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오일장 놀멍쉬멍

by 무량화

서귀포에서 일년살이를 해보겠다며 약간의 짐을 끌고 한라산을 넘는 도중이었다.


공항에서 탄 택시 기사 양반이 제주 즐기기 꿀팁이라며 알려준 향토오일장 정보.

서귀포에선 4일 9일, 이런 식으로 한 달에 다섯 번 장이 서는데 없는 게 없다고 했다.

장터가 매우 걸판져서 구경할만하다 했기에 4일 정오 무렵 집을 나섰다.

시골 장날 엿장수의 떠들썩한 가위춤을 떠올리며 내심 우시장 앞 국밥집의 김 펄펄 나는 가마솥 정경을 기대했다.

서귀포 시내 도심 속 장터이므로 팔러 나온 소 울음이야 들릴 리 없지만 향토색 짙은 제주만의 그 무엇이 있으리라 했다.

도착해 보니 여느 시골장이나 마찬가지로 현대화시킨 큰 장마당인데 서귀포는 역시 서귀포였다.

입구 과일전이 온통 샛노랗다시피 할 정도로 감귤이 지천이었다.

뉴저지 살 때는 플로리다 오렌지를, 서부로 옮겨와서는 캘리포니아 오렌지를 무진 사 날랐다.

원래 과일을 즐기는 식성, 과일 중에도 가장 좋아하는 오렌지이고 귤인데 마침 귤 산지에 왔으므로 박스째 샀다.

감물 염색 명성이 높으니 응당 감도 흔해빠져 제철 맞은 홍시와 단감이 무더기로 부려져 있었다.

귤도 사고 홍시도 사고 사과도 사고 방울토마토도 사고 바나나도 샀다.

짐 정리하는 동안 마켓에 가질 않아 과일이 고팠던 차, 대책 없이 과용을 해 낑낑대며 들고 오느라 쌩고생했다.

왁자한 난장터라 야채전 널찍하고 옷가게도 다양했으며 바닷가 어시장답게 열기와 은갈치가 갓 잡은 듯 신선했다.

고구마도 눈길 가고 갓과 쪽파 싱싱해 사고 싶었으나 무게 겁나 접어버렸다.

오일장에는 식당도 주르름 몰려있었고 그밖에 호떡집 떡볶이집에 반찬가게와 젓갈집도 끼어있었다.



멜팅포트니 샐러드볼이라는 다문화 사회 미국에서 이십 년 살았으니 어지간한 외국어는 거의 다 접해봤다.

같은 상가 네일가게 주인은 태국인이고 피자집주인은 이탈리안, 태닝 집주인은 폴리쉬였다.

꽃집 하는 동안 파트타임으로 일을 도운 똘마는 인도 유학까지 한 네팔인이었다.

스페니시 한마디 못해도 페루며 스페인 여행도 무리 없이 해냈다.

하건만 정작 같은 한국인, 똑같이 한글로 교육받았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제주말이 다수다.


신선한 채소와 물 좋은 생선을 구경하는데 맛조수 다게, 라며 다가와 권하는 상인.


전후 맥락으로 무슨 말인지 대충 알듯 하다.


그러나 억양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 전라도인 듯 경상도인 듯 이북내기인 듯, 나이 든 축과는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근자 들어 제주도민 반은 외지인이라는 데도 불구하고 장꾼 할망은 몸에 밴 제주 방언을 천연스레 쓴다.


재차 묻거나 딴 사람 도움으로 번역하듯 해석해 주는 말을 듣고서야 뜻이 통해 아하~


얼매 사쿠 꽈? 얼마나 살 거냐는데 뭔 소린지 몰라 고개 갸웃하자 옆 사람이 통역해 줬다.


고만이 생각호멍 들으민 조금씩 알아짐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우리말을 생각하며 들어야 한다니.


기메 마씸~ 글쎄 말입니다, 애매하게 웃을 따름.


