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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5. 2024

미궁 같은 숲 터널 지나면

카미노 스토리

카미노 걸으며 하늘나라 가는 길이 이러하지 않을까 누차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개 젖은 목장에서 풀을 뜯는 양 떼, 끝 모르게 펼쳐져 잔 바람에 푸른 물결 일렁이는 밀밭.

먼 데서 뿔종다리 노래 들리는 평화로운 전원.

재잘거리며 흐르는 맑은 시냇가의 야생화 무리.

한낮의 나른한 닭소리와 딸랑대는 소의 워낭소리 그리고 풀벌레 소리가 따르는 길.

때론 물론 힘도 든다.

통증도 겪는다.

지루할 적도 있다.

그럼에도 다음엔 무엇이 기다릴까 마음 줄곧 들떠있었다.

임사체험(臨死體驗, NDE: Near Death Experience)을 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러했다.

어두운 터널 지나서 황홀한 빛을 만나게 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평온한 느낌이 들며 안도감에 젖어든다고 했다.

스무 살 무렵, 친구는 당시로는 흔하지 않던 암으로 진단받고 고생만 하다 하늘로 갔다.


병원에서 생명의 마지막 끈을 놓으며 친구는 행복한 표정으로 낮게 속삭였다.

꽃길이 보여... 빛이 눈부셔... 그러면서 천천히 떠나갔다.

종부성사를 준 사제와 임종을 지킨 의사가 동시에 말했다.

깨끗한 영혼이라 천국으로 인도된 게 분명하다고.

죽음이 겁나고 두렵고 무서운 게 아니라는 믿음 비슷한 걸 갖게 된 계기다.



아득하니 멀고 막막하기만 하던 메세타 지역을 벗어나자 신록 싱그러운 숲이 이어졌다.

좁은 오솔길을 걸어가노라면 양쪽에서 드리운 나무 가지들로 터널이 생겼으며
뙤약볕 내리쬐는 날씨라도 숲 그늘 덕에 더운 줄 몰랐다.

푸르른 숲 바람은 또 얼마나 향긋하고도 시원한지.

저만치 미궁 같은 숲 터널이 나타나 거길 지나려면 왠지 사방 탁 트인 평원과 달리 좀 휘휘했다.

 블랙홀같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 미궁 속으로 혼자 걸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던 거다.

신발 끈을 고쳐 매거나 물을 꺼내 마시는 등 미적거리며 카미노 친구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지나가곤 했다.

수호천사가 늘 곁을 따른다는 걸 여러 번의 체험으로 확신은 하지만.

당연히 숲길 저 끝엔 듬직한 카미노 표지석이 가리비와 화살표 준비하고 반길 줄 알지만.

생의 여로 더러는 미궁에 빠져버린 듯 헤맬 때도 있었다.

어둔 터널길 통과해야 하는 막막하기 그지없던 적 또한 있었다.

참고 견뎌야 하는 사바세계라 했던가.

 미궁 같은 터널 벗어나면 종당엔 슬몃 미소 피어날까.  

이젠 알겠다.


질곡의 세월조차 옛 얘기 웃으며 할 수 있더라는 노년의 삶을 살아가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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