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네 잎 클로버

by 무량화

엊그제 법화사로 꽃구경 갔다가 네 잎 클로버를 두 개나 얻었다.

돌아오기 전 소나기를 만나 여차여차 이마에 혹을 달고 돌아왔다.

어제 그 이바구를 포스팅하고도 가방에 소중히 챙겨 온 클로버 잎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저녁답에 아들 전화를 받자 신경과적 문제가 있을까 우려돼 머리 부딪힌 사실을 이실직고했다.

왜냐하면 외상 없고 뼈를 다치진 않았지만 충격파가 컸던 듯 온 전신이 뻑적지근해 마음 쓰이던 차였기에.

멍든 곳은 없는데 튕겨나간 타격으로 근육이 놀란 건가 싶어 불편한 데마다 파스도 붙여놓은 상태다.

그 정도의 타박상으로는 별 이상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아들은 안심을 시켰다.

덧붙여서 "역시 네 잎 클로버 덕이네요. 집 현관에서 넘어져, 고관절 상해 입고 찾아오는 노인들 흔한데요." 진료실에서 다반사로 접하는 사고 유형이 노인성 골절이라는 소리다.

이쯤에서 퍼뜩 떠오른 행운의 클로버 이파리.

아차차! 클로버 잎을 여태껏 방치하고 있었네.

얼른 꺼내본 크로바 잎은 이미 바짝 말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쪼그라들었다.

물에 담가 놨으나 펴질 기미가 안 보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밤새 물속에다 그냥 넣어 두었다.

오늘 아침, 겨우겨우 기사회생한 잎새를 건져 물기 닦은 뒤 구김새 잘 펼쳐서 책갈피에 눌러놓았다.



내가 유일하게 복용하는 약은 골다공증 약, 골밀도가 낮으면 낙상 등의 가벼운 충격에도 쉽게 골절될 수 있다.

그래서 넘어지는 정황을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입장인데 걸핏하면 산으로 들로 바다로 나다니길 즐기는 성격이니.

사나운 개 콧등 성할 날이 없다, 란 속담처럼 성격상 당연히 나돌아 다니다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기 쉽다.

지난 초봄 일이다.

서울 사는 친구가 놀러 온다고 했다.

미국에서 오는 친구들은 물론 서울 친구에게도 맛 보이고 싶은 음식이 있다.

이 나이쯤 되면 다들 입맛도 복고풍으로 돌아가 있기 마련이며 취향도 레트로 감성에 푹 젖어있다.

나야 본래 촌스런 토종식성이긴 하지만 또래들도 너남없이 어릴 적 먹어본 추억의 음식인 쑥개떡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봄마다 쑥떡을 해 먹었기에 이곳 서귀포도 어디를 가면 질 좋은 쑥이 있는지를 안다.

쑥떡을 만들려면 햇쑥을 뜯어와야 하므로 깨끗한 쑥이 소복한 별내린 전망대로 갔다.

중문관광단지 내의 천제연 물길이 내리는 계곡가인 이 장소는 한적하고 조용한 소공원이다.

강풍이 거세게 부는 일기였으나 햇살 따사로이 내려 쑥 뜯기 좋은 날이었다.

배낭에 한가득하고도 비닐봉다리까지 반 너머 쑥을 채워서 귀갓길에 올랐다.

차를 타려고 언덕 위 대로를 건너 반대편으로 설렁설렁 걸어갔다.

그때 토네이도 같이 휘몰아치는 강풍이 휘익~ 부는가 싶더니 순간 앞으로 폭싹 고꾸라졌다.

아무리 체중이 가볍기로서니 바람에 날리는 갈대도 아닌데 강풍에 밀려 넘어질 수도 있다니.

개구리 납작하게 사지 뻗듯이 아스팔트 바닥에 온전히 납짝 엎어지는 그 찰나에도 이빨 상하겠구나 싶었다.

일단 차도라 벌떡 일어나 인도로 자리를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앞니가 깨져 입안에서 피가 났다.

인중 부분도 땅에 갈리며 상처 어수선했다.

정신을 차려 팔다리를 더듬어보니 다행히 뼈나 관절은 무탈했다.

급히 마스크를 꺼내 덮어쓰고는 택시를 타고 치과부터 갔다.

응급처치를 해주며 의사는 "비싼 쑥을 뜯으셨네요" 위로해 줬다.



병원 오가며 줄곧,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무엇이 문제인가? 곰곰 짚어봤다.

왜냐하면 느닷없이 평지에서 그처럼 쎄게 넘어진 정황이 설명도 안될뿐더러 이해불가라서다.

어쩐지, 아둔한 나를 깨우치기 위한 일종의 계시 같기도 하였다.

아무런 인과 없이 생기는 일은 없다는데 대관절 연유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까닭인지....

맞다, 과유불급으로 내닫는 나에게 거는 제동이자 경고이지 싶다.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조차 없었다.

서하객(徐霞客)도 못 되면서 주유천하에 빠져 어지간히도 싸다녔던 것.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도 있는데.

그간 무언가에 취한 듯 건공 중에 떠서 바쁘게 설치고 다녔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은커녕 분답게 나돌며, 그게 마치 의미 있게 사는 것인 양 착각 속에 지내온 나날이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자기 점검 나아가 자아성찰의 시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앞에 나서서 오지랖을 떨었으니 한마디로 그게 나잇값 못하는 주책 아니랴.

자숙과 근신이 필요했다.

일단 젊은 층과 함께하는 서귀포시청 서포터스 활동을 접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스스럼없이 그들과 보조를 맞췄는데 올핸 솔직히 힘에 부쳤다.

무엇보다 걷기가 유행이던 패턴이 변해 러너가 대세인 조류에 끼어들 자신이 없었다.

단단하게 쭉 뻗은 이삼십 대의 건각을 보면 근육소실이 눈에 띄게 진행되는 스스로에 자괴지심이 들었다.

우물거리다가는 자칫 낄끼빠빠 못하는 눈치 없는 노인네, 과욕 부리는 주책바가지 될 판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행사장 쫓아다녀야 하고 인터뷰를 해야 하고 과제처럼 블로깅을 올리고.

그와 연계돼 이리저리 얽히는 사회적 인연들.

세사 어디에도 매인데 없이 유유자적 온전히 노년을 즐기겠다는 원칙과도 맞지 않는 일들 모조리 다 쳐냈다.

된통 넘어져 다치고 나서야 이제 비로소 철이 들었고 만판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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