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May 06. 2024

깡촌을 지키는 집

카미노 스토리

카미노 길가에서 퇴락할 대로 퇴락한 스페인 시골마을을 자주 만났다.

중세인들은 지상에 세운 신의 집인 교회만은 더할 나위 없이 웅장하고 화려하게 세웠다.

외침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성곽은 높다랗고 견고해서 보기만 해도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살 집은 가족들 오손도손 모여 편히 쉴 수 있으며 추위와 비바람 막아주면 그로 족했다.


깡촌 오지 주민들은 모든 재료를 자연에서 빌려와 요긴히 쓰다가 때가 차면 다시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게 터도 최소, 높이도 나지막, 욕심부리지 않고 소박한 집을 지었다.

목재도 돌짝도 황토도 거스름 없이 자연의 일부로 순순히 돌아가기 수월하도록.

그렇게 돌 귀 맞춰 벽 쌓아 올리고 공간 구분해서 문 내고 굴뚝 세우면 집이었다.


미희 시인의 <집 한 채에 >가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그런 집.


"작은 집

한 채뿐인데

많이도 산다


암탉과 병아리 일곱 마리, 까만 염소 세 마리, 누렁이, 돼지 다섯 마리,

앵두나무 두 그루, 대추나무, 살구나무, 석류나무, 감나무 두 그루,

모과나무, 맨드라미, 분꽃, 백일홍, 수국, 굼벵이, 두꺼비. 지킴이 뱀, 생쥐, 굴뚝새 ......

다 모여 살아도

시골 할아버지네 집엔

수십 년째

다투는 소리 한 번 없다"


아버지는 그처럼 식구들 모여 두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집을 손수 지었다.

그 보금자리에서 어머니는 옷을 짓고 부엌에 나가 밥을 지었다.

현대는 대량으로 찍어내듯 집도 만들어내고 옷도 만들어내고 밥도 만들어낸다.

포토마린을 지나 곤자르에 이르는 동안 물기 뚝뚝 듣는 안개 자욱한 길 걸으며 만나 본 돌집은 참 마음 따스하게 했다.

식솔들 위해 돌멩이 하나조차도 성심 기울여 정성으로 쌓아 올려 지은 집이었다.

비록 낡고 낡아 허물어져가고 있으나 한때 살붙이들 모여 온기 나누던 포근한 집.

삭아 스러져도 끝내 그 터 떠나지 못하는 성주신 깃든 듯이 카미노 길가 벽촌 지키는 집.

중세 시대 화석처럼 남아있는 곤자르란 오래된 마을의 작은 집들 퇴락한 채로 정겨운 옛 얘기 풀어놓았다.

작가의 이전글 조화를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