 고우니 길로


지하철 1호선 2번 출구로 나오면 곧장 바다가 보인다.

다대포해수욕장 오른쪽으로 고우니 생태길도 이어진다.

갈바람에 가을 감성 풀어헤치고 서걱대는 갈대숲에서 한 줄 시를 찾아보아도 좋으리니.

고운 님들 오셔서

푸른 바람 한껏 흠향해 보소서.

미로처럼 얽혀 있는 물길 따라서....

물가에 갈대 무성히 자라나 아예 숲을 이뤘다.

아직은 원숙한 베이지색으로 덜 익은 풋 갈대
해풍에 무심히 나부끼고 있다.



억새와 갈대는 둘 다 다년생 볏과 식물이다.

두 식물은 엄연히 다름에도 혼동하기 쉬운 이유, 둘 다 가냘픈 데다 비슷한 시기에 이삭꽃 핀다.

고우니 생태길과 을숙도에는 갈대가 무성해 가을 한철 아주 볼만하다.

이삭이 갈색을 띠는 갈대는 반수생 식물이라 습지나 강가 모래땅에서 자란다.

키는 3미터 정도로 꺽다리이며 줄기 속이 비어있어 바람 부는 대로 잘도 휜다.

뿌리는 굵고 퉁퉁해 여유가 넉넉해서인지 다른 잡초들을 뿌리 짬에 키우며 공존한다.

쑥부쟁이, 고들빼기, 동방사니, 강아지풀, 사초, 바랭이.... 사이좋게 더불어 살아간다.

반면 억새 이삭은 은색을 띠며 산등성이나 물가 언덕이라도 건조한 곳에 무리 지어 저희끼리 군락 이뤄 산다.

1~2미터 정도의 낮은 키에 잎 가장자리가 칼처럼 날카롭게 억세서 억새일까.

뿌리가 촘촘 얽혀있어 억새밭 근처에 다른 식물은 발도 못 붙이는데.

억척스러워 억새인지 뭉쳐야 산다며 우리끼리 끼리만, 기갈 센 잡초도 섣불리 끼어들지 못한다.

제주 산굼부리나 사자평 능선에서 하얗게 나부끼는 억새, 꽃말은 백발이라서 그런지 '은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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