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딸내미가 아빠와 엄마 꺼라며 보약을 각각 지어왔다. 슬로쿠커에 약을 달이려고 약제를 펴보니 정갈한 녹용이 첫눈에 띄었다. 보혈 강장작용을 하는 보약의 대표 격인 녹용이다. 얼른 내 약제도 펴봤다. 굵은 인삼은 들어있으나 아무리 뒤적여도 녹용은 쪼가리조차 없었다. 딸내미한테 전화를 걸었다. 왜 내 약제엔 녹용이 안 들었냐고 따지듯 물어봤다. 아빠 체질은 인삼이 맞지 않고 엄마 체질은 녹용이 안 받으니 어쩔 수 없네요, 간단히 답했다. 별 걸 다 샘내요, 란 후렴구가 따랐다.
동의보감에 삼의 효능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오장의 기가 부족한 데에 쓴다. 정신과 혼백을 안정시키며 눈을 밝게 하며, 심心을 열어 지혜를 열고 허손을 치료한다. 곽란으로 구토하고 딸꾹질하는 것을 멎게 하고 담을 삭인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체질에 따라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삼이다. 예컨대 소음인인 내 경우는 삼이 맞고 녹용은 안 받지만 열이 많은 남편은 반대로 녹용이 맞고 삼은 전혀 아니다.
태어나서 처음, 우연찮게 병원에 입원까지 하며 야단을 피운 바람에 현저히 떨어진 기력. 퇴원하자 아들이 장뇌삼을 구해 왔다. 보자기를 펼치니 스티로폼 상자에 든 삼은 이끼에 싸인채 갓 캔 듯 싱싱했다. 그간 며칠 투입된 주사제 기운이 스러지길 기다리고 소식으로 가벼이 위를 비운 청정상태에서 삼을 복용하기로 했다. 흡수율을 최대치로 높이기 위해서다. 냉장보관하고는 있지만 그럭저럭 며칠 된 상태라 복용을 어서 시작해야 했다. 선물용 굵은 생삼은 먹어봤으나 처음 접하는 귀한 장뇌삼이라 딸내미한테 자문부터 구하고도 상세한 복용방법을 검색해 봤다.
가장 좋은 복용법은 이른 아침 공복에 맑은 정신으로 한 뿌리씩 생식하는 게 효과 최고란다. 흐르는 물에 정하게 씻은 뒤 생수로 전체를 휑궈 잎 줄기 잔뿌리까지 생으로 꼭꼭 매매 씹어 먹었다. 단, 뇌두 부분은 따로 떼어 두었다가 차로 이용하기로 했다. 복용 전후 금주해야 하며 녹두, 미역, 무, 다시마, 콩으로 만든 음식, 커피, 기름진 육류, 밀가루, 알칼리성 식품을 삼가라는 대로 충실히 따랐다. 운동을 심하게 한다거나 목욕도 하지 말고 과로나 스트레스받는 일을 피하라고 했다. 삼을 생으로 먹기가 거북해 달일 경우, 금속과 닿으면 약성이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절대 금속제는 피하고 믹서에 갈아야 하는 경우 이 점 참작해야 된단다.
인삼의 열 배, 홍삼보다 다섯 배 뛰어난 약리작용을 한다는 장뇌삼이다. 삼 씨를 깊은 산에 파종하여 산삼에 가깝게 산에서 자연상태로 키운 삼이 장뇌삼이다. 년수가 오래되어도 몸통이 크지 않고 실뿌리도 무성하지 않다. 따라서 뇌두의 길이와 몸통과 뿌리눈으로 햇수를 판단한다고. 흥미를 갖고 잘 살펴보니 7~8년생은 됨직하고 스물네 뿌리나 된다. 미루어 짐작컨대 만만찮은 가격대라 약효 제대로 보도록 지성껏 먹어야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혼자 복용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 반은 술을 담갔으니, 12일 간만 먹으면 된다. 첫 시식날,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정좌하고 삼잎부터 천천히 오래오래 씹었다. 되게 쓰기보다는 쌉싸름하면서 풀향이 났고 줄기 뿌리를 계속 씹을수록 단맛이 돌았으며 가만 음미해 보니 입안에 삼 특유의 진한 향이 오래 감돌았다.
심산 고지 거친 야생환경에서 사계절을 몇 차례 견뎌낸 뒤 만나게 되는 장뇌삼. 100개의 씨를 뿌리고 5년 지나면 자연이라는 엄혹한 환경에서 50%만 살아남게 된다는 장뇌삼이다. 연약한 싹이 벌레, 병충해, 바이러스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면역물질을 스스로 합성하여 만들어낸다고 한다.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쭈글쭈글한 장뇌삼은 5년생 무게가 5g 밖에 안될 정도로 작다. 자연이 키워낸 신비의 약초 장뇌삼은 여러 가지 유효성분 중 약리작용을 하는 것은 사포닌이다. Saponin은 다양한 식물 종에 존재하는 양친매성 배당체(amphipathic glycoside)로서, 특히 물과 섞었을 때 비누와 같이 거품을 지속적으로 내는 특성을 나타내는 계면활성제란다. 어원은 라틴어의 Sapona(비누)에서 유래되었다. 사포닌이 인체에 들어가 각 기관과 혈관을 비누로 씻어 준다고 생각하면 쉽게 사포닌의 효능이 이해될 터다.
