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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6. 2024

하귤꽃 핀 약천사

귤꽃


인지 약천사(藥泉寺)는 법주사 팔상전을 떠올리게 하는 절이다.


해묵어 낡고 작은 시골 절만 보다가 여학교 때 속리산으로 수학여행을 가 최초로 보았던 대찰이 법주사여서일까.


서귀포 대포동에 위치한 약천사는 서귀포 푸른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자리 잡았다.


사찰이고 성당이고 교회당 등 종교 시설물이 어마 무작스러운 규모로 대형화 추세, 이 점 모두들 두 손 높이 치켜들고 환호할까?

거룩한 신의 이름 팔아가며 종교를 오염시키는 행위라고 크게 꾸짖은 마태복음 말씀처럼 일찍이 성전 정화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동양 최대 규모라는 법당이 주는 위풍당당한 이미지를 그나마 약간은 희석시켜 주는 건 겸손한 단청 빛깔이다.


제주도에 와서 눈에 설은 게 사찰의 건축 형태였다.

우리네 전통 불교건축 양식이 아니라 중국풍인 듯, 왜색이듯 지붕선도 낯설고 단청 심지어 검으칙칙한 절도 보았다.

그래도 약천사는 전체적인 느낌이 제주에서 몇 안 되는 고유의 한국절다운 분위기를 보여줘 반갑기까지 했다.

조계종단 소속의 대구 은해사 말사라는 점도 친근감이 들었다.

70년대 대구에 살며 팔공산 인근 산사 순례를 다닌, 한때 신실한 불자였기에 조촐한 은해사도 자주 찾았던 터.

지금은 어찌 변했는지 모르나 당시 동화사와 더불어 팔공산의 대표적 고찰이었다.

고즈넉한 절집이었던 수덕사의 반드르르한 변모에 대실망을 했기에 하는 말이다.

현대화되어 좋은 것이 있는 반면 옛 그대로 잘 보존하는 게 백배 나은  것도 있다.



유채꽃과 벚꽃 명소로 알려졌음에도 봄 한철을 피해 귤꽃 필 즈음에 와보리라 내심 꼬불쳐둔 약천사다.

지난번 도반과 찾았을 때 약천사는 새파란 동천 아래 노란색 하귤이 풍선처럼 두둥실 떠 있었다.

그랬다.

하귤은 나무에 활짝 핀 또 다른 꽃송이, Blossom이었다.

과일이 꽃이 될 수도 있다니 그 정경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더구나 하귤은 이름대로 여름귤이라 귤꽃이 필 때까지도 당연히 달려있노라 했다.

새 열매를 맺기 위한 꽃이 피어남에도 묵은 귤이 정정하게 달려있다니, 그 진기한 모습을 보러 와야지 별렀던 터다.

초파일 봉축 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는 약천사에는 울긋불긋 꽃등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약천사 하귤 여전히 놋노란데 동시에 정말로 새하얀 귤꽃 만개, 귤밭에 귤꽃 조랑조랑 피어나 그 향기 넘치고 또 넘쳐난다.


그리하여 서귀포에선 누구나 귤꽃 향 테라피를 받을 수 있다는.


마구 스며드는 귤꽃 향이 숫제 샤워를 시켜주니까.


굳이 후각을 풀가동하지 않아도, 분무기로 뿜듯 온데 귤꽃 내음 흥건하다.
 


현무암 동굴 안에 차려진 굴 법당/사철 마르지 않는 약수가 솟는다는 약천사 약수 줄기 코로나가 일상이 된 이제는 흐를까

약천사 초입에 높이 솟은 기념탑에 대해 지난번엔 언급지 않았으니 짧게 첨언해야겠다.

이 탑은 '태평양전쟁 희생자 위령탑'이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선대들은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총알받이로 강제 동원되었다.

군인 군속 노무자 정신대로 끌려가 이름 모를 낯선 타국 전선에서 유명을 달리한 조선인들.

국권을 잃는 등 국가가 무능해 제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면 이리 억울한 꼴을 당한다.

나라가 약체가 되면 이웃한 강국의 밥이 되기 십상이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으로 우크라이나가 몇 년째 전쟁의 포화 속에서 허덕인다.

육이오 세대의 기우일 수도 있고 나이 든 이의 지나친 노파심일 수도 있으나 항차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라고 이 일이 강 건너 불일 수 있을까.


단순한 풍치 위주의 즐기는 관광에서 진일보한 다크 투어리즘이 때마침 각광받는 여행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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