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육 도로와 이어지는 중산간, 선덕사 앞에서 차를 내렸다.
지난해, 고살리 숲길을 걷기 앞서 선덕사에 들렀던 적이 있다.
당시는 시간 관계상 선돌 선원과 효명사까지는 가질 못했다.
연일 33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는지라 그늘 짙은 숲길을 자주 찾게 되는 요즘.
선덕사로 해서 이참에 효명사도 가보고 정갈한 선돌선원도 슬슬 산책 삼아 다녀오기로 했다.
이런 날씨라면 숨이 턱턱 막히는 산행이나 해 쨍쨍한 바닷가는 절로 손사래 치게 된다.
녹음 짙푸른 숲 속이 그래서 최고의 선택지일 수 있다.
'한라산선돌선덕사'란 현판이 청기와를 인 일주문 위에서 반긴다.
그 뒤로 약병을 한 손에 받쳐 든 약사여래상 자애로운 미소 살푼 머금었다.
선덕사는 여기서 십여 분 포장도로 걸어가야 그제사 나타난다.
푹푹 찌다가도 느닷없이 소나기가 내려서인지 숲은 습습하게 젖어있다.
건강하게 우거진 성하의 숲을 사진에 담으며 한가로이 걷는데 손가락이 따끔하다.
새카만 산모기가 엄지손가락에 딱 붙어있다.
빨대를 피부 깊숙이 꽂고 맛난 식사를 하는 중이라 손을 털어대도 아랑곳 않는다.
절에 간다고 살생을 저지르지 않을 줄 아니? 살생유택이라 배웠다, 어흠!
탁! 손바닥으로 냅다 후려친다.
너무 과하게 폭식을 해서 몸이 무거워졌던가, 날래게 피하지도 못하고 모기는 선명한 피 속에 납작 뭉그러져 있다.
손가락만이 아니다.
여기저기가 가려워진다.
노출된 부위라면 목이고 팔이고 계속 움직이는 다리까지 모기의 무차별 공격 대상이 돼버린다.
작디작은 모기가 먹으면 얼마나 먹으랴, 짐짓 초연할 법도 한데.
보살 같은 마음으로 보시까지야 아니지만 피 한 방울 정도는 나눠줄 만도 하나 후유증이 고약스럽기 그지없다.
산모기에 물리면 금방 벌겋게 부풀어 오르면서 오지게 가려워 체면 불고하고 긁어대기 마련.
바짝 열기가 뻗치며 땀까지 나기 시작하면 점점 가려움증 심해만 간다.
열두 대문 거쳐야 들어가는 구중궁궐처럼 대문 없는 문이 여러 개, 사천왕문 근처는 조경수와 풀이 뒤엉켜 인근이 모기 소굴이다.
산에 가면서 해충기피제를 챙기지 않은 내 불찰, 도대체 절식구들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다.
재빨리 선덕사 경내로 들어선다.
그래도 마당이 넓고 탁 트여 모기가 달라붙진 않는다.
모기와의 전쟁통에 건성으로 휘리릭 절 한바퀴를 돈 다음 대적광전에 올라 겨우 삼배로 예를 차렸다.
뒤편에 자리 잡은 웅진전, 삼성각은 문이 닫혀있기도 하지만 잡초 키대로 자라 후딱 지나쳤다.
그리곤 후다닥 층계 내려와 뒤도 안 돌아보고 숲길 빠져나왔다.
당연히 효명사도 그냥 패스, 선돌선원도 날씨 선선해지는 단풍철에 찾아보기로 훗날을 기약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에 숨은 한라산 쪽에서 비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비 올듯한 날씨라서 모기가 더 극성부렸던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녀석 성정 한번 독하기도 하다.
작년에 고살리 숲길 걷다가 물린 모기 흉터가 정강이에 여태 남아있는데, 그땐 청바지 차림인데도 모기한테 물렸다.
한라산 선돌마을 선덕사 오가며 산모기와 벌인 전쟁에서 깨끗이 투항하기로.
선덕사 오가며 실컷 모기에게 뜯기고 난 뒤라 곶자왈 같은 숲은 겁이 나 여름에 더는 못 갈 거 같다.
피톤치드와 테르펜 같은 피토 케미컬 성분은 해충을 쫓아주는 효과가 있어서 비자림이나 치유의 숲은 성가신 모기가 없다.
여름이 끝날 때까지 당분간은 침엽수림만 찾게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