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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3. 2024

주렴을 반쯤 열고

'태산준령 험한 고개 칡넝쿨 엉클어진 가시덤불 헤치고 불원천리 허위단심 그 님을 찾아왔건만…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끈끈하게 감겨오다 자지러드는 가락.

굽이굽이 재를 넘고 숨 가삐 흐느끼는 듯한 소리.

조였다 푸는 장단만으로도 구성진, 그러나 한을 토해내듯 한 정선아리랑이 흐른다.

은근한가 하면 사뭇 절규하듯 애간장 녹이고 구슬픈 듯하면서도 천연스러운 엇모리장단에 낭창거리면서 굽이치는 특유의 가락, 정선아리랑.​


사는 일이 문득 힘겹다 여겨질 때가 있다. 목에 찬 슬픔을 쏟아붓고 싶을 때가 있다.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허허함에 왠지 허기를 느낄 때가 있다.

하고자 하여도 수없이 옭아매는 제약에 발목 잡혀 질식할 듯 숨 막힐 때가 있다.

하여 바람이고 싶고 흐르는 구름이고 싶으며 얼레 벗어난 연이고 싶으며........

가끔 악몽에 시달릴 적도 있다. 황량한 모래벌판에서 쫓기며 달아나는 꿈.

아무리 기를 쓰고 달리려 해도 걸음이 옮겨지지 않으며 자꾸만 늪에 빨려 드는 듯한 무력감.

흥건히 땀에 젖은 채 가위눌려 허우적대는 애타도록 허망한 몸짓이 평소의 나였으니.


끝 모를 갈구 갈증 갈망. 조그만 몸 하나 무게를 한결 웃도는 탐심(貪心). 미완(未完)의 환상, 그 허명(虛名)에의 집착.

이 모든 걸 빈 껍질로 남기고 종내 나의 부화(孵化)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목마른 갈증을 부채질하는 혼탁한 욕망. 그로 인한 부질없는 안간힘만이 오기처럼 곧추선 채 먼 하늘에 닿아 있는 나.



하늘을 날고 싶다. 진정 구름이 되고 싶어진다. 무한히 자유로운 한 점 구름이 되고 싶은 것이다.

비록 덧없이 흔적조차 남김없이 짧은 순간에 스러져버릴 구름일지라도, 아~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

생활의 구속, 애증의 질곡마저 모르는 걸림 없는 자유를 꿈꿔본다.

누구나 저마다 지닌 한 생명 질 때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 그 본래면목으로 되돌아가는 것.

흙이 되고 물이 된 어느 날 홀연 바람 따라 하늘로 오르면 두둥실 구름이 될 수 있는 것을.


그동안을 기다리는 잠시의 생마저 때로는 눅눅히 장맛비에 젖은 양 못내 지루할 적이 있다.

또는 자의식의 반란, 그 회오리치는 혼란으로 멀미마저 느낄 적이 있다.

이룬 것 없고 지닌 것 없으며 내세워 자랑할 게 없기에 얼마나 비참해했던가.

혼자만 밑지는 삶을 사는 것 같아 억울해한 적도 많았다.

그럴수록 조급증이 나면서 이게 아닌데 싶어 헛손질도 숱하게 했다.

아무리 허세를 부려봐도 결국은 맞닥뜨리게 되는 본질적 한계 앞에 자꾸만 추레하니 주눅 들수록 자신에게 얼마나 화를 냈던가.


그뿐 아니다.

일상의 타성에 비끄려 매인 채 어떤 물결에 하릴없이 떠밀려 흐른다고 여겨질 적도 있다.

자신의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내 의지에 반해 그저 어영부영 따라가는 경우도 흔하다.

의사 분명히 손 내젓고 고개 꼿꼿이 세워 흔연히 털고 일어서지 못하는 어정쩡함엔들 또 얼마나 분노를 느꼈던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오......

그럴 때 나는 정선아리랑을 방 가득 방류시킨다.

하여 그 물결에 취해, 맺힌 가슴을 풀어본다.

안으로만 빗장 열린 채 탁 트이지 못한 성정으로 인한 중증(重症)의 병이며 켜켜이 앙금 진 한까지도.

고통과 슬픔과 절망이 핏빛 응어리로 가슴에 침전됨을 한이라 이르던가.

하긴 정(情)이 깊어야 한(恨)도 깊은 법.


내게도 연연한 정한에 뼈아픈 통한이 서렸는가 하면 초승달 같은 시린 원한도 한두 자락 있겠고 두고두고 사무치는 회한인들 왜 없으랴.

가슴속 이랑마다 걸 다른 한의 물살.


스스로도 갈피 잡을 수없이 이골 저골로 흐르는 속마음 읽어보려 나를 잠시 열어본다.

그러나 활짝 펼쳐 속속들이야 내보일 수 있을까. 주렴을 반쯤 열 듯 그렇게만 연다.

외형은 유순한 표정을 지닌 개성 없이 지극히 평범한 한국인.

거기에 예민한 듯 깡마른 채 자그마한 서른일곱의 여자.

그리고 ㅇㅇ 엄마, ㅇㅇ 엄마라 불리는 시정의 범속한 아낙이다.


말수 적고 고집이나 주장을 내세움도 적으며
도무지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이거나 개방적이질 못한 여자.

본디 타고나길 정(淨)을 좋아하고 정(靜)을 아끼며 정(情)에 무른 품성이다 보니
이지적이기보다 감성에 쓸리는 나란 여자.

그러나 고요 속의 격동, 안식 속의 변화를 꿈꾸는 여자.

루이제 린저의 니나를 사랑하고 서머셋 모옴의 스트릭랜드를 지독히 사모하는 모순투성이.


 아 아, 나는 누구인가. 곧잘 자기류에 빠져 우쭐대다가 자가당착에 걸려드는 나는 누구인가.

남 못잖게 자존의 벽은 높고 자긍의 담은 두터우나, 외호(外護) 해 줄 직위도 부도 명예도 갖춘 바 없다 보니 늘 허기가 지는 걸까. 이리 고통받고 아픔 느끼는 걸까.

여전히 굽이쳐 흐르는 정선아리랑.

대금이며 아쟁, 가야금까지 한데 얼려 빚어내는 한 서린 가락에 흠씬 취한 채 재를 넘고 어느 성황당쯤에 널브러져 목에 찬 탄식과 설움 말끔히 쏟아 비우면 가슴 한결 후련해지리니.


카타르시스. 그렇다.

정선아리랑은 맺힌 응어리를 풀고 혼탁해진 마음을 맑혀주는 정화제인 것을.

해서 세례 받은 영혼이듯 나는 드디어 빛과 만나고 밝음과 손잡으리. - 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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