인삼에 많이 들어 있다고 알려진 사포닌은 양배추, 당근, 셀러리, 파슬리 등의 미나리과 식물, 감초, 생강, 마늘 등에도 들어있다. 특히 대두는 가장 많은 사포닌을 내포하고 있는데,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장점막에 접촉하는 시간을 줄여주며 동시에 나쁜 물질을 흡착해서 독성을 떨어뜨린다. 이것은 사포닌의 거품을 내는 성질이 장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메주콩을 씻을 때도 북적거릴 정도로 거품이 많이 나는 이유였다. 식물에서 사포닌은 주로 곰팡이나 다른 미생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는 역할을 수행한단다. 콜레스테롤 흡수를 저해하고 배출을 돕는다. 대부분의 사포닌은 쓰고 얼얼한 맛을 가지고 있어 포유류가 섭취 시 위장 자극이 일어날 수 있다. 콩, 팥으로부터 추출된 사포닌은 피부미용 또는 육모제(모발성장촉진제) 등으로도 이용되고 있다고.
사포닌은 식물계에 널리 분포된 생리활성물질로, 삼의 사포닌은 특이한 약리효능을 가진 인삼(Jingseng) 배당체(glycoside)란 의미로 진세노사이드라 부른다. 진세노사이드는 심혈관, 소화기, 호흡기 건강에 도움을 주며 면역력 증강, 조혈작용, 순환계 개선, 간기능 활성화, 항염증 작용, 혈소판 응집억제 및 항혈전 작용, 중추신경 기능 조절 및 스트레스 저항력을 높여 정신 안정 작용을 한다.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 분비 촉진 작용 등의 효과도 나타낸다. 또한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이 들어있어서 항산화 효과를 보이며 활성산소를 없애주고 폐 기능을 도우며 진액을 생성한다. 삼은 한방에서는 보혈강장제 및 원기회복을 돕는 약제로 사용된다.
장뇌삼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복용 후 일어나는 명현반응이 은근 마음에 걸렸다. 사십 대 때의 일로 단학수련을 하다가 혼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6개월 수강료를 내고 두 달쯤 기수련을 받던 중 옴싹달싹할 수 없을 정도의 전신마비 증세가 왔던 것. 사범은 영이 맑으면 자기 정화가 빨리 온다며 천지기운을 받았으니 축하한다고까지 했으나 접신하 듯한 진동은 겁을 더럭 나게 했다. 이 무렵 사이비 냄새도 짙게 느껴져 그 즉시 집어치운 수련이다. 그처럼 삼을 먹고 나타날 수도 있다는 명현현상(호전현상)은 여러 종류다. 체질에 따라 열이 나거나 열꽃이 피는 경우, 깊은 잠에 빠지거나 반대로 잠이 전혀 오지 않는 경우,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우며 몸살기가 발생하는 등등. 그러나 몸이 반응하여 약효가 나타나는 그 현상은 두 번째 복용한 현재까지 특이소견을 나타내지 않았다. 다만 살짝 낮잠은 잤다.
기력 회복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는 장뇌삼은 요즘 수요가 늘면서 재배자도 대폭 늘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온라인쇼핑몰에서는 중국산도 흔히 유통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보통 5년 근 이상은 돼야 상품 가치가 있는 정품 장뇌삼은 임업 및 산촌진흥촉진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자연성과 청정성이 보장되도록 관리되고 있다. 재배 전 토양이 농약에 오염되지 않았는지 인증받아야 하고, 판매 전까지 주기적으로 농약 성분이나 중금속 검출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산림청에서 산지농가의 소득증대를 위한 특화작물로 권장하면서 전국 산지에 장뇌삼 재배 붐이 일고 있다니 가격 안정과 상품에 대한 신뢰성은 확보될 거라 여겨진다. 특히 농산물과 IT를 접목한 첨단인증시스템을 도입해 품질보증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삼은 여전히 한국인에겐 하늘이 내린 묘약이니까.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있다. 실제 약효가 없는 가짜 약을 먹어도 환자가 병이 나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복용하면 진짜로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긍정의 힘. 어려서 배가 아플 적에 엄마손은 약손이라는 주문 같은 가락을 읊으며 엄마가 손바닥으로 배를 문대주면 아프던 배가 스르르 가라앉아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어떤 증세이건 딸내미가 조제해 주는 한약이라면 무조건 낫는다는 신념이 확고부동하다. 그처럼 내 경우 전적으로 동양의학을 신뢰하는 데다 체질에도 맞는 삼이라 약효는 틀림없이 최상급 천종 산삼 못지않은 효과를 나타내리라 믿는다. 여태껏 날다시피 가벼이 온데 걸어 다니던 그 기운 더 극대화되어 앞으로 어쩌면 도인처럼 축지법이라도 쓰게 될지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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