식당 앞에 줄지어선 손님을 보나 따나 이름난 맛집인 모양인데 보말 칼국수는 또 뭔고?


검색 결과 바다 고동을 넣어 끓인 칼국수, 육지의 바지락칼국수 텍이겠다.


그 외에도 거리를 지나다 보면 식당에 내걸린 음식 메뉴 중 난생처음 듣고 보는 게 부지기수였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제주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이곳만의 향토 특산물이 된 별식 중 하나가 오메기떡이다.


오메기떡은 '쌀가공식품 산업대전'에서 장관상을 수상하며 TV 프로에 뜨자 서서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만드는 방법도 단순해 차조가루와 찹쌀가루에 쑥가루를 첨가시켜 익반죽 한 다음 호두만큼 떼어 둥글게 만든다.


송편 속을 넣듯 오목하게 빚어 팥이나 녹두 소를 넣고 잘 오므린 후 끓는 물에 익혀서 찬물에 헹궈낸 뒤 물기를 빼준다.


여기에 팥고물, 콩고물, 견과류, 흑임자 등을 묻혀내면 떡이 완성된다.


똣똣혼게 먹기 똑 좋수다, 광고하며 달콤하고 쫄깃한 식감을 즐기나 본데 개인적 견해는?


소가 너무 달아 먹고 난 뒤 오래 입안에 남는 감미가 좀... 이처럼 입맛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다. 라고 쓴 이 포스팅은 어언 네 해 전 얘기다.


며칠 전 서귀포 향토오일장을 찾았던 건 엿기름과 기장쌀을 사기 위해서였다.


펄펄 끓는 날씨라도 바람이 설렁설렁 불어대 생각만큼 무덥진 않았다.


시원하게 살얼음진 식혜와 무척 차지다는 기장밥을 지어 입맛 돋워 보려고 나선 걸음이다.

기장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건 근자의 일이다.


종달리 쪽 들판길을 걷다가 처음 보는 식물을 만났다.


한밭자리 가득 푸르게 넘실거리며 자그마한 이삭이 흔들대는 데 뭔지 알 수 없었다.


벼 이삭 비슷하나 이파리는 벼가 아니고, 밭에 심었다면 분명 곡물일텐데 조나 수수도 아닌 이 낯선 식물의 정체는?


마침 트랙터를 모는 농부가 있기에 물어봤더니 기장이라고 했다.


검색을 해보니 기장은 벼과의 한해살이 식물로 메마른 땅에서도 잘 견디며 속성으로 자라기에 구황식물 역할을 한다고


좁쌀 비슷하게 생긴 노르스름한 곡물인데 좁쌀보다 월등 굵다랗다고 했다.


찰기가 있어 밥맛을 좋게 하는 데다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으며 곡류이면서 단백질 지방 마그네슘 철분 비타민 A 같은 영양소가 들어있다는 기장이다.


비장과 폐 기능을 향상시키며 뼈건강에 도움을 준대서 쌀에 섞어보기로 했던 터라, 특히 기장에 꽂혀서 폭염경보 무시하고 찾은 오일장이다.


소소한 식품은 가까운 올레시장에 실실 쓰레빠 끌고 가서 사 오나 촌 할망이 손수 가꾼 기장이나 직접 띄운 엿기름 같은 건 오일장이 미덥다.


식혜를 만들 엿기름도 사고 기장도 한 됫박 샀다.


필요한 걸 구매한 다음 설렁설렁 장구경을 했다.


계절 다른만치 절기에 따른 품목만 바뀌었을 뿐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풍경이다


사 년 전이나 변함없이 과일전 어물전 채소전 옷가게 그릇가게....


종묘상 건어물상 약제상 신발전도 포목전도 그대로다.


요샌 이마트 홈플러스 등이 대폭 세일을 자주 해서 굳이 재래시장 올 일이 없었는데, 온 김에 한창 제철인 천도복숭아도 한 소쿠리 사들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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