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백주년 기념에 앞서
1945년 8월 15일에 일제에서 벗어나고 1948년 8월 15일에는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입니다.
광복절에 앞서 먼저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수립, 만방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 성립을 선포한 역사적 사실부터 얘기해야겠습니다.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은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했고, 1920년 12월 그는 대통령에 취임했지요.
기미년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나라의 독립에 대한 민족적 욕구는 크게 확대됐는데요.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들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 덕에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이나 임정을 꾸린 거지요.
3·1 정신을 계승해 나라의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중국 상해에서 수립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는 지대합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일본의 감시와 탄압이 심했으므로 국외에 근거지를 둘 수밖에 없었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겨레가 나라를 잃은 지 9년 만에 나라밖에 세운 망명정부로 국민을 주인으로 하고 의회를 중심으로 한다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 공화 정부입니다.
또 그 힘을 바탕으로 하여 윤봉길, 이봉창 의사들이 벌인 의열 투쟁과 함께 광복군 활등 등 쉼 없는 항일전을 전개하므로 한민족의 건재를 세계에 알렸던 것입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김규식, 안창호 선생들을 중심으로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임시로 조직된 정부이지만 광복 때까지 항일 민족 운동의 중심 기관이었습니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를 골간으로 한 임시헌장을 채택한 뒤 선거를 통해 국무원을 구성했습니다.
행정수반인 국무총리에 이승만을 추대하고 내무총장에 안창호, 외무총장에 김규식, 군무총장에 이동휘, 재무총장에 최재형, 법무총장에 이시영, 교통총장에 문창범 등 6부의 총장을 임명한 뒤 4월 13일 정부수립을 선포하였지요.
한국인으로는 처음 1905년 2월 조지워싱턴 대학교(George Washington University)에 입학해 학사를, 이어서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에서 석사를(1910년 3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1910년 7월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승만.
1905년 1월 워싱턴포스트지와 기자회견을 열어 일제의 한국 침략을 폭로했던 그였지요.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Brooklyn Daily Eagle)지와 8월 4일에 나눈 장문의 대담 기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we don't like to be controlled by any nation or race. 우리는 어떠한 국가나 민족에게도 지배받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한 인물에 대한 공과나 호, 불호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특히 큰 인물이라면 먼 훗날 역사에 의해 평가되는 게 맞겠지요.
다만 이승만대통령의 돋보이는 업적인 농지 개혁, 신탁통치 반대 운동, 반공포로 석방,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평화선을 선포하여 독도를 수호한 점 등은 인정받아 마땅하지 않나요.
당시 역사 역대기를 살펴볼까요.
1919년은 일제에 항거, 자주독립을 외친 삼일운동(3.1)이 일어난 해이자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4.11) 및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4.13)한 해이고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5.10)한 해였습니다.
대한인의 애국충정을 만방에 알린 의거였던 이봉창 의사가 일본왕에게 폭탄을 투척(1.8)하고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4.29)는 한참 후인 1932년에 있었으니 햇수로 35년간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다 숨졌겠습니까.
1945년에 일제의 패망 선언으로 한반도 해방(8.15)이 이뤄지자 소련군이 평양을 점령(8.24)하며 38도선으로 국토가 분단(9.2)되었지요.
1948년에는 대한민국 단독정부가 수립(8.15)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북한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9.9)되지요.
그로써 온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마는 육이오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이 잉태됩니다.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는 헌법 전문처럼 곧 대한민국의 모태가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인 것입니다.
국권 회복과 독립을 위해 귀한 생명을 조국제단에 바친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함을 우리 모두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당시 우리 선열들은 자주독립을 위해 수없이 피를 흘렸습니다.
상해에서 만든 중국영화이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습니다.
1942년 일제 치하의 중국 상해를 배경으로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는 첩보영화인 <바람의 소리>.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악독할 수 있는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백인들이 벌인 인디언 참극 같은 무자비한 살상이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났었지요.
우리 선열들이 그 참담함을 겼었음에 폭력 내지는 전쟁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잊는 자들은 그것을 되풀이하게 마련이라 했습니다,
大韓民國臨時政府成立祝賀文/대한민국임시정부성립 축하문
十年의 노예生活을 脫하야
今日에 다시 獨立大韓의 國民이 되엿도다
10년의 노예생활을 벗어나
오늘에 다시 독립대한의 국민이 되었도다
今에 李承晩博士 大統領으로 選擧되고
國務總理 李東暉氏 以下 平素我國民의
崇仰하던 指導者로 統一內閣이 成立되도다
지금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국무총리 이동휘 씨 이하 평소 국민이
숭앙하던 지도자로 통일 내각이 성립되도다
我國民은 다시 異民族의 노예가 아니오
또한 다시 腐敗한 專制政府의 노예도 아니오
獨立한 民主國의 自由民이라 우리 歡喜를 무엇으로 表하랴
우리 국민은 다시 다른 민족의 노예가 아니요
또한 다시 부패한 전제정부의 노예도 아니요
독립한 민주국의 자유민이라 우리 환희를 무엇으로 표하랴
三千里 大韓江山에 太極旗를 날리고
二千萬衆의 聲을 合하야 萬歲를 부르리라
삼천리 대한강산에 태극기를 날리고
이천만 민중의 함성을 합하여 만세를 부르리라
오직 神聖한 國土 아직 敵의 占領下에 在하니
二千萬 自由民아 起하야 自由의 戰을 戰할지어다
오직 신성한 국토가 아직 적의 점령하에 있으니
이천만 자유민아! 일어나 자유의 전쟁을 벌일지어다
大韓民國 元年 十月 三十一日
大韓民族 代表
https://youtu.be/ebv5pvoBmDg?si=FSrBLtntEpXCSk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